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엔비디아(Nvidia)의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공급하기로 한 역사적 합의의 실행을 국가안보를 이유로 지연시키고 있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거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월 중동 순방 당시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으나, 미 상무부와 백악관 일부 보좌진이 중국의 간접적 기술 접근 가능성을 우려하며 내부 승인 절차를 멈춰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식통을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논란의 핵심은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AI 전문기업 G42이다. 합의대로라면 G42는 총 물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고성능 GPU를 확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상무부는 현 시점에 G42로의 직접 선적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향후 정책이 바뀔 가능성만을 열어둔 상태다.
배경과 이해관계
G42는 UAE 정부가 AI 주권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육성 중인 기업이다. 회사명 ‘G42’는 ‘42’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답’으로 언급된 숫자라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장에서는 ‘중동판 오픈AI’로 불리며, 국부펀드 ‘무바달라’의 자금 지원을 받아 슈퍼컴퓨터와 자연어 처리 모델을 개발 중이다.
그러나 미국 정보당국은 G42의 중국 기업들과의 협력 전력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화웨이(Huawei)와의 프로젝트 이력 때문에, 엔비디아의 최신 GPU가 유출될 경우 미국이 유지해온 반도체 기술 우위가 손상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협상 변동 가능성
WSJ는
“일부 미 행정부 인사들이 G42를 거래 대상에서 제외하는 수정안을 검토 중”
이라고 보도했다. 만일 해당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UAE 측은 국가적 AI 청사진의 핵심 축을 잃게 되는 셈이라 불만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긍정적 신호도 존재한다. 미 상무부의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장관은 “합의는 결국 성사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내비쳤고, 유세프 알 오타이바(Yousef Al Otaiba) 주미 UAE 대사는 “이번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대승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T 업계·정책당국의 복잡한 셈법
이 같은 지연은 실리콘밸리와 월가 기술 담당 임원들 사이에 답답함을 키우고 있다. 일부 정책 입안자는 만약 협상이 무산되면 화웨이·텐센트 등 중국 기업이 빈틈을 파고들 것이라며 속도 조절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낸다.
엔비디아는 이번 사안과 별개로, 중국 판매용 H20 칩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판매 허가를 얻었다고 지난주 밝힌 바 있다. 이는 미·중 무역 긴장 완화 신호로 해석되며, 아울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 규제의 유연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추가 용어 해설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대량의 행렬 연산을 병렬로 처리할 수 있어 AI 학습·추론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반도체다. 엔비디아 H100·A100 시리즈 등은 16,000개 이상의 CUDA 코어와 초당 수십여 페타플롭스(1초에 1천조 회 연산) 이상의 성능을 지니며, 챗봇·자율주행·의료 AI에 필수적이다.
수출통제(Export Control)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전략 기술의 해외 반출을 허가·제한하는 체계다. 2022년부터 미국은 ‘파운드리 14nm 이하·GPU 600TFLOPS 이상’ 등 기술적 기준을 적용해 중국 및 제3국 거래를 엄격히 심사하고 있다.
전문가 분석 및 전망
전문가들은 ‘안보와 상업’이라는 두 축이 지속적으로 충돌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 의회 내 초당적 반중 기류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UAE가 중국과 기술 프로젝트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 한 규제 장벽은 쉽게 낮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UAE는 석유 이후 경제 다각화라는 국정과제가 절실하다. 중동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 ‘알다프라’ 구축, 국부펀드의 AI 스타트업 투자 확대 등 공격적 행보를 이어가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 외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결국 합의가 늦어질수록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과 중동의 AI 자립 로드맵은 복합적으로 얽힐 것으로 보인다. 향후 수주 내 미 상무부의 최종 결정이 나오면, 양국 관계는 물론 AI·반도체 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급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