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 엑손·유람선사 대상 헬름스-버튼법(Helms-Burton) 소송 심리

미국 연방대법원헬름스-버튼법(1996)의 적용 범위를 두고 엑손모빌(ExxonMobil)과 여러 유람선사(크루즈사)를 둘러싼 소송 쟁점을 심리한다. 이들 사건은 쿠바가 1959년 혁명 이후 몰수한 재산을 두고 미국 기업들이 미국 법원에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의 구체적 효력과 소송 요건을 가르는 핵심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2026년 2월 23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헬름스-버튼법에 근거한 두 건의 사건에 대해 연속 변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법은 쿠바 공산정부가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집권 이후 몰수한 재산을 ‘거래(trafficking)’한 자에 대해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사건 개요

첫 번째 사건에서는 엑손모빌이 쿠바 정부가 1960년에 몰수한 석유·가스 자산에 대해 쿠바 국영기업들로부터 미화 10억 달러를 초과하는(>$1 billion)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몰수 시점에서 엑손의 손실 가치는 약 7천만 달러($70 million)로 평가되었으나, 현재 엑손은 이자와 확대된 손해배상 가능성을 포함해 훨씬 큰 규모의 청구를 제기하고 있다.

엑손은 2019년 쿠바의 최대 콘글로머릿인 Corporación CIMEX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엑손은 CIMEX가 몰수된 재산을 계속 보유·이용하며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급심은 쿠바 국영기업들이 foreign sovereign immunity(외국 주권면제)라는 법적 방어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엑손은 이를 이유로 연방대법원에 항소했다.

두 번째 사건은 4개 유람선사를 상대로 한 소송으로, 해당 유람선사는 Carnival, Royal Caribbean, Norwegian Cruise LineMSC Cruises이다. 이 사건은 미국의 한 회사가 건설한 항만 터미널을 유람선사들이 사용했는데, 그 터미널 역시 1960년에 쿠바 정부에 의해 몰수된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유람선사 사건은 연속 변론 중 먼저 심리된다.

해당 유람선사 사건은 Havana Docks라는 미국 법인이 제기했다. Havana Docks는 1934년에 당시 쿠바 정부로부터 부여된 99년 항만 운영·건설 양도권(concession)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카스트로 정부가 이를 철회했다. 유람선사들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해당 터미널을 사용했으며, 이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여행 규제를 완화한 시기와 겹친다.

연방법원 판사는 한 때 이들 유람선사들이 터미널 사용으로 인해 불법적 ‘거래(trafficking)’에 관여했다며 1억 달러를 넘는(more than $100 million)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하급심은 해당 판결을 뒤집고 Havana Docks의 청구권이 실효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는데, 그 근거는 해당 양도권이 2004년에 만료되어 유람선사들이 시설을 이용한 시점(2016~2019) 이전에 이미 권리가 소멸했다는 점이었다. Havana Docks는 이 판단에 항소했다.


법적 쟁점 및 핵심 용어 설명

헬름스-버튼법(Helms-Burton Act, 1996)은 1996년에 제정된 미국 연방법으로, 쿠바에서 몰수된 미국 시민·기업의 재산을 대상으로 제3자가 이 재산을 ‘거래’할 경우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법은 미국 의회가 의도한 구제책의 범위와 집행 가능성을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외국 주권면제(foreign sovereign immunity)는 외국 정부 및 그 기관·대리인이 원칙적으로 타국 법원에서 소송 대상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리다. 다만 예외 조항이 존재하며, 어느 경우에 면제가 적용되는지는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와 법원의 해석에 달려 있다. 연방하급심은 쿠바 국영기업들에 대해 이 면제가 적용된다고 판단했으나, 연방대법원은 이 판단의 적합성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거래(trafficking)’의 의미는 헬름스-버튼법 적용 여부의 핵심이다. 법은 단순 소유권 이동뿐 아니라 몰수된 재산의 사용·이용·이익 취득 등 광범위한 행위를 포함할 수 있으나, 법원은 어떤 행위를 ‘거래’로 볼 것인지 엄격히 해석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적 배경과 행정부의 입장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본 소송에서 엑손의 손을 들어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행정부는 쿠바를

‘an unusual and extraordinary threat’

라고 규정했고, 베네수엘라산 석유의 쿠바 공급 차단, 쿠바에 연료를 공급하는 국가들에 대한 관세 부과 위협 등 강경한 정책을 펴고 있다. 연방법상 헬름스-버튼법의 소송 허용 조항은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일시 중단(suspension)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과거 캐나다·스페인 등 우호국과 쿠바에 투자한 기업들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한 전임 대통령들이 이 조항의 적용을 정기적으로 유예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중인 2019년에 해당 유예를 해제했다. 이로 인해 헬름스-버튼법 조항을 근거로 한 민사소송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원의 판단이 갖는 의미

두 사건은 서로 다른 법률적 쟁점을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의회가 헬름스-버튼법을 통해 의도한 구제의 폭을 어느 정도로 봤는지를 가리는 문제를 제기한다. 연방대법원은 이들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법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때 직면하는 여러 장벽을 없애거나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특히 외국 주권면제의 적용 범위와 ‘거래’의 법적 정의가 대법원 판결로 명확해질 경우, 향후 유사한 소송의 제기·인용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무적·경제적 파급 효과 분석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에너지·항만·관광산업과 관련 기업의 법적 리스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대법원이 엑손과 같은 청구인의 손을 들어주어 쿠바 국영기업에 대한 소송 가능성을 확장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쿠바 관련 자산을 보유·이용한 다국적 기업들, 특히 에너지 및 해운·크루즈 부문의 기업들이 추가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보험료 상승, 법적 준비비용 증가, 투자 위험 프리미엄 확대로 이어져 관련 기업의 단기 주가 변동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반면, 대법원이 외국 주권면제의 적용을 인정하거나 ‘거래’의 범위를 좁게 해석할 경우, 유사 소송 제기는 줄어들고 관련 기업들의 법적 불확실성이 완화되며, 단기적으로는 해당 기업들의 비용 부담과 주가 변동성 완화가 기대된다. 특히 유람선 업계의 경우 2016~2019년 쿠바 노선 운항과 관련한 손해배상 위험이 재평가되면 운항 계획·노선 다변화·보험 구조 재설계 등 실무적 대응이 요구될 수 있다.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미-쿠바 관계와 미국의 대(對)쿠바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주목된다. 강경한 판결은 쿠바와의 외교적 긴장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유럽·캐나다의 대쿠바 투자자들과의 외교적 부담을 높일 수 있다. 반면 자국 법원의 소송 허용 범위를 축소하는 판결은 미국과 우방국 간의 법률·경제적 마찰을 완화할 수 있다.


전문가 견해 및 전망

법률 전문가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헬름스-버튼법의 향후 적용 범위를 확정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 법률 분석가는 “대법원의 해석은 단순한 민사구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적 주권 문제와 기업의 대외투자 위험 관리를 바꾸는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두 사건에서 서로 다른 법리적 질문을 받는 만큼, 양자 모두에서 동일한 결론을 내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결론

연방대법원의 이번 심리는 헬름스-버튼법의 실효성외국 주권면제의 적용 범위를 재정립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엑손과 유람선사 관련 사건의 결과는 기업의 법적 책임, 보험·투자 리스크, 그리고 미-쿠바 및 미-우방국 관계에 이르는 폭넓은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관련 업계의 규제·소송 환경이 단기간 내에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