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AI 대계획 1년 경과, 인프라 확충은 성공을 거뒀나

영국 정부가 2025년 1월 발표한 AI 기회 행동 계획(AI Opportunities Action Plan)은 국가를 ‘AI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담았다. 당시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는 이 전략이 국가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AI)을 배치하는 청사진이라고 선언했다. 이 계획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AI 롤아웃에 필요한 막대한 연산(컴퓨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데이터센터를 신속히 확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 성장(그로스) 존(AI growth zones)이라는 지정 지역을 도입해 계획 허가 완화전력 접근성 개선을 통해 건설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 12월 27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출범 1년을 맞은 현재 Nvidia, Microsoft, Google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영국 내 AI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정부는 네 곳의 AI 성장 존을 공개했고, 국내 스타트업인 Nscale 등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국가 전력망을 통한 에너지 접근이 심각히 제한돼 있고, 건설 속도가 더디다는 점을 근거로 영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업체 AVK의 CEO인 Ben Pritchard는 CNBC에 “야망과 실행은 아직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장은 주로 전력 가용성의 제약으로 인해 억제되고 있다. 특히 전력망 병목 현상은 개발 속도를 늦추며 영국이 글로벌 경쟁자들을 따라잡을 만큼 인프라를 충분히 빠르게 배치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드 연결 지연( GRID CONNECTION DELAY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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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성장 존은 아직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초로 발표된 옥스퍼드셔(Oxfordshire) 부지는 2월 발표 이후 아직 건축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으며, 현재는 사업자(딜리버리 파트너) 제안서를 검토하고 있다. 9월에 발표된 영국 북동부(North East of England) 부지에서는 토지 정지 작업이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건물 착공은 2026년 초로 예정돼 있다.

또한 11월에 공개된 웨일스 북부·남부(North and South Wales)의 두 개 부지 중 북부는 투자 파트너를 물색 중이며, 영국 과학기술혁신부(Department of Science, Technology and Innovation, DSIT)는 수개월 내 파트너가 확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남부 지역은 여러 개의 집적 사이트(cluster)로 구성되어 일부는 이미 운영 중이며 일부는 추가 건설 작업이 필요하다고 DSIT는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7월에 2030년까지 최소 총 500메가와트(MW)의 수요를 충족하는 핵심 AI 성장 존 그룹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 중 적어도 하나는 1기가와트(GW)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도전 과제는 영국의 제한된 전력망 용량이다. AVK의 Ben Pritchard는 개발자들이 전력망 연결 지연을 8~10년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특히 런던 주변의 연결 요청 잔량이 전례 없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AI 워크로드가 급격히 늘면서 기업과 소비자들이 기술을 사용함에 따라 에너지 수요가 크게 증가해 이미 팽창한 에너지 시스템에 추가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개별적 위험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 전역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늦추거나 차단하고 있다.”

AI 성장 존에 대한 공개 신청(open call)은 송전탑이나 케이블이 지나는 토지 소유주들이 지정 신청을 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Kao Data의 Spencer Lamb는 “국가 전력망이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투기적 전력 신청으로 넘쳐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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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 정비(LAYING THE GROUNDWORK)

영국 전력망을 관리하는 공적 기구인 National Energy System Operator(Neso)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왔다. 이달 초 Neso는 수백 개 프로젝트를 우선순위로 선정해 전력망 접근을 가속화할 계획을 발표했다. CNBC의 질의에 대해 Neso는 AI 인프라 프로젝트가 우선순위에 포함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우선순위에 오른 상당 부분이 데이터센터였다고 밝혔다.

또한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문 기간에는 Microsoft, Nvidia, Google, OpenAI, CoreWeave 등 기업들이 영국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AI 투자를 발표했다. 이들 투자에는 최신 반도체(칩) 배치 계획과 새로운 데이터센터 개설 계획이 포함됐다. 국내 기업인 Nscale은 런던 외곽의 한 AI 팩토리에 수만 개의 Nvidia 칩을 2027년 초까지 배치하겠다는 계약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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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App의 영국·아일랜드 총괄 매니저인 Puneet Gupta는 CNBC에 “주요 민간 플레이어들의 투자는 중요한 기초를 닦았다”며 “국가 슈퍼컴퓨터와 새로운 컴퓨트 용량 계획을 중심으로 모멘텀이 형성되고 있고, 영국 내 AI ‘기가팩토리’ 구축 약속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계획들이 영국 기관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컴퓨트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되느냐가 진짜 시험대라고 그는 덧붙였다.


