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바 제조사 아이로봇(iRobot) 파산, 한 기업을 넘어 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

로봇청소기 브랜드 룸바를 만든 아이로봇(iRobot)의 파산이 단순히 한 제품군 제조사의 몰락을 넘어 로봇청소기 산업과 M&A(인수합병) 환경에 광범위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

2025년 12월 20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저가의 중국산 모조 제품과 경쟁 속에서 품질 우위에도 불구하고 아이로봇은 최근 파산보호(챕터 11)를 신청했다. 미 소비자 루스 혼(76)은 할인에 혹해 룸바라고 생각하고 구입한 제품이 반복적으로 걸려서 제자리에서 빙빙 돌자 결국 싸구려 모조품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메이데이라의 75세 소비자 마시 루이스는 일부러 저가 모조품을 골랐고 초기에 만족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iRobot headquar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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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측 법원 제출 서류에 따르면 아이로봇은 자산과 부채가 각각 1억~5억 달러 사이이고, 최대 채권자에게 약 1억 달러를 빚진 상태다. 제조 계약을 맺고 있던 중국·베트남 기반의 선전(Shenzhen) Picea Robotics Co.가 가장 큰 채권자이며, 로이터는 회사의 전체 부채가 약 1억9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22년 8월 아마존이 아이로봇 인수를 위해 17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으나 규제 당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일이 이번 사태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콜린 앵글(Colin Angle) 아이로봇 공동창업자 겸 CEO는 “오늘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고 — 피할 수 있었다”라며 “이는 소비자, 로봇공학 산업, 미국의 혁신 경제에 대한 비극과도 같다”고 말했다.


규제의 개입과 M&A 환경 변화

아이로봇의 실패 원인으로 저가 중국 경쟁사의 압박 외에도 유럽 규제당국의 개입이 거론된다. 2024년 초 아마존의 인수 시도가 유럽 규제의 저지로 좌절된 뒤, 아이로봇은 현금 유동성 문제와 함께 추가적인 경영난에 직면했다. 벤틀리대학 금융학 교수 크리스티나 미닉(Kristina Minnick)은 규제 당국이 가상의 미래 피해를 우선시할 경우 현재의 재정 현실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을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또한 아이로봇의 독립적 경쟁자가 아닌 파산을 통한 중국 제조 파트너로의 매각이 역설적으로 핵심 지식재산(IP)과 시장점유율을 경쟁사에게 넘기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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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쉬퍼(Eric Schiffer) Reputation Management Consultants 회장은 “아마존이 떠나고 관세와 저가 경쟁자가 몰려오며 로봇청소기 시장의 왕이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기업금융 자문사 엠바(Embarc) 어드바이저스의 제이 정(Jay Jung) 매니징 파트너는 유럽 규제의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규제가 과도하게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견제를 지향할 때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해외로 이동하고 브랜드 외의 경제적 이익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앤드루 퍼거슨(Andrew Ferguson) 위원장은 올해 초 공개 인터뷰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판명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여타 행정부와는 다른 이중적 접근을 예고했다. 반면 유럽은 여전히 기술 M&A에 대해 높은 수준의 심사를 유지하고 있으며, EU 반독점 책임자들은 주요 기술기업이 혁신 경쟁자를 배제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밝히고 있다.


사업 구조와 규제 회피의 새로운 기법

전문가들은 규제를 우회하려는 시도로서 전통적 인수합병 대신에 자산 매입이나 핵심 인력의 고용 및 IP 라이선스 방식의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고 관찰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플렉션(Inflection AI), 아마존과 어뎁트(Adept) 사례처럼 실질 기술과 인력을 흡수하되 법적 기업체는 남겨두는 구조가 확산 중이다. FTC는 이러한 형태의 거래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 같은 거래 방식이 기존 주주와 비핵심 직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운영 리스크: 지불 연체, 매출 감소, 관세 충격

크레딧세이프(Creditsafe)의 브랜드 책임자 라지니 발라(Ragini Bhalla)는 아이로봇의 재무 악화 신호를 몇 달 전부터 관찰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회사가 2025년 5월부터 공급업체 지불을 3~4주씩 미루기 시작했고, 5개월간 신용등급이 하락해 2025년 6월에 ‘매우 높은 위험(Very High Risk)’ 등급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매출은 저렴한 중국산 경쟁제품의 공세 속에서 감소했고, 베트남에서 제조되는 제품이 미국의 추가 관세 대상이 되면서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더해져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높은 부채, 수요 침체,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이 결합되어 제조업체 주도의 인수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녀의 평가다.


용어 설명: 챕터11, 리버스 인수(hire) 등

챕터 11(Chapter 11)은 미국 연방법상 기업이 운영을 계속한 채로 채무를 재조정하는 파산보호 절차를 말한다. 리버스 인수(hire) 또는 ‘reverse acqui-hire’는 인수자가 목표 기업의 핵심 인력과 기술을 흡수하고 기업체의 법적 실체(shell)는 남겨두는 구조를 가리키며, 전통적 M&A에 비해 규제 심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관세(tariff)는 국가 간 무역 시 부과되는 세금으로, 제조 기지가 해외에 있는 하드웨어 기업에게는 원가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향후 영향과 전망

아이로봇 파산 사례는 단기적으로 소비자 가격과 시장 경쟁 구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제조 파트너가 핵심 생산설비와 IP를 확보하면, 단기적으로는 생산 효율성으로 인한 가격 인하 압력이 생길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외형은 유지되더라도 핵심 기술의 해외 이전, 연구개발(R&D) 축소, 미국 내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가 경쟁 제품의 품질 차이와 A/S(애프터서비스) 불확실성이 단기적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시장 구조 관점에서는 경쟁사의 추가 합종연횡이나 가격 경쟁 심화로 인한 마진 감소, 그리고 잠재적 독점·과점 심리로 인한 규제 강화 가능성이 상존한다.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유사한 하드웨어 의존 기업들의 신용도가 재평가될 수 있다. 특히 제조 외주 비중이 높은 하드웨어 업체들은 관세 변화와 공급망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재인식하면서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M&A 시장에서는 규제 리스크가 가격 할인 요인으로 더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


정책적 시사점

전문가들은 규제 당국이 미래 경쟁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 재정 상태가 위태로운 기업의 사실상 유일한 출구(exit)를 무조건 차단할 경우 예상치 못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규제의 철학적 기준과 실질적 경제적 결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향후 유사 사례에서 핵심 쟁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소비자 반응

오하이오의 마시 루이스는 “파산 소식에 놀랐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고, 중국 기업이 룸바를 인수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산 제품을 사고 싶지만 점점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아이로봇의 파산은 단순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 글로벌 규제 환경, 무역정책, 공급망 구조, M&A 관행이 얽힌 복합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사건은 향후 로봇공학·하드웨어 기업들의 전략, 투자자들의 리스크 평가, 그리고 규제기관의 판단 기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