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스위스)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은 국제 정치·경제의 현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장이다. 2026년 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이번 연차 총회에서는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국제 무역 긴장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현직 국가원수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연단에 올라 연설·패널 토론을 진행했고, 그 내용은 실시간으로 방송되며 전 세계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2026년 1월 25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NVIDIA(엔비디아) CEO 젠슨 황 등 영향력이 큰 인사들이 참여해 연설과 패널 발언을 했다. 행사 기간 중 가장 주목받은 주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소유권 주장,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유럽과의 무역갈등 등이었다.
사진: 2026년 회의 중 보도 이미지(출처: CNBC 이미지)
리더십 코치 르네 카라이올(René Carayol)은 포춘 500·FTSE 100 경영진과 세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다보스 회의에서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식을 분석했다. 카라이올은 넬슨 만델라, 미하일 고르바초프, 토니 블레어, 팀 쿡 등과 협업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되었다.
“우리가 늘 코치하는 두 가지 큰 원칙은: 퍼포먼스(연기·표현)의 힘이 콘텐츠(내용)보다 중요하다는 것과,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훨씬 강력하다는 점이다. 단어를 외우려 하지 말고 퍼포먼스를 배워라.”
마크롱과 카르니(캐나다 총리 겸 중앙은행 출신)의 압도적 존재감
카라이올은 이번 WEF에서 에마뉘엘 마크롱(프랑스 대통령)과 마크 카르니(캐나다 총리)의 연설을 두 개의 ‘마스터클래스’라고 평했다. 마크롱은 다보스에서 연설을 통해 국제법의 경시와 규칙 없는 세계를 경고하고, 불안정성 해결을 위한 글로벌 협력을 촉구했다. 마크롱은 연설 도중 눈 감염으로 인해 파란색 에비에이터 스타일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며, 카라이올은 이 연출이 “톰 크루즈 같은 느낌”을 줬다고 평가했다. 카라이올은 마크롱의 자세를 “곧고 우직하게 서서 당당히 발언했다”며 “두려움 없고 사과하지 않는, 유럽 전체에 기개를 부여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카르니는 같은 날 다보스에서 ‘중견국(middle powers)’의 단합을 강조하며 큰 나라들이 경제 통합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세, 금융 인프라의 강압적 이용, 공급망 취약성 악용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카라이올은 카르니의 연설을 ‘탁월하다’고 표현하며, 그의 표정과 억양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카라이올의 비교 평가에 따르면 마크롱은 청중의 기억을 남기는 연설가였고, 카르니는 청중의 존경을 받는 연설가였다고 진단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다소 산만하고 준비되지 않은 연설을 했다고 카라이올은 전했다. “트럼프는 스크립트에서 벗어나 장황했고 핵심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기업 CEO와 국가 지도자는 다른 소통 도구를 사용한다
텍사스 대학교 경영학 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관련 저서의 저자인 앤드루 브로드스키(Andrew Brodsky)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국가 지도자가 사용하는 소통 전략의 차이를 설명했다. 브로드스키는 기업 CEO는 주가, 투자자 신뢰, 직원 이탈 가능성을 항상 고려해야 하므로 감정적·부정적 요소를 과도하게 노출하지 않는 반면, 국가 지도자는 존재적 위협을 강조하거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동원해 대중을 결집시키는 전략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브로드스키는 또한 효과적 리더십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으로 이미지·은유·스토리텔링을 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AI의 변화를 개인용컴퓨터(PC)의 도입에 비유하며 “AI의 영향은 PC의 등장보다 10배에서 100배 더 클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 한 사례로 소개되었다. 또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AI가 일자리를 줄이는지 늘리는지에 대한 통계적 논쟁 대신, 방사선과(라디올로지) 업계에서 AI가 오히려 일자리를 늘린 사례를 이야기로 풀어 관중에게 더 실감나게 전달했다.
빌 게이츠는 패널 토론 중 질문을 받을 때 주로 청중과의 시선 접촉을 유지하며 발언해 청중이 대화에 직접 초대된 느낌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브로드스키는 이와 같은 작은 제스처가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전문용어와 배경 설명
세계경제포럼(WEF): 다국적 기업 CEO, 정부 지도자, 학계 및 시민사회 리더들이 세계 현안을 논하는 국제 민간기구의 연례회의다. 흔히 개최지 명칭을 따서 ‘다보스 포럼’이라 부른다.
사운드바이트(soundbite): 방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짧은 발언이나 문구를 의미한다. 연설의 핵심 문장을 편집해 10초 내외로 재배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TikTok 팬 에디트: 짧은 영상 기반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틱톡에서 특정 인물이나 발언을 중심으로 만든 편집 영상을 말한다. 이러한 영상은 메시지의 유통 속도와 확산력을 높인다.
시장과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분석
다보스에서 드러난 지도자 및 CEO들의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에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파급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예: 유럽산 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 가능성)과 관련한 발언은 유럽의 수출업체, 특히 프랑스 와인·샴페인 수출 기업에 단기적 불확실성을 제공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치열하게 논의된 공급망의 ‘무기화’ 위험과 금융 인프라의 정치적 이용은 다국적 기업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상향시키는 요인이다.
금융시장에서의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 안전자산 선호가 증가해 국채와 금 등 안전자산의 수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관세·무역 갈등의 심화는 특정 수출업종(예: 럭셔리 상품, 와인·식음료)과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는 제조업의 주가에 하방 압력을 줄 수 있다. 셋째, 인공지능과 관련한 낙관적·비관적 논쟁은 기술주와 AI 관련 장비·서비스 수요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CEO의 메시지에 따라 투자자 신뢰가 단기간에 출렁일 수 있으므로 관련 기업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가격)은 민감하게 반응할 전망이다.
정책 측면에서는 각국이 공급망 다변화·전략적 산업 보호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적으로 특정 산업에 대한 국내 투자 확대, 무역 다변화 정책, 국가 간 경제 블록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단기적 시장 변동성은 증가하되,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 회복력(레질리언스) 확보를 위한 구조적 투자 수요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맺음말 — 소통은 메시지의 내용보다 전달 방식
다보스는 단지 정책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장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가 세계적 의제의 흐름과 시장의 반응을 좌우하는 무대임을 재확인시켰다. 연설자의 자세, 표정, 은유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짧은 소구 문구는 글로벌 여론과 투자자 심리에 즉시 반영된다. 이번 회의에서 보인 사례들은 전략적 소통(performative communication)이 현대 정치경제 환경에서 갖는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향후 정책·시장 분석과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