워싱턴=로이터—보 에릭슨·패트리샤 젠거 기자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은 17일(현지시간) 해외 원조와 공영방송 예산 90억 달러(약 11조 7,000억 원) 삭감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삭감안은 앞서 상원이 일부 수정을 거쳐 통과시킨 뒤 하원으로 회송됐다. 상원은 HIV/AIDS 예방 프로그램 4억 달러를 삭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원안을 손질했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는 이번 표결에서 가결에 필요한 단 2표 차이까지 예상하며 긴장하고 있다. 6월 예비 표결 당시에는 공화당 의원 4명이 민주당과 함께 반대표를 던져, 214대 212라는 근소한 차이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의회가 이번 주 내로 삭감안을 승인하지 못하면 행정부가 해당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원 공화당은 추가 압박을 받고 있다.
삭감 대상인 90억 달러는 6조 8,000억 달러 규모 연방 예산의 약 0.1%에 해당한다. 존 튠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작지만 의미 있는 재정 건전성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공화당은 해당 해외 원조 예산이 “낭비적 프로그램”에 투입돼 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공영방송 예산 10억 달러에 대해서는 “보수 진영을 불공정하게 겨냥하는 라디오·PBS(공영 TV) 지원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51대 48로 통과된 상원 표결에서 수전 콜린스(메인), 리사 머카우스키(알래스카) 등 공화당 의원 2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들은 “헌법상 예산권을 가진 의회가 행정부 지시에 따라 ‘구제(rescissions)’ 패키지를 재검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은 “상원에서 33년간 구제 패키지가 통과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는 일반적으로 초당적 합의를 통해 세출법안을 처리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단일 정당 주도로 삭감이 추진될 경우, 상원에서 60표 필리버스터 장벽을 넘기 위한 협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가 민주당 지도부에서 제기됐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화당은 ‘지금 당장 삭감 후, 질문은 나중에’라는 신조를 고수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패키지에 포함된 90억 달러는 행정부가 올해 들어 집행을 보류해 온 4,250억 달러 규모 예산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두고 행정부의 광범위한 예산 동결·삭감 시도의 일환이라고 지적한다.
러스 보트 백악관 예산국장은 기자들과 만나 “추가 삭감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 용어 설명
Rescissions Package(구제 패키지)란 이미 배정된 예산을 행정부가 집행하지 않고 의회 승인을 받아 취소 또는 축소하는 특별 절차다. 행정부가 요청하면 하원은 45일 이내에 표결해야 하며, 과거 1980년대 초 이후 연방 상원에서 최종 가결된 사례가 드물다.
■ 전문가 시각
재정 전문가들은 이번 삭감액이 전체 예산의 0.1%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하며, 대규모 적자 해결에는 구조적 조세·지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성이 큰 공영방송 예산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문화 전쟁(culture war) 이슈가 다시 격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예산 집행 지연이 지속될 경우 해외 원조 현장에서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의회 내 초당적 협의 메커니즘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