단기적 성과와 지속 가능성: ‘설탕 러시(sugar rush)’를 피하려면

AI 인프라의 장기적 성공은 데이터 파이프라인, 스토리지, 에너지 소싱, 보안, 인력과 기술 역량 등 풀 스택(full stack)에 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AI 인프라 기업 VAST Data의 영국·아일랜드 지역 전무인 Stuart Abbott는 CNBC에 “만약 영국이 1년짜리 단기 붐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과를 원한다면, AI 인프라를 경제적 인프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짜 시험은 실제 기관들이 안전하게 대규모로 AI를 배치할 수 있는 운영적 구조를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전 과제는 크다. 유럽 내 데이터센터 거래 규모는 미국으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에 비해 현저히 작다. 영국은 또한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비싼 에너지 비용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 약 75% 가량 높은 수준이다. 기존의 노후화된 전력망은 새로운 사이트와 연결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대안과 실행 속도

전국 전력망 접근을 확보하지 못하는 프로젝트의 대안으로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가 제시되고 있다. AVKBen Pritchard는 마이크로그리드가 엔진, 재생에너지, 배터리 등으로 구성된 독립형 전력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AVK는 현재 영국 내 클라우드 컴퓨트를 구축하는 파트너를 위해 두 개의 마이크로그리드를 설계 중이며, 이는 AI 전용은 아니지만 설계·구축에 약 3년이 걸리고 현재 그리드 전력 대비 약 10% 높은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VAST Data의 Abbott는 모든 것을 ‘그린필드(greenfield, 미개발 부지)’로만 강제하기보다 이미 전력이 존재하는 곳에 컴퓨트를 동반 배치(co-locate)하는 것이 AI 인프라를 더 빠르게 가동하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Kao Data의 Spencer Lamb는 실행 속도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 가용성과 가격, AI 저작권 문제, AI 개발 자금 조달에 관한 근본적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영국은 가장 놀라운 경제적 기회 가운데 하나를 놓치고 궁극적으로는 국제적 AI 소외국가(backwater)가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용어 설명 —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안내

AI 성장 존(AI growth zones): 정부가 지정한 지역으로, 계획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력·인프라 접근을 개선해 데이터센터 등 AI 관련 인프라 투자와 건설을 촉진하기 위한 특별 구역이다.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엔진(디젤·가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대형 배터리 등을 결합해 독립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소형 전력망으로, 중앙 전력망(그리드)에 의존하지 않거나 그리드와 병행 운용할 수 있다.

그린필드(greenfield): 기존 인프라가 없는 미개발 부지를 의미하며, 새로 건설할 때 초기 인프라 비용과 기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

Neso(National Energy System Operator): 영국의 전력망 관리·조정 공적 기구로, 전력망 연결 요청을 처리하고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적 영향과 향후 전망 — 체계적 분석

단기적으로 볼 때 전력망 병목은 AI 데이터센터 건설의 속도를 지연시키며, 이는 곧 국내 기업들이 이용 가능한 로컬 컴퓨트 용량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로컬 컴퓨트가 부족하면 기업들은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나 해외 데이터센터에 의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연된 디지털 전환과 추가적인 운용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비용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전력망 우회 수단(예: 마이크로그리드)에 대한 의존은 초기 투자비와 전력 단가를 높여 데이터센터의 운영비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와 Neso가 전력망 연결 절차를 단축하고 우선순위 지정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나면, 2030년 목표인 총 500MW 이상의 AI 성장 존 달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특히 한 곳이 1GW 이상으로 확장된다면 대규모 AI 워크로드를 국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기술 생태계와 관련 일자리 창출, 연구·개발(R&D)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연결 지연이 장기화되면 해외 자본의 이탈과 투자 회피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대학·연구소의 슈퍼컴퓨팅 활용 제한, 스타트업의 성장 제약으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결론 및 관전 포인트

출범 1년을 맞은 영국의 AI 인프라 전략은 대규모 투자 약속과 몇몇 초기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실질적 인프라가 가동되어 기관·기업이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아직 불충분하다. 향후 주목할 지표는 Neso의 우선순위 조치가 실제로 연결 지연을 얼마나 단축하는지, 북동부 부지의 2026년 초 착공 진행 여부, 웨일스 북부의 투자 파트너 확정 시점, 그리고 Nscale의 2027년 초 칩 배치 이행 여부이다. 이러한 변수들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영국의 AI 경쟁력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정부·규제당국·민간이 전력망 병목과 에너지 비용 문제를 얼마나 신속·효율적으로 해소하느냐가 향후 5년 내 영국의 AI 산업의 위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