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KS:000660) 주가가 17일 장 초반 거의 9% 급락하며 27만 원 선으로 밀려났다. 이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해당 종목의 투자의견을 ‘매수(Buy)’에서 ‘중립(Neutral)’으로 하향 조정한 직후 나타난 즉각적인 시장 반응이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목표주가를 기존 34만 원대에서 31만 원으로 낮추며 SK하이닉스의 중장기 실적 둔화를 우려했다. 이 여파로 코스피지수(KOSPI)는 0.5% 하락 압력을 받았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가 주도해온 HBM(High Bandwidth Memory) 시장의 장기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2026년부터 경쟁 심화로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라고 진단했다. 은행 측은 특히 2026년에 HBM 공급 과잉이 발생해 두 자릿수 퍼센트의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HBM은 다수의 DRAM 칩을 3차원으로 적층(스택)한 뒤 초고속 인터포저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와 연결하는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규격이다. 일반 DDR4/5 대비 대역폭은 최대 15배 이상 높고, 패키지 면적은 대폭 줄어 고성능 컴퓨팅(HPC)·AI 가속기 등에 필수로 사용된다.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HBM3E(5세대) 양산에 성공해 현재까지 엔비디아(Nvidia)(NASDAQ:NVDA)의 그래픽·AI 프로세서에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005930)와 마이크론(Micron) 등 경쟁사들이 2026년 이후 HBM3E·HBM4 양산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SK하이닉스의 기술 격차와 가격 지위가 급격히 축소될 가능성이 부각됐다. 골드만삭스는 “2025년에는 여전히 모멘텀이 견조하겠으나, 2026년 이후 수익성 하방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5년 HBM 평균 판매가격(ASP)은 탄탄한 수요 덕분에 상승하겠지만, 2026년에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두 자릿수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는 곧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 축소로 이어질 것” – 골드만삭스 보고서 中
또 다른 악재로는 ASML 홀딩(AS:ASML)의 장비 투자 가이던스 하향이 꼽힌다.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사인 ASML은 전날 “미·중 무역관세 불확실성으로 2026년 설비투자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2분기 수주액은 AI 관련 고성능 칩 수요 덕분에 시장 예상치를 넘어섰다.
ASML의 경고는 TSMC(NYSE:TSM) 실적 발표를 하루 앞두고 나왔다.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이자 업계 경기를 가늠하는 또 다른 바로미터다. 시장은 TSMC의 가이던스를 통해 AI·HBM 수요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있다.
한편, 2025년 들어 SK하이닉스 주가는 AI 열풍에 힘입어 연초 대비 73% 상승하며 가파른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을 경험했다. 반면 이날 하락장 속에서도 삼성전자는 1.7% 상승 마감하며 대비되는 흐름을 보였다.
전문가 시각 및 향후 관전 포인트
① 가격 변동성 확대** – AI 시대에 높은 대역폭과 전력 효율을 갖춘 HBM의 전략적 가치는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에는 가격 변동성이 커진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② 제조 난이도와 수율 – HBM4로 넘어가면서 적층 층수가 16단 이상으로 늘고 TSV(실리콘관통전극) 공정 난이도가 상승한다. 경쟁사들의 초기 수율 확보가 지연될 경우 SK하이닉스가 누려온 ‘퍼스트 무버’ 프리미엄은 일정 기간 더 유지될 수 있다.
③ 설비 투자(캡엑스) 부담 – 차세대 HBM 라인을 증설하려면 EUV 장비·첨단 패키징 설비 투자가 필수다. ASML이 언급한 설비투자 지연이 현실화되면, 공급 과잉 시점이 뒤로 밀릴 수도 있다. 이 경우 가격 하락 시기도 늦춰질 가능성이 있어 변수로 작용한다.
④ 엔비디아·AMD·인텔 등 시스템 업체의 전략 – AI 가속기 로드맵이 빨라질수록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는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이는 ‘HBM 가격 조정 → 수요 확장 → 재차 공급 부족’이라는 사이클을 단기간 내 반복시킬 개연성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골드만삭스의 투자의견 하향은 가격·경쟁 리스크를 조기에 반영한 선제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다만, AI·클라우드·고성능 컴퓨팅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2026년 이후 HBM 수급 균형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향후 1년간의 설비투자 계획, 경쟁사 수율, 주요 고객사의 주문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