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항소법원이 인공지능(AI) 업체인 앤트로픽(Anthropic)이 제기한 미 국방부(DOD)의 블랙리스트(공급망 위험 지정) 임시중단 요청을 기각했다. 이번 결정으로 앤트로픽은 DOD 관련 계약에서 배제된 상태가 유지되지만, 다른 연방 기관과의 업무는 계속할 수 있다.
2026년 4월 8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D.C. 소재 연방항소법원은 앤트로픽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연방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항소법원은 결정문에서 형평성의 균형이 정부 편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판단했다고 명시했다.
항소법원 결정 요지
“형평성의 균형은 정부의 편으로 기울어져 있다. 한쪽에는 단일 민간기업에 대한 비교적 제한된 재정적 손해 위험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활발한 군사적 분쟁 기간 동안 전쟁부(Department of War)가 어떻게, 누구를 통해 필수 AI 기술을 확보하는지를 사법부가 관리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본안 심리를 기다리는 동안의 집행정지를 기각한다.”
항소법원은 앤트로픽이 집행정지가 없으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손해가 주로 재정적 성격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앤트로픽이 표현의 자유 침해를 주장했으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자사 발언이 위축되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항소법원의 결정은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이 지난달 말 별도 사건에서 내린 예비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과는 엇갈린 결과를 낳았다.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 사용을 금지하는 행위를 집행하지 못하도록 잠정적으로 막았지만, 항소법원은 DOD의 블랙리스트 지정 자체에 대해 본안 심리 전 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앤트로픽은 DOD 계약에서는 배제되나 다른 정부 기관과의 업무는 지속 가능해진 혼선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법원은 또한 “앤트로픽의 이의제기는 보복 행위(retaliation)이며 위헌적이고 자의적·변덕스럽고 법률상 요구되는 절차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 검토를 요구한 상태이며, 항소법원은 본안 심리를 신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항소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회사가 입을 손해를 인정하면서도 “신속한 절차 진행(substantial expedition)이 정당화된다”고 명시했다.

사건 경과와 배경
앤트로픽은 2026년 3월 초 DOD로부터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 지정 통보를 받았다. DOD의 이 지정은 해당 회사 기술의 사용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본다는 의미이며, 지정이 내려지면 방산업체들은 국방부와의 업무에서 해당 회사의 AI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인증을 해야 한다. 이번 지정은 과거 주로 외국의 적대국 기업에 적용되던 조치가 미국 기업에 적용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분쟁은 지난 2월 말 워싱턴 D.C.에서 격화되었다.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2월 말 소셜미디어 게시물로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선언했고, 이후 DOD는 회사에 공식 결정을 서한으로 통지했다. 같은 시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에 연방 기관들에 대해 “즉시 앤트로픽의 기술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하고, 국방부 등 기관에는 6개월의 단계적 중단(phase-out)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앤트로픽은 그간 여러 연방 기관에 자사 모델을 배치해왔으며, DOD의 기밀 네트워크에 모델을 처음 배포한 민간 기업이기도 하다. 회사는 2025년 7월에 국방부와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같은 해 9월부터 DOD의 GenAI.mil 플랫폼에 클로드를 배치하는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해 협상이 중단됐다. 핵심 쟁점은 DOD가 모델을 모든 합법적 목적에 대해 제한 없이 접근할 권한을 요구한 반면, 앤트로픽은 자사 기술이 완전 자율 무기(fully autonomous weapons)에 이용되거나 국내 대규모 감시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원했다는 점이다. 양측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법적·운영상 의미
이번 사건은 두 가지 법적 지정이 서로 다른 연방법원에서 각각 다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복잡하다. DOD는 연방 법체계에서 서로 다른 근거 조항을 가지고 지정 조치를 했고, 이는 별도의 법원에서 각각의 절차적·실체적 다툼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법원 간 엇갈린 결정이 이어지면서 정부 기관과 방산업체, AI 제공업체들 사이에 실무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당사자 반응
앤트로픽 대변인은 항소법원 판결 직후 성명에서 “법원이 이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데 대해 감사하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공급망 지정이 불법이었다는 점을 결국 법원들이 인정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번 소송은 앤트로픽과 고객 및 파트너를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했다. 동시에 모든 미국인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의 혜택을 누리도록 정부와 건설적으로 협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대행 법무장관 토드 블랜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번 판결을 두고 “군사 대비태세에 대한 확실한 승리”라고 평가하며, “군사 권한과 작전 통제는 최고사령관과 전쟁부에 속하며 기술기업에 있지 않다”라고 적었다. 이 표현은 항소법원 판단문에서 인용된 ‘전쟁부’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한다.
전문 용어 해설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 지정: 정부가 특정 업체의 기술이나 제품 사용이 국가안보에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그 업체를 대상으로 내리는 공식 조치다. 지정되면 방산업체 등 정부 계약업체는 해당 업체의 제품·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면 인증을 해야 한다. 예비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법원의 잠정적 명령이다. 본안 판결과는 별개로, 법원은 형평성·회복불능 피해 여부 등을 고려해 임시조치를 내린다.
경제·산업적 파급효과 분석
이번 사안은 AI 업계와 방산시장 모두에 중요한 신호를 보낸다. 첫째, 미 정부가 자국의 주요 AI 기업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한 점은 다른 기술기업에게도 정부 계약 확대 시 더 엄격한 보안·통제 요구가 뒤따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앤트로픽이 DOD와의 주요 계약에서 배제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매출이나 민간·정부 프로젝트 수주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앤트로픽이 다른 연방 기관과의 업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은 일부 손실을 상쇄할 여지가 있다.
셋째, 방산업체들은 DOD와 일하는 과정에서 자사 사용 소프트웨어가 특정 공급업체의 모델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인증을 해야 하므로, 계약상 컴플라이언스 비용과 절차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다. 넷째, 장기적으로는 정부와의 기술 협업이 강화되는 대신, 민간 기업의 기술 제공 조건에 대한 협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은 AI 기술의 군사적·민간적 활용에 대한 정책적 논의를 촉발할 것으로 보이며, 규제·안전성·책임소재를 둘러싼 법적 선례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절차는 항소법원이 본안 심리를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항소법원은 신속한 처리를 명시했으나, 본안 판단까지는 추가적 소송절차와 시간이 예상된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AI 기업의 정부 계약 접근 방식, 방산 분야의 기술 통제 정책, 그리고 민간-공공 협력의 법적 기준에 중요한 선례를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 본 보도에는 CNBC의 관련 보도가 인용 및 참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