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국과 체결한 무역 합의와 동등하게 우대받기를 요청했다며 조심스러운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다음 달 예정된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양국 간 긴장 완화를 도모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026년 2월 2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조치로 일부 일본 수출 품목의 관세 부담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의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무역상(Trade Minister)과 미국의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상무장관은 2월 23일 통화에서 양국이 지난해 합의한 무역 협정을 “성실히·지체 없이(in good faith and without delay)” 이행하겠다고 확인했다고 일본 무역성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1에 근거한 관세를 무효화한 판결을 내린 직후, 모든 국가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 임시 1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 15%는 IEEPA와는 별도의 법률에 따라 허용되는 최대 수준의 관세라는 점을 미 행정부가 밝혔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무역법을 통해 무역 합의를 깰 경우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아카자와 무역상은 2월 24일 브리핑에서, 지난해 합의로 관세 인하 혜택을 받고 있는 일부 일본 수출품이 새로운 관세 정책이 기존 관세에 “병과(쌓임)”될 경우 더 높은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역성 관계자는 이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의해 더 높은 관세를 받을 수 있는 품목은 최혜국대우(MFN, Most Favoured Nation) 기준으로 15%보다 낮은 관세가 적용되던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아카자와 무역상은 일본은 지난해 합의한 무역협정과 동등하게 우대받기를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양국은 지난해 7월 자동차 및 기타 품목의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합의에 도달했으며, 일본은 미국행 대출·투자 명목으로 5,500억 달러(약 5500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를 약속했다. 이 합의는 관세 인하와 일본의 대미 투자 약속을 교환하는 형태다.
아카자와 무역상과 다른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직접 논평을 자제하면서 판결의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만 밝혔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Keidanren)의 츠츠이 요시노부(筒井義信) 회장은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미국 법원 판결이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했다”며 “전체적으로 경제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가 기업 투자의 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프로젝트에 대한 일본의 자금 조달
노무라종합연구소(Nomura Research Institute)의 이코노미스트 기우치 다카히데(菊池隆秀) 추정에 따르면, 미국이 IEEPA에 근거한 관세를 대체할 영구적 관세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간 약 0.375%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됐다.
또한 양국은 지난주 일본이 자금을 조달하는 첫 번째 미국 내 프로젝트 3건을 공개했는데, 이들 프로젝트의 가치는 총 360억 달러로 알려졌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원유 수출 설비, 산업용 다이아몬드 공장, 가스 발전소가 포함된다.
아카자와 무역상은 “일본이 손해를 보도록 강요된 것은 아니다“라며 관세와 투자 약속을 포함한 이 합의는 중국산 희토류 의존 등 경제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윈-윈(Win-Win) 거래“라고 설명했다. 그는 추가 무역 협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도쿄가 합의를 재검토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 이유는 합의를 건드릴 경우 대법원 판결의 영향 밖에 있는 부문별(섹터별) 고율 관세가 특히 자동차 산업 등 핵심 산업에 대해 더 가혹하게 적용될 위험을 트럼프 대통령이 감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나아가 일본은 사나에 다카이치(高市早苗) 총리의 3월 말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있다. 도쿄는 중국의 수출 통제 등 안보적 우려를 감안할 때 이 방문을 자국 안보에 매우 중요한 일정으로 보고 있으며, 기존 합의를 유지함으로써 미·일 관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용어 설명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1은 미국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제 제재나 통상 제한을 포함한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IEEPA를 근거로 부과된 일부 관세를 무효로 했으며, 이는 행정부의 권한 범위와 의회의 권한 배분 문제를 둘러싼 법적 쟁점과 맞닿아 있다.
최혜국대우(MFN, Most Favoured Nation)는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무역에서 한 국가가 특정 국가에 제공하는 관세·무역 조건을 모든 기타 회원국에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기사에서 언급된 “MFN 기준으로 15%보다 낮은 관세”란 해당 품목이 기존에 더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아 왔다는 의미다.
전문가적 분석 및 향후 전망
현재 상황은 다음 세 가지 핵심 경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미국이 임시 15% 관세를 유지하되 기존의 미·일 합의에 포함된 품목에 대해 실질적 우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실무상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일본 수출업체의 단기적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다. 둘째, 미국이 다른 무역법을 적용해 섹터별로 고율 관세를 새로 도입할 경우, 특히 자동차와 같은 핵심 제조업 부문에서 공급망 재조정과 투자 축소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셋째, 일본 정부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고 투자 약속을 통해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선택을 유지하면, 단기적 무역 충격은 완화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 불확실성이 기업 투자 결정의 하방 요인으로 남을 것이다.
구체적 수치로 보면, 노무라의 연간 GDP 0.375% 상승 추정은 미국이 영구적 고관세 대신 투자와 관세 인하를 병행할 경우의 이득을 반영한다. 반대로 미국이 섹터별 고관세를 도입하면 일본의 대미 수출 감소와 생산 이전, 공급망 재편으로 GDP 성장률에 부정적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관세 불확실성이 엔화 변동성을 키우고, 일본 기업의 대외직접투자(FDI)와 주가에 일정한 하방 리스크를 줄 것으로 보인다.
기업 대응 전략으로는 리스크 분산, 계약 재검토, 공급망 대체 부품 확보, 대미 수출 포트폴리오 조정이 권고된다. 특히 자동차 부문은 관세 부담을 감안한 가격경쟁력 재산정과 북미 현지 생산 확대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 정책 측면에서는 도쿄가 합의 유지를 통한 외교적 안정 노선을 선택한 점은 단기적 충격 흡수에는 유리하나, 중장기적으로는 무역 규범과 다변화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다음 달 예정된 총리의 워싱턴 방문을 전후로 미·일 합의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 다만 미국의 추가 조치 가능성은 남아 있어 기업과 투자자는 단기적 방어 전략과 함께 시나리오별 대응 준비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