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카프(Brad Karp)가 이끄는 뉴욕의 저명 로펌 폴 바이스(Paul Weiss)에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한동안 이 회사를 장악해온 리더십이 어떻게 급속히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26년 2월 7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카프는 2024년 11월 대선 당일 워싱턴의 선거 밤 행사에서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를 지지하는 민주당 기금 모금자들과 함께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카프는 2024년 7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해리스의 기금 모금 활동을 위해 수백 명의 기업 변호사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폴 바이스의 한 파트너가 해리스의 도널드 트럼프와의 토론 준비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4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2025년 1월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이후 연쇄적인 사건들이 폴 바이스를 흔들었다. 특히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가 고(故) 금융인 겸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관련 기록을 공개하면서 카프가 엡스타인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연락 흔적이 드러났고, 카프는 이번 주 로펌 의장직에서 사임했다.
카프는 범죄 혐의로 기소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로이터는 분명히 전했다. 하지만 공개된 서류와 이메일은 그가 엡스타인과 광범위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음을 보여주며, 이 정보는 수일 만에 카프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로펌 내 권력을 약화시켰다. 한 전(前) 고위 폴 바이스 변호사는 익명을 전제로 로이터에 “만약 로펌 리더에 대한 그리스 비극을 쓰려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사례다(If you were going to write a Greek tragedy about a law firm leader, this is it)”라고 말했다.
폴 바이스의 변신과 카프의 리더십
폴 바이스는 1875년 새뮤얼 윌리엄 바이스(Samuel William Weiss)와 줄리어스 프랭크(Julius Frank)에 의해 설립돼 오랫동안 시민적 자유를 수호하는 로펌으로 알려져 왔다. 1940년대에는 주요 뉴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파트너를 임명했고, 1954년 흑인 민권 변호사 서구드 마샬(Thurgood Marshall)을 도와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을 지원하는 등 역사적 사건에 관여했다.
카프는 1983년 여름 인턴(서머 어소시에이트)으로 폴 바이스에 합류한 뒤 줄곧 이곳에서 경력을 쌓아왔고, 소송부를 이끈 뒤 2008년 의장으로 선출돼 로펌을 변호 중심의 중견 로펌에서 글로벌 고액 수임 중심의 강력한 플레이어로 탈바꿈시켰다. 로이터는 폴 바이스 변호사들과 스태프가 2024년 선거 기간에 다른 대형 로펌보다 민주당에 대한 기부를 더 활발히 했다고 보도했다.
카프의 리더십 하에 로펌은 진보적 원인에 대한 프로보노(무상법률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행정 경험이 있는 소송 변호사와 함께 월가의 거래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그는 시티그룹(Citigroup), JP모건(JPMorgan) 등 대형 은행과 내셔널 풋볼 리그(NFL) 등 주요 기관을 고객 명단에 올려놓았다. 법률업계 자문가 켄트 지머만(Kent Zimmermann)은 인터뷰에서 카프가 스타 레인메이커들을 끌어들이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어 폴 바이스를 최상위 로펌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제재와 카프의 타협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한 뒤, 폴 바이스는 곧바로 표적이 됐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2025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건물 출입과 정부 계약 대상에서 폴 바이스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트럼프가 적대적으로 본 여러 로펌에 대해 취한 일련의 지시 중 하나였다.
카프는 이 행정명령이 유력 고객의 이탈과 150년 역사의 파멸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백악관과 합의에 나섰다. 그는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고, 그 자리에서는 골프에 관한 긴 대화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회의에는 공화당계 로펌 설리반 & 크롬웰(Sullivan & Cromwell) 공동 의장인 로버트 주프라(Robert Giuffra)가 전화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는 이후 카프가 행정명령을 철회하는 합의를 협상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합의의 핵심은 대통령이 지지하는 공익사업에 대한 4천만 달러 규모의 무료 법률 서비스 제공이었다.
이후 유사한 방식으로 8개 로펌이 정부와 합의를 맺어 총 거의 10억 달러에 달하는 법률 업무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반면 트럼프가 표적 삼은 4개 로펌은 소송을 제기해 해당 행정명령이 위헌이라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엡스타인 관련 이메일 공개와 사임
의회 양당의 압력으로 법무부가 엡스타인 관련 파일을 공개했으며, 1월 말 공개된 이메일 기록에는 카프와 엡스타인 간의 광범위한 서신이 포함돼 있었다. 이메일에는 카프가 2015년에 우디 앨런(Woody Allen)과 함께한 “a once in a lifetime”(일생에 한 번뿐인) 저녁식사에 대해 엡스타인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 내용, 카프가 자신의 아들이 해당 감독의 영화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얻도록 엡스타인의 도움을 요청한 내용 등이 있었다.
