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나포한 대형 유조선 스키퍼(Skipper)가 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조작해 실제 항로와 위치를 은폐했고,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제재 대상 원유를 운송한 정황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2025년 12월 11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가이아나(Guyana) 기국을 단 VLCC(매우 대형 원유운반선)인 스키퍼는 2022년부터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실(OFAC·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었고, 최근 미군에 의해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나포되기 전까지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위치 위장(AIS 스푸핑)을 통해 실제 움직임을 숨겼다.
매트 스미스(Matt Smith), 에너지 컨설팅업체 Kpler의 미국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 배가 11월 중순에 약 110만 배럴(1.1 million barrels)의 원유를 은밀히 선적했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선박이 쿠바로 향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선적 이후에는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정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Kpler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스키퍼는 총 80일이 넘는 기간에 걸쳐 AIS 스푸핑 정황을 보였으며, 이 기간 중 선박 간(STS, ship-to-ship)으로 화물을 이전하는 행위가 여러 차례 포착됐다. 데미트리스 암파치디스(Dimitris Ampatzidis), Kpler의 리스크·컴플라이언스 담당 매니저는 “스키퍼의 AIS 전송이 주장하는 바를 훨씬 넘어서는 기만적 운용의 명확한 양상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암파치디스의 발언
“이 배는 투명성 밖에서 운행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으로 보이며, 디지털 조작과 은밀한 물류를 통해 제재 대상 원유 흐름을 일반 해상교통으로 위장했다.”
2024년의 항로·위치 기록을 보면, 스키퍼는 이집트, 이란, 지중해, 가나,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AIS 위치 왜곡 사례가 관찰됐고, 2024년뿐만 아니라 2023년에는 베네수엘라의 호세(Port of Jose) 항 방문 기록, 2024년엔 시리아의 바니아스(Banias Port)와 이란의 카르그섬(Kharg Island) 기항 기록이 남아 있다. 2025년 항적 데이터에서는 베네수엘라의 호세 항과 이란 카르그섬에서 출항한 정황도 확인됐다.
소유·관리 관계에 대해, Kpler 데이터는 스키퍼의 명목상 소유주가 마셜제도(Marshall Islands) 등록기업인 트리톤 내비게이션(Triton Navigation Corp.)이며, 선박의 실질 화물 소유자(beneficial cargo owner)·선박 관리자·운영자는 나이지리아 기반의 토마로즈 글로벌 벤처스(Thomarose Global Ventures Ltd.)로 표기하고 있다. 트리톤 내비게이션은 2022년 11월 이후 OFAC 제재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자동식별장치(AIS)란?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는 선박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로, 미 해안경비대(US Coast Guard)에 따르면 선박의 이름, 항행방향, 속도, 분류, 전화식별부호(call sign) 및 등록번호 등 항해 관련 핵심 정보를 전송한다. 이 시스템은 해상 충돌 방지와 항행 관리를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만, AIS 데이터가 조작(스푸핑)되면 선박의 실제 위치·항로·운용 상황이 은폐될 수 있다.
AIS 스푸핑의 방식과 위험성
AIS 스푸핑은 GPS 좌표와 관련 정보 패킷을 허위로 전송해 관제 시스템 또는 제3자 추적자가 선박의 실제 위치를 오인하도록 만드는 기술적 수법이다. 해상 제재 회피, 불법 환적, 불투명한 석유거래를 위해 악용될 소지가 크며, 해상 안전·안보·제재 집행의 큰 허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사례에서처럼 장기간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단순한 오류를 넘어 구조적·조직적 불법 행위의 증거로 해석된다.
스푸핑 기간 동안의 활동을 살펴보면, Kpler는 스키퍼가 AIS상에선 다른 위치를 표기한 채, 실제로는 다른 선박들과의 선박대선박(STS) 환적을 통해 원유를 이전하고 있던 정황을 포착했다. 암파치디스는 “선박의 공개 항로와 전혀 상관없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관찰됐다”고 밝혔다.
시장 영향·정치적 함의
석유시장 관측과 관련해, 앤드루 리포우(Andrew Lipow), 리포우 오일 어소시에이츠(Lipow Oil Associates) 사장은 이번 나포의 목적을 “섀도우 플릿(shadow fleet)에 속한 원유 구매자와 탱커 운영자들이 베네수엘라 원유 적재를 주저하게 만들어 마두로 정부의 수입을 줄이고 최종적으로 정치적 변화를 촉발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또한 현재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미만으로 머무르는 상황에서 미국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산 공급 상실로 인한 시장 충격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반면 중국은 저렴한 공급원의 접근을 잃을 경우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시장 분석(전문가 관측 방식으로 정리)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석유시장과 지정학적 동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첫째, 제재 대상 원유의 은밀한 유통이 노출되면 국제사회에서의 제재 집행 강화·추적 기술 투자 확대가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베네수엘라·이란 등 제재 대상국의 원유가 유입되던 수요처(특히 아시아 지역)의 대체 공급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해상 물류 비용과 보험료가 상승할 수 있다. 셋째, 섀도우 플릿을 통한 저가 원유 유통이 제한될 경우, 해당 저가분이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특정 지역의 원유 가격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으나, 현재 글로벌 재고와 생산량을 고려하면 단기적·국지적 영향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정책적·집행적 쟁점
이번 사례는 해상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는 디지털 조작과 은밀한 환적 경로를 포착·차단하기 위한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위성감시, AIS 데이터 교차검증, 선적·소유구조의 투명화, 보험·금융기관의 감시 강화 등이 결합되어야 보다 효율적인 제재 집행과 불법 유류 흐름 차단이 가능하다.
관련된 인용·자료 요약
암파치디스( Kpler ): “스키퍼는 AIS 전송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기만적 운용의 명확한 패턴을 보였다“.
스미스( Kpler ): “11월 중순 약 110만 배럴이 은밀히 선적되었다“.
리포우( Lipow Oil Associates ): “나포의 목적은 베네수엘라산 원유 적재를 주저하게 만들어 마두로 정부의 수입을 줄이려는 것“.
결론
스키퍼 사건은 해상에서의 디지털 신호 조작이 어떻게 제재 회피와 불투명한 원유 거래에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와 민간 데이터업체, 보험·금융권은 해상 물류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기술적·제도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번 나포가 단기적 국제 유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으나, 제재 집행의 강화와 해상 보험비·물류비의 변동성 확대, 특정 공급망의 재편 등 중장기적 파급효과는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