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달러 약세에 따라 국제금융에서 더 큰 역할을 준비해야 한다고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 결정자이자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인 마르틴 코허르(Martin Kocher)가 밝혔다. 코허르의 발언은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유동성 백스톱 확대 계획을 ECB가 공개한 직후 나왔다.
2026년 2월 9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발언은 비엔나에서 이뤄졌으며 기사 원문은 발라즈스 코로니(Balazs Koranyi)와 프랑수아 머피(Francois Murphy)가 취재했다. ECB는 지난주 유로화 유동성 백스톱 접근 범위를 넓히는 계획을 발표했고, 관련해 EU 지도자들에게 이행을 촉구하는 과제 목록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는 오랜 기간 논의돼 온 금융체계 개혁에 새로운 긴급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코허르는 유로화의 국제적 수요와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 강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유로화에 대한 상대국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유로화의 가치 상승과 안전자산 성격 강화의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로화는 1년 전과 비교해 달러 대비 약 14% 상승했고, 이는 일관성 없는 미국의 무역정책에 대한 신뢰 약화와 유럽 내 국방 및 인프라 지출 확대에 따른 자신감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현재 전 세계 외환보유고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전히 달러로 보유돼 있으나 지난 10년간 달러 비중은 꾸준히 하락해 왔고 추가적인 후퇴가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유로화는 대략 20%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어 잠재적 수혜국이 될 수 있다. 코허르는 이러한 글로벌 재편이 유로화에 더 큰 무대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유로의 국제적 역할 확대를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준비가 중요하며 이는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우리의 의무의 일부이다
코허르는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국제 환매조건부채권(리포, repo), 통화스왑(swap) 등 다양한 도구들을 거론했다. 이는 위기 시 국제 금융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수단을 의미한다. ECB는 특히 유로화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확대될 때를 대비해 유동성 공급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용어 설명
여기서 사용된 주요 용어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유동성 백스톱(liquidity backstop)은 금융시장 또는 은행 시스템에 유동성이 급격히 부족해질 경우 중앙은행이 긴급히 제공하는 유동성 지원 장치를 가리킨다. 리포(repo, 환매조건부채권)는 한 쪽이 채권을 팔고 일정 기간 뒤 다시 사들이기로 약정함으로써 단기 자금을 조달하는 거래 방식이다. 통화스왑(swap)은 두 중앙은행이 상호 통화를 교환해 단기 외환유동성을 제공하는 협정으로, 시스템적 충격 시 외환시장의 안정화에 쓰인다.
정책·시장 반응과 전망
ECB의 조치와 코허르의 언급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 유로화의 강세는 단기적으로 수입 물가를 낮추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기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유로 강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은 이미 2025년 상반기에 발생한 것으로 가정돼 ECB의 전망치에 반영돼 있다. 코허르는 환율 변동이 목표(inflation target)에 큰 영향을 미쳐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을 하락시키지 않는 이상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둘째, 국제 외환보유고의 다변화 흐름은 달러 중심의 구조에 점진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절반 이상을 달러로 보유하고 있는 구조가 완전히 바뀌기까지는 시일이 걸리지만, 지속적 흐름은 유로화 수요 증가로 이어져 유럽 금융 인프라 강화 필요성을 높인다. 유로화가 글로벌 결제 수단 및 준비자산으로 더 확고히 자리잡을 경우, 유럽 국채 수요 증가와 함께 장기금리 변동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지정학적 요인인 유럽과 미국의 관계 변화, 그리고 중국과의 경제경쟁 심화는 금융·국방·무역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게 한다. 이는 유럽이 자체적인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금융안정 도구의 유럽 내부 조율과 EU 차원의 규범 정비가 병행돼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통화정책과 ECB 입장
코허르는 유로존 통화정책에 대해 ECB의 steady-hand policy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ECB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며, 올해 내 금리 변동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 널리 퍼져 있다. 코허르는 “지금은 인플레이션 전망과 경제 전망 모두에 대해 위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책 기조를 바꾸려면 환경의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ECB가 환율 변동을 정책 운용의 주요 변수로 고려하되, 현 시점에서는 환율 자체만으로 정책 기조를 변경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즉, 유로 강세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쪽으로 작용하더라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통화완화 또는 긴축의 판단은 다른 거시지표와 함께 종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다.
시장·정책 시사점 분석
전문가 관점에서 볼 때, 유로의 국제적 역할 확대 가능성은 여러 채널을 통해 향후 가격과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 환율의 추가 강세가 지속되면 유로존 수출 경쟁력 약화로 성장률에는 하방 압력이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수입물가 하락으로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개선돼 내수에는 일부 긍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유로화 예비자산 수요가 늘면 유로표시 자산의 유동성이 확대되고 유로채권 수요 증가로 금리 구조에도 변동성이 생길 수 있다.
정책적으로는 ECB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유로 유동성 공급 체계와 유사시 작동할 백업 메커니즘을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 이는 통화스왑 라인 확대, 중앙은행 간 협력 강화, 그리고 유럽 내부의 결제·청산 인프라 개선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준비는 위기 시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고 시스템 리스크 확산을 방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코허르의 발언은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 변화를 단순한 통화 이동으로만 보지 않고, 이에 따른 제도적·정책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유럽은 달러 중심의 구조적 약점을 인식하고 유로의 안전자산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편, 통화·재정·안보 정책의 조율을 통해 변화하는 글로벌 금융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향후 ECB의 백스톱 세부 내용 발표와 EU 차원의 금융체계 개혁 진전이 시장과 정책 방향을 좌우할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