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오랫동안 미뤄진 시리(Siri) 개편을 공식 공개하며, 인공지능 경쟁에서 빅테크 경쟁사와 신생 스타트업 사이의 격차를 좁히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2026년 6월 9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열린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업그레이드된 음성비서 “시리 AI”를 선보였다. 이번 개편은 보다 대화형에 가까운 인터페이스, 독립형 앱, 그리고 사용자의 화면에 표시된 내용을 분석하고 웹에서 관련 정보를 불러오는 기능을 포함한다. 애플이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처음 약속한 지 2년이 지난 뒤에야 공개된 변화다.
애플은 이용자가 과거 시리 대화를 다시 확인할 수 있고, 메시지에 언급됐지만 별도로 저장되지 않은 주소 같은 세부 정보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시리가 단순 응답형 비서를 넘어,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에이전틱 AI(agentic AI)는 복잡한 작업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뜻하는데, 오픈AI의 챗GPT, 앤스로픽의 클로드, 구글의 제미나이가 이 분야에서 빠르게 앞서가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은 뒤늦게 추격전에 나선 셈이다.
애플 소프트웨어 총괄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기조연설에서 “일부는 마치 AI 그 자체를 위해 앞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며, 궁극적으로 이 기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고 말하며 경쟁사들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다만 애플은 경쟁사들과 달리 완전 자율형 AI 에이전트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일상 업무에 직접 연결되는 실용적 기능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제야 15년 전 시리가 약속했던 내용을 실제로 실현한 셈이다.”
— TECHnalysis Research의 최고분석가이자 회장인 밥 오도넬
오도넬은 “이는 대중을 위한 AI이며, 실제로는 그다지 에이전틱하지 않다”며 “많은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런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에이전틱 AI는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여러 단계를 스스로 수행하는 기술을 뜻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시장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MoffettNathanson의 애널리스트 크레이그 모펫은 이번 업데이트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지만” 시리를 “신뢰할 만한 챗봇이자, 어쩌면 신뢰할 만한 에이전트”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애플 주가는 이날 나스닥에서 1.9% 하락한 301.54달러로 마감했다.
프라이버시와 편의성의 충돌도 이번 시리 AI 개편의 핵심 쟁점이다. 애플은 AI 기능 일부를 구현하기 위해 협력사 기술에 기대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일부 모델이 구글의 제미나이 기술을 바탕으로 구축됐다고 설명했으며, 더 큰 규모의 모델은 엔비디아 칩을 사용하는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애플은 개인 정보는 계속 보호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처리는 사용자 기기에서 이뤄지거나, 외부 접근으로부터 데이터를 차단하도록 설계된 애플 자체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리 AI가 사용자의 화면과 앱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려면, 애플은 사용자의 디지털 생활에 대한 더 큰 가시성을 확보해야 한다. PP Foresight의 애널리스트 파올로 페스카토레는 “이는 편의성과 프라이버시 사이에 피할 수 없는 긴장을 만든다”며 “애플의 과제는 지능이 반드시 프라이버시의 희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에 따르면 시리 AI는 메시지와 이메일 검색을 돕고, 화면 인식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현재 보고 있는 콘텐츠와 즉시 관련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 새로 공개된 독립형 앱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 전반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애플의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통해 서로 동기화된다. 일부 AI 기능은 아예 기기 안에서만 처리된다.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팅은 민감한 데이터를 외부 서버에 그대로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클라우드의 연산 능력을 활용하려는 애플의 보안 중심 접근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는 사용자 데이터를 최대한 기기 안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지만, 동시에 기능 확장 속도에는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애플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규제 대상이기도 하다. EU 규제당국은 애플이 자사 생태계를 더 개방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애플은 개인정보와 보안 우려를 이유로, 시리 AI가 우선적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EU 지역에서는 “초기에는”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회사는 규제 문제를 조율하는 동안 중국에서도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동 안전 기능도 강화됐다. 애플은 시리 외에도 여러 소규모 업데이트를 발표했으며, 그중에는 부모가 자녀가 접근할 수 있는 앱, 웹사이트, 연락처를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아동 안전 통제 기능이 포함됐다. 메시징 앱은 기본적으로 노골적인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고 부모에게 알림을 보내며, 이는 기존의 노출 중심 보호 조치를 넘어선 확대된 대응이다.
이와 함께 애플은 이미지 생성 도구도 개선했으며, 자사 브라우저 사파리(Safari)에는 웹사이트에서 상품이 다시 재고로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등 AI 기능을 추가했다. 이는 애플이 생성형 AI 경쟁에서 단순 음성비서 수준을 넘어, 검색·구매·메시징·브라우징 전반으로 AI를 심으려는 전략을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이번 시리 개편이 애플의 AI 경쟁력 회복에 일정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실제 효과는 사용자 경험의 안정성,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신뢰, 그리고 EU·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출시 시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생성형 AI와 기기 내 처리 기능의 결합은 향후 아이폰과 맥의 교체 수요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규제와 프라이버시 논란이 지속될 경우 확산 속도는 제한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