또한 이메일에는 레온 블랙(Leon Black,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공동창업자) 관련 금전 요구 문제를 두고 카프와 엡스타인이 논의한 정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밖에 두 사람이 엡스타인이 2008년 플로리다에서 성매매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체결한 비기소 합의(non-prosecution agreement)을 논의한 흔적도 있었다. 공개된 문건은 카프와 엡스타인의 접촉이 최소 2019년 초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엡스타인은 이후 성매매 및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됐고, 재판을 앞두고 맨해튼 교도소 수감 중 사망했다.
공개 직후, 카프는 수요일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보도는 혼란을 야기했고 로펌에 최선이 아닌 방식으로 나에게 초점을 맞추게 했다“며 의장직 사임을 밝혔다. 폴 바이스는 이전 성명에서 카프가 엡스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유감스럽게 여긴다고 밝히고, 그가 “부정행위를 목격하거나 참여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로펌은 카프가 여전히 폴 바이스에 남아 고객을 대리할 것이라고 밝혔고, 의장직은 카프가 2016년 합류를 권유해 M&A(인수·합병) 및 기업 업무를 강화하도록 한 스콧 바라셰이(Scott Barshay)로 교체됐다.
조직 내부 변화와 향후 파장
트럼프 행정부와의 합의 및 엡스타인 관련 공개로 인해 최소 열두 명 이상의 파트너들이 로펌을 떠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들 중에는 해리스의 토론 준비를 도운 파트너도 포함돼 있으며, 이는 카프의 결정이 내부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음을 시사한다.
교수 및 업계 전문가는 카프의 사례를 “세대적 리더십(generational leader)”의 몰락이자, 집행 권력과의 근접성이 제도적 독립성을 훼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취약성의 경고 사례로 보고 있다. USC 구( Gould ) 로스쿨의 케빈 버크(Kevin Burke) 교수는 로이터에 “지도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행정권력과의 가시적 교섭은 로펌의 정체성과 충돌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본지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법률 및 행정 용어를 정리한다. 비기소 합의(non-prosecution agreement)는 피의자가 형사 기소를 받지 않도록 검찰과 합의하는 문서성 약정으로, 피의자가 일정 조건(예: 벌금, 보상, 협조 등)을 이행하면 검찰은 기소를 유예하거나 취하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행정명령에 의한 블랙리스트 조치는 연방건물 출입 제한 및 정부 계약 참여 배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연방법률 자문을 다수 제공하는 로펌에는 직·간접적 수익 손실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전문적 분석: 시장·법률계에 미칠 가능성
이번 사건은 로펌 거버넌스, 고객 신뢰, 그리고 대형 로펌의 정치적·윤리적 리스크 관리 방식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파장이 예상된다. 첫째, 대형 금융기관 및 기업 클라이언트는 평판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공급업체(법률 자문사) 재검토를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폴 바이스의 수익성 및 신규 수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로펌 내부에서는 리더십 전환과 함께 거버넌스·투명성·윤리 규정 보강 요구가 커질 것이다. 셋째, M&A·기업자문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폴 바이스의 경우 핵심 파트너 이탈이 지속되면 거래 리더십 공백이 발생해 실적에 영향이 생길 수 있다.
다만, 폴 바이스는 오랜 역사와 충성도 높은 제도적 고객, 그리고 다양한 실무진을 보유하고 있어 완전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단기적 평판 훼손, 내부 재편, 일부 수임 손실이 발생하되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리더십 아래 안정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보도는 혼란을 야기했고 로펌에 최선이 아닌 방식으로 나에게 초점을 맞추게 했다.”
카프의 사임과 관련한 성명은 위와 같으며, 이 같은 발언은 로펌 측이 향후 이미지 수습과 내부 안정화에 주력할 것임을 시사한다. 향후 법무부 추가 문서 공개 가능성과 내부 조사 결과, 그리고 주요 고객의 대응이 로펌의 실제 향방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이번 사태는 거대 로펌의 정치적 활동, 공익 소송과 기업 자문 간 균형, 그리고 경영진의 외부 인사와의 관계 관리가 어떻게 리스크로 전이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폴 바이스의 향후 행보와 법조시장에 미칠 영향은 계속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