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AI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선도해온 기후 목표를 유지할 것인가의 선택점에 서 있다는 진단이 투자자·운용사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Wedbush Securities의 Dan Ives는 CNBC에 “유럽에는 지금이 갈림길(fork in the road) 순간이다. 유럽은 ‘미래에 참여(play in the future)’할 것인지, 아니면 이 기술 물결의 큰 부분을 놓칠 위험이 있는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 12월 27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딜레마는 그린 에너지 규제와 충돌하면서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관련 데이터센터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에너지 공급이 최대 병목으로 지목된다. 미국은 빌드아웃(build-out)을 지원하기 위해 화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반면, 유럽은 개발자들에게 에너지·수자원 효율성 조치의 공개를 요구해 각종 허가·절차가 늘어나 프로젝트 착수가 느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자료사진: Johnson Controls 관련 영상 캡처
유럽연합(EU)은 종종 의제 설정형 환경정책의 모범으로 평가받아왔으며, 탄소국경조정세(carbon border tax) 등 새로운 메커니즘을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규제가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Ives는 유럽이 “반(反)기업적(anti-entrepreneur)으로 보인다”며, 이는 유럽의 기술 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이 보다 우호적인 정책을 찾아 미국, 중동, 아시아로 이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 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의 한계
AI 경쟁에서 뒤처진 격차를 좁히려 할수록 전력집약적 인프라의 수요는 증가하고, 이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증한다. 당초 추가되는 재생에너지 용량은 더 오염이 심한 전력원을 대체하는 것으로 기획되었으나, 현재 상황은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Invesco의 지역 글로벌 마켓 전략가 Paul Jackson은 CNBC에 “영국에서 이미 일부 공약을 되돌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유럽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데이터센터 에너지 요구 관련 영상 캡처
Jackson은 “경기가 좋을 때는 개인·기업·정부를 설득해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비용을 분담시키는 것이 쉽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는 입법자들이 기후 의제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의 전력망은 석탄 사용에서 벗어난 상태이나, 유럽 전체의 전력망은 여전히 석탄·가스 혼용 상태라는 지적이 있다.
Van Lanschot Kempen의 글로벌 상장 인프라 책임자 Jags Walia는 “어떤 단계에서는 석탄 발전소 폐쇄가 실제로 연기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풍력·태양광)의 간헐성이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항시 연결성(constant connection)’을 보장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 측면에서 우리는 석탄 발전소를 폐쇄할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이는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해 유럽의 환경 공약 후퇴 사례
올해 유럽은 다수의 환경 관련 공약을 일부 되돌리거나 완화했다. 12월 16일에는 2035년부터의 신형 내연기관 자동차 사실상 금지 조치를 약화시켰고, 12월 9일에는 건물·도로교통·소규모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EU 배출권 거래제도(ETS)의 시행을 1년 유예하기로 승인했다. 다만 EU는 동시에 2040년까지 배출량 90% 감축 목표는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연초에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CSDDD)와 기업지속가능성보고(CSRD) 지침도 축소·연기된 바 있다.
정책 완화는 ‘현실적(pragmatic)’ 접근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부 인사들은 이번 움직임을 후퇴(retreat)가 아닌 현실적 조정으로 환영했다. 기후 관련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Planet A Ventures의 제너럴 파트너 Nick de la Forge는 12월 11일 CNBC ‘Europe Early Edition’에서 “유럽에 남아 있는 것이 매력 없을 정도로 변할 지점과 규제가 절실히 필요한 지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꽤 건전한 쇄신(revamp)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검토 중인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DR)의 개편 역시 “매우 실용적(pragmatic)이며 개선으로 본다”고 말했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에너지 시스템을 더 효율화하고 청정 전환을 가속할 잠재력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동시에 AI 기술의 전력 수요 증가는 스마트하고 미래지향적 계획을 요구한다.” — 유럽연합 집행위 대변인, CNBC에 전달
집행위 대변인은 EU가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면서 유럽의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집행위는 AI를 이유로 지속가능성 입법을 후퇴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집행위는 에너지 부문에서의 AI 사용에 대한 로드맵 준비를 언급하며, 이는 광범위한 ‘Apply AI Strategy’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탄소 상쇄·크레딧을 통한 대응과 그 함의
만약 정책 입안자들이 지속가능성 요건을 엄격히 유지한다면, AI 인프라 개발사들은 배출량을 탄소 제거 크레딧(carbon removal credits)이나 재생에너지 증명서(RECs)로 상쇄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탄소 크레딧 한 단위는 1미터릭톤(metric ton) CO₂의 제거 또는 배출 방지를 의미한다. Premier Miton Global Infrastructure Income Fund의 매니저 Jim Wright는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여전히 표면적 디카본화 목표를 갖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가스·심지어 석탄을 사용할 것”이라며 상쇄 수단에 의존하는 실태를 설명했다.
