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해상 봉쇄 명령을 내리며 중동 분쟁의 신속한 종결 기대가 사실상 사라지고, 이미 역대 최악의 에너지 충격을 촉발한 이란과의 대치가 한층 고조됐다.
2026년 4월 13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에 미 중앙사령부(U.S. Central Command)의 성명을 통해 봉쇄가 미 동부표준시(ET) 기준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발효된다고 발표했다. 봉쇄 대상은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을 포함한 이란의 항구와 해안지역으로 출입하는 모든 국가의 선박이라고 성명은 밝혔다.
트럼프의 봉쇄 명령 발표 몇 시간 만에, 로이드스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에 따르면 지난주 트럼프가 발표한 2주간의 휴전에 따라 확대되던 통항 선박의 흐름은 다시 멈췄다. 관측에 따르면 적어도 두 척의 선박이 항로를 되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유가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원유 선물 가격은 중동 공급 차질을 고려한 매수세로 급등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 선물은 8% 이상 상승해 배럴당 $104.40를 기록했고, 브렌트유는 7% 이상 상승해 배럴당 $101.86까지 올랐다.
사태의 발단과 외교 교섭
트럼프의 봉쇄 명령은 워싱턴과 테헤란 간에 진행되던 주말 협상이 결렬된 직후 나왔다. 양측은 약 21시간에 걸친 협상을 벌였으나 이란의 핵 프로그램, 해협 통제 권한,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조직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지속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급 차질의 규모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국제 원유 공급은 더욱 심각하게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봉쇄 이전, 전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약 20%)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왔으나, 지난달 초 미·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첫 공습 이후 이 흐름은 극도로 둔화돼 거의 마비 상태에 가깝다. 원유뿐 아니라 비료와 헬륨 등 농업과 반도체 산업에 필수인 원자재 공급망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페르시아만에서 나오는 유일한 원유를 시장에서 더 빼내면 유가가 더 올라 1배럴당 약 $150 수준까지 갈 수 있다.”
트리타 파르시(Trita Parsi), 퀸시 책임외교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 부사장
파르시의 발언은 이번 봉쇄가 실제로 전 세계 원유 공급을 크게 축소할 경우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경고를 분명히 나타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은 이미 세계 성장률 하향 조정 및 인플레이션 상향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신흥국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 평가와 과거의 위기와의 비교
국제에너지기구(IEA) 수장 파티 비롤(Fatih Birol)은 이번 공급 차질을 역대 최악의 에너지 쇼크라고 규정했다. S&P Global 부회장 대니얼 예르긴(Daniel Yergin)도 이번 사태가 과거 1970년대의 오일쇼크나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평가했다.
반면 영국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수석연구원 데이비드 루빈(David Lubin)은 세계 경제가 과거보다 석유 집약도가 낮아 성장 충격이 일부 완화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에 비해 단위 GDP당 석유 소비가 약 40% 수준(과거 1배럴 대비 현재 약 0.4배)에 불과하며, 풍력·태양광·원자력 등 대체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중국과의 파장
호르무즈 봉쇄는 중국을 분쟁의 교차점으로 끌어들일 위험도 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원유 구매국으로, 분쟁 발발 이후에도 해협을 통해 계속 원유를 수입해 왔다. 이란산 원유를 운반하는 유조선의 통행이 막힐 경우 중국에 대한 공급이 차단될 수 있고, 이는 미·중 관계를 악화시킬 여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한 중국이 테헤란에 첨단 방위 장비를 제공할 경우 추가로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러한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정된 중국 방문(다음 달) 전에도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
협상 전술인가, 오판인가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봉쇄를 협상에서의 강경한 압박 수단으로 해석한다. 파르시는 “양측 모두 대화 재개 여부나 휴전 종료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들을 협상 내 전술적 위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애너엑스 웰스 매니지먼트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브라이언 제이콥슨(Brian Jacobsen)도 미국이 우방 선박에 대한 예외를 둘 여지를 남겨 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봉쇄가 오판으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한다. 벤 에몬스(Ben Emons) Fed Watch Advisors 전무는 봉쇄로 이란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오히려 반격을 촉발해 군사적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성명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접근하는 어떤 군함도 “어떤 구실로든” 휴전 위반으로 간주할 것이며, 오판 시 적들을 “치명적인 소용돌이”에 빠뜨리겠다고 경고했다.
국제법적 쟁점과 실무적 제약
법률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을 봉쇄할 법적 근거가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통상 국제해협에 대한 통행은 국제법상의 통항권(transit passage)에 의해 보호되며, 미국은 물론 이란조차도 해협의 통행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거나 제약할 권한이 없다. 에몬스는 “국제해협을 규율하는 규칙에 따르면, 호르무즈를 통한 통행을 미국이 폐쇄하거나 중단할 법적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실무적으로 선주(船主)들이 봉쇄 상황에서 해협을 통과하기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서방의 대이란 제재로 인한 금융·거래 위험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결제는 미국 및 유럽의 제재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기업들이 막대한 제재·처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비료·헬륨·반도체 공급과 인플레이션
원유 외에도 비료(암모니아 기반 비료 원료)와 헬륨(반도체·의료기기·과학장비에 필수)이 급격한 공급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농업 생산비와 반도체 제조 비용을 동반 상승시켜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IMF·세계은행 관계자들은 향후 글로벌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향후 시나리오별 경제적 영향 분석
단기적 충격(수주~수개월): 봉쇄로 즉시 반영되는 것은 원유 및 정제유의 선적 지연과 보험료·금융비용 상승이다. 유가는 단기 급등해 WTI·브렌트 기준으로 $100~$150/배럴 범위에서 변동이 예상되며, 정유 마진과 연료 가격은 즉각적으로 국내외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운송비 상승은 식료품·공산품 가격 전반에 파급된다.
중기적 영향(수개월~1년): 공급망 병목이 장기화하면 비료 공급 차질로 농산물 생산비가 상승하고 식품 가격이 상승한다. 반도체 제조용 헬륨 공급 차질은 전자제품 출하 지연과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중앙은행들은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해 금리 정책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기적 영향(1년 이상):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 가속화될 수 있다. 소비자 및 기업 차원에서의 수요 파괴(에너지 절약, 연료 전환), 재생에너지·핵에너지 투자 확대, 그리고 국별 전략비축 확대 등으로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경향이 심화될 전망이다. 이는 향후 몇 년간 세계 에너지 시장의 공급·수요 구조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대응 및 실용적 정보
선사·무역업체는 계약 조건(용선 계약·보험·포워딩)과 제재 규정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대체 공급처 확보, 재고 확보, 가격 리스크 헤지(선물·옵션 활용)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와 국제기구는 물가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SPR) 방출, 교역·금융 완화 조치, 그리고 농업·반도체 핵심 자재의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이번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의 봉쇄 명령은 단기적으로 전 세계 원유·원자재 시장을 즉각적으로 압박해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 재검토와 공급망 다변화 가속화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적 정당성 문제와 군사적 오판에 따른 확전 위험이 존재하며, 중국을 포함한 주요 수입국의 반응과 우방 선박에 대한 예외 적용 여부가 향후 사태 전개에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