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의장을 해임할 가능성이 급부상하면서 금융시장과 법조계, 학계가 일제히 ‘심각한 후폭풍’을 경고하고 있다.
2025년 7월 16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월프리서치(Wolfe Research)는 투자자 노트에서 “무슨 시나리오가 전개되든 이는 ‘총체적 난국(this would be a mess)’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토빈 마커스(Tobin Marcus)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추퉁 주(Chutong Zhu)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해임이 현실화되면) 주식시장은 즉각적인 매도세와 동시에 장기물 금리 급등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들 애널리스트는 파월 의장 해임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결국 미 연방대법원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행정부 2기 동안 독립규제기관 정상(頂上) 교체를 시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해당 기관 위원들이 잇따라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다만 월프리서치는 “1파월 의장은 독립기관의 단순 위원이 아니라 의장(chair)이라는 점이 과거 사례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 해임설 배경과 트럼프의 즉흥적 부인
파월 의장 임기는 오는 2026년 2월까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개월간 파월 의장을 공개 비난해 왔다. 7월 15일(현지시간) 백악관 만찬에서 공화당 의원들에게 “곧(fire him soon)”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즉각 해임설’이 급속히 확산됐다.
하지만 같은 날 오벌 오피스 기자단과 질의응답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해임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 다만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해임설을 부인했다. 이어 “그가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 해임 가능성은 매우 희박(highly unlikely)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특유의 변덕스러운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시장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 ‘참사급’ 시나리오 3가지
월프리서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개를 상정했다.
① 파월 의장이 소송을 제기하며 직을 유지, 트럼프 측이 법원에 ‘강제 해임’ 명령을 요청.
② 파월 의장이 자진 사임 후 복권을 요구하며 소송 진행.
③ 파월 의장이 버티며 집무, 트럼프가 행정명령으로 직위 박탈을 선언.
보고서는 3번째 시나리오를 “가장 극적”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2025년 3월, 머스크 행정부 산하 ‘정부효율성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직원들이 미 평화연구소(US Institute of Peace) 인력을 건물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워싱턴D.C. 경찰을 동원한 선례가 있다. 월프리서치는 “파월 의장이 경찰 호위를 받으며 연준에서 퇴거하는 장면은 투자자 심리를 극도로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 ‘독립성 훼손’ 국제 비교—터키·아르헨티나 언급
에버코어(Evercore) 창립자 로저 올트먼(Roger Altman) 전 부재무장관은 CNBC ‘클로징 벨’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하려는 발상은 ‘수많은 나쁜 아이디어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독립적 통화정책의 부재가 초래한 국가 사례로 터키와 아르헨티나를 지목하며, 두 나라가 최근 수년간 연 두 자릿수(double-digit) 물가 급등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올트먼은 “파월 의장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사법부 판단에 맡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프리서치도 “파월이 해임 통보 대신 소송을 택할 경우, 1심 가처분(injunction)이 인용돼 잔여 임기를 채울 가능성”을 제시했다.
■ 대법원 쟁점: ‘정당 사유(for-cause)’와 Fed의 특수성
연방대법원은 최근 다른 독립기관 관련 판결에서 대통령의 ‘해임권 확대’에 힘을 실어주는 성향을 드러냈다. 다만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연준은 초대·2대 합중국 은행(First & Second Bank)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 준(準)민간(quasi-private) 기관”이라고 별도 언급했다. 이는 연준을 기타 독립기관과 ‘차별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월프리서치는 “대법원이 ‘의장에 대한 해임 사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관건”이라며 “파월 측이 승소할 ‘꽤 괜찮은(decent)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만약 하급심 가처분이 유지된 채 본안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파월 의장은 2026년 2월까지 무난히 임기를 이어갈 수 있다.
■ 미 시장·글로벌 포트폴리오에 미칠 파급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 독립성 훼손이 달러화 신뢰도와 미 국채에 직접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월프리서치는 “장기물 수익률이 ‘역공(rate spike)’을 일으켜,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했던 경기 부양 효과를 상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글로벌 투자자들이 ‘정책 예측 가능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미 금융패권에 구조적 균열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
한편 파월 의장은 지난 7월 14일 약 25억 달러(약 3조3,000억 원) 규모 연준 본관 리노베이션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자, 연준 감사관(Inspector General)에게 감사를 요청하는 등 스스로 투명성 제고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러한 행보는 해임 논란과 별개로, 의장직 유지 의지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 용어·배경 설명
• 연준(Fed) : 미국의 중앙은행 체계로, 통화정책·금융감독을 담당한다. 의장은 미국 경제의 ‘키맨’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독립규제기관(independent agency) : 대통령 직속 부처(Department)에 속하지 않으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상대적 독립성을 보장받는 기관이다.
• for-cause 해임 : ‘중대한 위법·직무 유기’ 등 정당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이 가능하다는 원칙으로, 의회의 인준 절차를 거쳐 임명된 기관장을 보호하는 장치다.
이번 사태는 중앙은행 독립성, 대통령 권한, 사법부 견제라는 세 축이 충돌한 전형적 사례다. 향후 정치·경제·법적 파급이 어디로 향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