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자산운용 대형사인 UBS가 지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의 계좌를 2014년에 개설해 여러 해 동안 자금을 관리했고, 제프리 에프스타인(Jeffrey Epstein)이 체포된 이후에도 맥스웰의 자금을 이동시킨 정황이 문서에서 드러났다.
2026년 2월 8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가 지난달 공개한 문서들에는 UBS가 2014년 맥스웰을 위해 개인 및 사업용 계좌를 열었고, 현금·주식·헤지펀드 투자 등을 포함해 최대 1,900만 달러(약 19백만 달러)까지 관리한 정황이 담겨 있다.
문서에는 이메일과 은행 명세서 등이 포함돼 있으며, UBS가 맥스웰에게 2명의 관계관리자(relationship managers)를 배정해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이동시키도록 돕고, 고액 자산가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제공한 내용이 적시돼 있다. 맥스웰은 2020년에 체포됐고, 2021년에는 10대 소녀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도록 에프스타인을 도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징역 20년 형을 복역 중이다.
문서에는 특히 UBS가 맥스웰의 개인비용과 사업비용을 위해 계좌를 열었고, 자선단체인 TerraMar Project와 Ellmax, Pot & Kettle, Max Foundation, Max Hotel Services 등 여러 명의 법인 계좌도 관리한 기록이 포함돼 있다. 2014년 2월만 해도 맥스웰의 UBS 계좌 중 하나에는 거의 200만 달러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서에 따르면 제이피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는 에프스타인 관련 리스크를 우려해 에프스타인의 계좌를 종료한 뒤인 2014년 초에 맥스웰을 UBS로 이전하도록 절차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소로스 프라이빗에쿼티 파트너스(Soros Private Equity Partners)의 파트너였던 데이비드 와송(David Wassong)이 맥스웰을 UBS에 소개한 이메일이 남아 있다.
“I have cced one of my best friends named Ghislaine maxwell (sic). She is looking for a new wealth manager, and I told her she had to meet you,”
2014년 2월 14일자로 보이는 이메일에서는 “JPMorgan에서의 전환을 신속히 처리해 달라. 맥스웰이 다음 주에 한 달 넘게 떠나므로 서류를 출발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요지의 요청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UBS 측 담당자들은 제출된 서류를 검토했으며 계좌 이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후속 질문이 있다고 회신한 기록이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제프리 에프스타인이 제이피모건 계좌 종료 이후 UBS로부터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는 이메일도 존재한다. 그러나 해당 계좌는 같은 해 9월에 닫혔고, 에프스타인의 회계사는 UBS가 이를 결정한 이유를 “평판 리스크(reputational risk)” 때문이라고 통보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BS는 당시 언론을 통해 맥스웰의 에프스타인과의 근접성이 보도된 사실이 있었음에도 맥스웰과의 거래를 유지했다.
문서에는 UBS가 맥스웰의 자금 이동 지시를 처리한 여러 사례도 기록돼 있다. 예컨대 2016년 맥스웰은 자신과 같은 해 결혼한 스콧 보저슨(Scott Borgerson)에게 250만 달러를 이체해 달라고 은행에 지시했다. 또한 2019년 7월 22일, 에프스타인의 체포 16일 뒤 UBS는 맥스웰의 요청에 따라 저축계좌에서 당좌계좌로 13만 달러(130,000달러)를 이동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 대금을 결제하도록 한 기록이 있다.
그해 2019년 8월 16일에는 UBS가 맥스웰에 대해 대배심 소환장(Grand Jury Subpoena)을 받았다는 사실을 연방수사국(FBI)에 보낸 서한을 통해 공개했다. 서한에 따르면 UBS는 송금 기록 등 관련 정보를 FBI에 제공했다.
법적·윤리적 책임과 은행의 실무(실사) 여부
문서들은 UBS가 맥스웰의 계좌를 제이피모건에서 옮겨오기 전에 일부 실사를 실시한 정황을 보여주나, 그 실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불명확하다. 보도는 UBS나 자문사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증거는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UBS는 본 보도 관련 질의에 응하지 않았고, 맥스웰의 변호인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편 제이피모건은 과거 에프스타인 관련 고객 관리를 하던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맥스웰을 “고위험 고객(High Risk Client)“으로 표기했으며, 2013년에 에프스타인의 계좌를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제이피모건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는 “은행 정책상 전과자(felons)는 고위험으로 간주돼 추가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제이피모건은 2023년에 이 사건과 관련해 7,500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지급한 바 있다. 제이피모건 측은 에프스타인의 범죄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본 건에 대해 별도 언급을 거부했다.
용어 설명
대배심 소환장(Grand Jury Subpoena)은 형사 수사에서 대배심이 특정인에게 문서 제출 또는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법적 명령이다. 은행이 이러한 소환장을 받는 경우, 통상 송금·계좌내역 등 관련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TerraMar Project는 맥스웰이 관여한 비영리 단체 이름으로 문서상에는 해당 단체관련 계좌 및 자금 흐름이 UBS 계좌를 통해 처리된 정황이 담겨 있다.
금융시장과 규제에 미칠 수 있는 파장
이번 문서 공개는 UBS의 평판 리스크와 자금세탁 방지(AML)·고객확인(KYC) 절차의 적정성에 대한 재검토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은행이 고위험 인물 또는 주변인과 거래할 때 수행해야 하는 실사는 규제당국 심사 대상이 되므로, 관련 규제기관이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과태료·시정명령을 내릴 여지가 있다.
시장 관점에서는 이번 보도가 UBS의 주가나 자금 유치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는지 여부는 문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유사 사건의 선례를 보면, 평판 손상은 단기적으로 고객 이탈과 자산운용 수수료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규제 강화와 내부 통제 비용 상승을 통해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자산관리 부문에 중점을 둔 은행의 경우 고액 자산가의 신뢰가 핵심 경쟁력이므로, 관련 의혹이 확산되면 운용자산(AUM) 감소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한다.
규제당국은 또한 은행의 내부 통제 및 거래 상대방 리스크 관리 체계를 들여다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업계 전반의 KYC·AML 기준을 한층 더 엄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향후 글로벌 은행들의 준법비용(compliance cost)이 상승할 전망이다.
종합적 평가
이번 공개 문서는 UBS가 맥스웰과의 관계를 수년간 유지하면서 자금 이동에 관여한 여러 정황을 보여준다. 문서 자체는 은행이나 자문사들의 불법행위를 직접 입증하지는 않으나, 평판 관리와 실사 절차의 적정성을 둘러싼 의문을 제기한다. 향후 규제기관의 조사 여부, 은행의 추가 설명 및 내부 개선 조치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