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속 유럽·미국 관계, 전 EU 수반 “나토 역사상 최저 수준”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나토 출범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호세 마누엘 바로소가 진단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접근 방식이 동맹국들로 하여금 대서양 횡단 관계를 재검토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2026년 1월 26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바로소 전 위원장은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경력과 함께 이날 CNBC의 ‘더 차이나 커넥션(The China Connection)’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신뢰 상실이 EU를 넘어 영국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상태를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라고 표현하며, 특히 동맹 간의 신뢰 붕괴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Jose Manuel Barr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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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추진과 관련해 군사행동 가능성 시사 및 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세 인상 위협 등이 유럽 지도자들과 대중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덴마크의 반자치 영토)를 획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아르кти크(북극) 영토에 대한 통제 의사를 유지해왔다.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사무총장 마크 뤼테(Mark Rutte)와의 회동 직후 소셜미디어에 “그린란드와 관련된 향후 거래의 틀(framework of a future deal)이 있다“고 밝혔으나, 세부사항이나 덴마크의 동의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뤼테는 회담에서 그린란드 소유권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바로소는 트럼프를 “대(大) 교란자(the great disruptor)”라고 묘사하며, 그가 때로는 적국보다 동맹과 우방에게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충격파가 동맹체계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수치도 이러한 신뢰 하락을 반영한다. 유럽국제관계평의회(ECFR: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11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유럽인 중 단 16%만이 미국을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본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2024년의 21%에서 하락한 수치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의 응답자들이 미국을 경쟁자 혹은 적으로 본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동맹으로 보는 비율이 37%에서 25%로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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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측면에서의 변화와 유럽 방위 역량 강화

바로소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유럽 방위비 압박이 유럽 각국의 유럽 주권(유럽의 군사·안보 자립성) 강화 노력을 촉진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나토를 유지하려면 보다 유럽화된 나토가 될 것”이라며 유럽이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 방위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헤이그(The Hague)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회원국들이 2035년까지 자국 경제규모(GDP)의 5%에 해당하는 방위·안보 지출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합의는 워싱턴의 지속적 압박 이후에 나온 것으로, 나토의 동부 전선에 대한 군사적 존재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강화되었다.

바로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현재 나토가 더 강해졌다고 평가하면서, 스웨덴과 핀란드가 동맹에 가입

용어 설명

이 기사에서 언급된 몇몇 용어는 독자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린란드(Greenland)는 면적상 세계에서 큰 섬으로 덴마크의 자치령이며, 지정학적으로 북극권과 연결된 전략적 위치에 있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북미와 유럽의 집단안보를 위한 군사동맹으로, 집단 방위 원칙(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을 핵심으로 둔다. 또한 유럽 주권(European sovereignty)이란 군사·경제·외교 분야에서 유럽이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자주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경제·안보에 미칠 파급 효과 분석

현 상황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가는 유럽 수출기업들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으며, 특정 산업(예: 방위산업, 에너지·원자재, 해운·항공 등)은 수혜 혹은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방위비 지출 확대 약속(2035년까지 GDP 5% 수준)은 장기적으로는 유럽 내 방산주와 관련 공급망에 긍정적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반면, 통상마찰 가능성이 높아지면 단기적으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의 매출과 마진에 하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동맹 간 긴장 심화가 안전자산 선호를 촉진해 달러, 금 등의 상승 압력을 만들거나, 반대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 불일치가 달러-유로 환율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에너지 안보와 북극을 둘러싼 관심 증가는 북극 항로와 자원 개발을 둘러싼 투자·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관련 기업과 국가의 중장기 전략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책적 시사점

바로소의 진단은 동맹국들이 현 실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자주적 방위·외교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 증대를 통해 군사적 억제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외교적 대화를 통한 신뢰 회복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나토 내에서의 역할 재분배와 유럽 내 방위 산업의 재구축은 중장기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유럽 안보에 중요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 불분명한 ‘단절 단계(rupture phase)’에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소는 낙관과 비관의 이분법을 경계하면서도, 동맹의 해체를 단정짓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여전히 유럽의 안보에 핵심적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며, 향후 유럽이 자체 방위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트랜스대서양 동맹의 재구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