EU의 12월 9일 합의에는 이 같은 탄소 제거 크레딧의 활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AI 수요가 깨끗한 공급을 앞지르는 상황에서 에너지 추가(addition) 시대를 만들어냈고, 일부 석유업계 최고경영자들이 이를 환영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안보와 가격 변동성 우려
Jackson은 데이터센터·AI 경쟁이 에너지 인프라에 큰 부담을 준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수년간 드러난 바와 같이 유럽의 에너지 인프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기존 전력망에 ‘사실상 기초 수준(base-level) 수요’를 추가해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을 키우고, 경우에 따라 전력 배급(에너지 래션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세계 연구 책임자 Société Générale의 Kokou Agbo Bloua는 CNBC ‘Squawk Box Europe’에 “이 문제는 방 안에 있는 거대한 코끼리(elephant)와 같다. 우리는 사실상 지구 평균 섭씨 2.5~3도 상승의 경로에 있다”며, 현재의 그린 기술이 탄소 배출원을 대체하지 못하고 데이터센터용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용어 설명: 탄소 크레딧·RECs·탄소국경세
본 기사에서 사용된 주요 용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탄소 제거 크레딧은 이산화탄소 1미터릭톤의 제거·감축을 인증하는 거래 가능한 증서이다. 재생에너지 증명서(RECs)는 일정량의 전력이 재생가능에너지원에서 생산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류로서 기업이 친환경 전력 사용을 주장할 때 사용된다. 탄소국경조정세는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을 고려해 과세하는 제도로, EU가 도입을 추진한 대표적 환경 보호 장치이다.
시장·경제적 영향 분석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첫째, AI 수요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는 전력 도매가격에 대한 상방 압력을 유발하여 전력료 인상 가능성을 높인다. 둘째,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기술기업과 데이터센터 투자가 규제가 덜한 미국·중동·아시아로 유출될 수 있으며, 이는 유럽 내 기술 생태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셋째,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전력망 보강 필요성은 단기적으로 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수요를 증가시켜 탄소 배출 저감 속도를 둔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넷째, 탄소 크레딧·RECs에 대한 수요 증가는 관련 금융상품·시장(예: 탄소시장)의 성장과 가격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력 생산 능력과 그리드 보강에 투자하는 유틸리티·송배전 사업자, 전력 저장(ESS) 및 전력관리 솔루션 공급업체, 그리고 탄소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상대적 수혜주로 부상할 수 있다. 반면, 규제 완화가 단기적으로 석탄·가스 사용을 늘리면 친환경 전환에 베팅한 일부 자산은 리레이팅(re-rating)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정책 경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크므로 포트폴리오의 리스크 관리와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
향후 전망
전문가들은 유럽이 환경 목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기보다는,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시행 시점이나 범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Van Lanschot Kempen의 Walia는 “지속가능성 목표를 포기하려면 국가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다”며, 즉각적인 완전 포기가 아니라 단계적 조정 또는 유예가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유럽은 AI 경쟁력 확보와 기후 목표 달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에 있으며, 이 과정은 에너지 정책, 규제 조정, 시장 구조 변화 및 투자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관련 산업과 투자자는 정책 신호와 그에 따른 에너지·인프라 수급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