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발표한 이른바 ‘트럼프급(Trump-class)’ 전함 구상이 현실적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이 전함이 “가장 빠르고, 가장 크며, 지금까지 건조된 어떤 전함보다 100배 더 강력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가장 치명적인 수면 전투함”이라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함들이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적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12월 26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에서 해군장관 존 펠런(John Phelan)과 함께 새 골든 플릿(Golden Fleet) 이니셔티브를 공개하면서 이 계획을 발표했다. 해군 발표에 따르면 이 함급은 통상포와 미사일, 전자기 레일건(electronic rail guns)과 레이저 기반 무기, 나아가 핵탄두와 극초음속(hypersonic) 미사일까지 운반 가능하다고 소개됐다.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현실
그러나 전함은 수십 년 전부터 사실상 구시대적 전력으로 여겨졌다. 마지막 전함 건조는 80년이 넘었고, 미국 해군은 아이오와(Iowa)-급 전함을 거의 30년 전 퇴역시켰다. 전통적으로 대형 함포를 장착한 전함은 해군력의 상징이었으나, 항공모함과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한 현대 구축함에 그 역할이 대체되었다.
전문가 평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석 고문 마크 캔시언(Mark Cancian)은 12월 23일 논평에서 이 구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 선박은 결코 진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설계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며, 해군이 추구하는 분산화된 화력(distributed firepower) 전략과도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캔시언은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더라도 “향후 행정부가 첫 함이 해상에 나오기 전에 사업을 취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대(RSIS)의 선임 연구원 버나드 루(Bernard Loo)는 이 제안을 “명분·위신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규정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대형 전함 야마토(Yamato)와 무사시(Musashi)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들 전함이 역사상 최대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 발진 항공기의 공격으로 침몰했음을 상기시키며, 제안된 전함의 규모(배수량 35,000톤 이상, 길이 840피트(약 256미터) 이상, 즉 축구장 두 개가 넘는 길이)가 오히려 목표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드슨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브라이언 클라크(Bryan Clark)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함의 상징적 힘에 이끌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1944년 완공된 마지막 미 전함인 USS 미주리(Missouri)가 1945년 일본 항복을 받아낸 역사적 장면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을 상기시키며, 냉전 시절 소련에 대응해 1980년대 미 해군이 600척 함대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함 네 척을 재취역(recommission)한 사례를 언급했다. 클라크는 “대통령이 미 해군이 마지막으로 해상 우위를 유지하던 시기를 이상적 시대로 인식하는 시대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명칭보다 무장이 중요
전문가들은 이 함을 “전함”으로 부르는 것이 잘못된 명명일 수 있으며, 실제로 어떤 무장을 탑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미 해군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제시된 ‘트럼프급’은 통상포와 각종 미사일 외에 전자기 레일건·레이저무기 등을 탑재할 수 있고, 핵탄두 및 극초음속 미사일도 운용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이런 스펙을 갖춘 선박은 실질적으로는 대형 구축함이나 수상전투함의 성격을 띠게 된다.
CSIS의 캔시언은 이 같은 설계가 해군의 분산 작전 모델에 역행한다고 재차 지적했다. 분산 작전 모델은 목적이 여러 자산에 화력을 분산시켜 한 지점에 집중된 취약성을 줄이는 것인데, 대형·고가·취약한 몇 척의 함을 만드는 것은 이 전략의 반대라고 설명했다.
비용과 실현 가능성
전문가들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보다도 비용이 결정적 장애물이라고 본다. 루는 미국 무기체계 사업들이 일상적으로 예정보다 시간과 비용을 초과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최대 수상전투함인 줌왈트(Zumwalt)-급 구축함이 배수량 약 15,000톤으로 설계상의 비용 폭증 때문에 계획 수량이 32척에서 3척으로 축소된 사례를 상기시켰다. 또한 최근에는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급 프리깃이 설계와 인력 문제로 취소된 일도 있다고 언급했다.
클라크는 트럼프급 건조비가 현행 구축함 대비 2~3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아를리버크(Arleigh Burke)급 구축함이 대략 척당 27억 달러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 전함의 건조비는 80억 달러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추정액은 승조원 비용과 유지비용, 운영비 등을 제외한 금액이며, 승조원 및 유지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이미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해군 예산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
용어 설명: 분산화된 화력 모델과 전함의 역사적 역할
분산화된 화력(distributed firepower) 모델은 한두 척의 대형 플랫폼에 화력을 집중하는 대신, 많은 수의 비교적 소형·중형 플랫폼에 화력을 분산해 적의 표적 획득과 타격에서의 취약성(예: 단일공격으로 대규모 전력 손실)을 낮추려는 현대 해군 운영 개념이다. 이는 네트워크 중심전, 센서·무기 분산, 상호운용성 향상 등과 연계된다.
역사적으로 전함은 대구경 함포를 바탕으로 해상에서의 결전(decisive battle)을 염두에 둔 전력이었다. 그러나 항공전력의 등장과 미사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형 전함의 전통적 역할은 축소됐고, 항공모함과 미사일 전투함, 잠수함이 현대 해전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경제적·전략적 파급 분석
만약 트럼프급 전함 건조가 현실화될 경우 예상되는 경제적·전략적 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건조비용의 집중은 한정된 국방예산에서 대규모 자원을 소모해 다른 프로그램(예: 신형 구축함, 잠수함, 무인체계, 항공전력 투자)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단일 함정당 고비용·고유지비 구조는 해군의 전체 함대 운용 비용을 증가시켜 장기적 유지·훈련·승조원 확보에 부담을 준다. 셋째, 대형 플랫폼에 대한 적의 우선 표적화 가능성은 실전에서의 취약성을 증가시킬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또한 사업의 불확실성(설계·공급망·노동력 문제)과 과거 유사 사업의 실패 사례를 근거로, 실제 건조 수량이 극히 제한되거나 사업 자체가 향후 정부에서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는 결국 초기 투자 대비 실전 기여도가 낮은 자산만 양산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론
결국 명칭과 상징성이 실용적 군사전략과 예산적 현실을 능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안된 트럼프급 전함은 첨단 무기체계와 대형 물리적 규모를 결합한 구상이나, 분산화된 현대 해군 전략과 예산 현실, 기술·운영상의 리스크를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낮고 전략적 비용 대비 효용이 제한적일 수 있다. RSIS의 루는 이를 ‘전략적 교만(strategic hubris)’으로 규정했으며, CSIS의 캔시언은 사업이 최종적으로 취소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 같은 분석들이 제시하는 시사점은 단순히 한 해군 플랫폼의 건조 여부를 넘어, 향후 미 해군의 전력 구상과 예산 우선순위 설정, 그리고 미 국방정책이 현대전의 특성(네트워크화·분산화·비대칭성)에 얼마나 적응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