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이 미국과의 지정학적 긴장 속에 운영 차질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싱가포르에 법인·본사를 두려는 움직임을 확대하고 있다.
2025년 12월 19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흐름은 ‘싱가포르 워싱’이라는 분석도 나올 정도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말기 무렵부터 기세를 타기 시작했고 이후 가속화되어 중요한 광물, 기술, 생명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InCorp Group의 최고경영자 KG Tan은 중국 기업들의 싱가포르 이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최근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Tan은 싱가포르로의 이전·확장을 돕는 InCorp Group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9곳에서 기업 이전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으로부터의 문의가 전년 대비 약 15~20% 증가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기업 사례로는 중국계 Zhongji Innolight가 지원하는 광학제품 제조업체 Terahop(2018년 설립 시 싱가포르 진출)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DayOne(GDS Holdings에서 분사), 중국의 Butterfly Effect가 내놓은 인공지능 에이전트 Manus AI, 인공지능 기반 화학합성기업 ChemLex 등이 언급된다. 다만 Manus AI와 Terahop의 웹사이트에는 중국 배경에 대한 언급이 없고, ChemLex의 CEO Sean Lin은 자사 스타트업을 상하이에서 창업했지만 지금은 ‘싱가포르 기업’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DayOne의 CEO Jamie Khoo는 7월에 자사는 중국 모기업과 다른 규제 체제 하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분사가 항상 의도된 것이었다고 말했으며, Manus AI와 Terahop는 로이터의 댓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싱가포르가 제공하는 전략적 이점
전문가들은 싱가포르가 미국의 관세와 수출 통제 등으로부터 상대적 이점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싱가포르산 제품에 대해 관세 10%만 부과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28개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보유해 중국 외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한 거점으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Maybank China의 이코노미스트 Erica Tay는 ‘싱가포르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신뢰받고 있으며 국제적 성격과 중립성, 중국 기업 및 주재원들이 적응하기 쉬운 문화적 환경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싱가포르를 줄타기하는 위치로 만들었다. 미국의 대중 기업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일부 외국계 기업들이 범죄 활동에 연루된 사례가 드러나면서 싱가포르도 예외가 아니다. 데이터센터 업체 Megaspeed는 2023년 중국의 한 게임회사에서 분사했으나 AI용 Nvidia 칩을 전용 목적과 다르게 전용·유출한 혐의로 미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2023년에는 중국계 외국인들이 연루된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세탁 사건이 싱가포르에서 발생했으며, 캄보디아 국적의 중국계 소유 대기업이 대규모 사기 센터 운영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본사 이전만으로는 규제·정치적 위험 완전 회피 불가
법인 소재지를 옮기는 것이 관세·수출 통제 등의 리스크 관리에 일정한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이는 정치적·규제적 추적을 완전히 피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패스트패션 업체 Shein과 숏비디오 플랫폼 TikTok이 초기 싱가포르 이전의 대표적 사례였지만, 이들 역시 서방의 감시를 피하지는 못했다.
Shein은 난징에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겼음에도 미국과 영국에서 상장 추진 과정에 대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고, 중국 당국의 승인도 구해야 했다. 현재 Shein은 홍콩 상장 추진을 위해 중국의 승인을 구하고 있으며, 본사를 중국으로 재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다.
TikTok을 보유한 ByteDance의 싱가포르 CEO 추수지(Chew Shou Zi)는 2024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 정부와의 연계성에 대해 집중 질의받았다. 미국 국가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yteDance는 자사의 미국 운영부문을 미국 및 글로벌 투자자 연합에 매각하는 조건에 합의했다고 TikTok은 목요일 발표했다.
싱가포르에 등록된 중국계 투자자 Yuxiao Fund가 2024년 호주 희토류 채굴업체 Northern Minerals의 지분을 확대하려다 중국 연계성 때문에 실패한 사례는 싱가포르 기반이 항상 서방의 검증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싱가포르 국립대 정치학자 Chong Ja Ian은 ‘가족사무소나 무역회사처럼 저프로파일의 실체들이 주로 관심을 덜 받는다’며 대형 기업에 대한 보호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내부 대응과 규제의 파급
일부 기업은 이미 규제 및 자본 흐름의 감시 강화에 대비해 구조를 조정하고 있다. 중국 산동성에 본사를 둔 임상 서비스 제공업체 Shandong Boan Biotechnology의 최고운영책임자 Dou Changlin은 자사의 싱가포르 자회사를 미국 운영에 자금 지원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Dou는 이 구조가 싱가포르 측에서의 자금 조달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중국 정부가 자본 흐름 감시에 나서면서 중국으로부터의 자금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미국 당국이 결국에는 자사의 중국 모회사와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미국에서 매우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직 미국 정부의 레이더에 올라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Dou는 덧붙였다.
용어 설명
이 기사에서 사용된 주요 용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본사(도미실·domicile)’는 기업의 법적 주소지를 의미하며, 세금·규제·법적 책임 등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관세(tariff)’는 국가가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기업의 수출입 비용을 직접적으로 바꾼다. ‘수출 통제(export controls)’는 국가가 특정 기술·제품의 해외 이전을 제한하는 규제이고, ‘자유무역협정(FTA)’은 당사국 간 관세 인하·무역 규제 완화로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협정이다.
시장·정책적 파급효과 분석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중국 기업의 싱가포르 행보는 단기적으로는 기업 운영의 유연성을 제공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접점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관세가 낮고 FTA 네트워크가 방대해 중국 외 지역에서의 사업 확장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규제 당국의 감시는 기업의 실소유구조, 자금 출처, 기술 이전 경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 단순한 본사 이전만으로는 정치적·규제적 리스크를 회피하기 어렵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소형·저프로파일 기업이 증가할 경우 싱가포르 내 서비스 산업(법률·회계·금융·데이터센터) 수요는 증가해 관련 산업에 단기적 성장 촉매가 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대형 기술기업이나 전략물자 관련 기업들이 집중될 경우 미국·EU 등 주요 시장의 규제 강화로 인해 투자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글로벌 자본 비용 상승과 특정 기술 공급망 재편을 초래할 수 있다.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싱가포르가 국제금융·무역 거점으로서의 신뢰도를 유지하려면 기업 투명성 강화, 실소유자 공개, 자금세탁 방지(AML) 규제의 엄격한 시행 등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러한 규제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일부 기업 유치에 제약을 줄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고품질의 투자와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결론
종합하면, 중국 기업들의 싱가포르 본사 모색은 지정학적·무역 규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합리적 전략으로 해석되나 그 효과는 기업 규모와 성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저프로파일 중소기업과 가족사무소 중심의 이전은 비교적 실효성이 있을 수 있지만, 대형 전략산업이나 서방의 안보우려가 큰 기업의 경우에는 규제당국의 감시와 정치적 압박을 완전히 회피하기 어렵다. 향후 추이를 판단하려면 기업 실소유구조의 투명성 변화, 주요국의 수출통제 정책 강화 여부, 그리고 싱가포르 당국의 규제 균형 전략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