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명품업계가 2년간의 매출 정체와 약 20%에 달하는 이익 감소를 겪은 뒤, 2026년에 유기적 매출(organic sales) 기준 5% 성장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가 섹터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2025년은 사실상 보합에 그치겠지만 2026년에 본격 회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당순이익(EPS)은 올해 12% 감소 후 2026년에 12% 증가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2025년 11월 2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UBS는 유럽 명품 기업들의 가중 평균 영업이익률(EBIT 마진)이 2026년에 21.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3~2025년 동안 누적 510bp(베이시스 포인트)의 마진 압축 이후, 2026년에 50bp 회복하는 시나리오다. 베이시스 포인트(bp)는 0.01%포인트를 의미한다.
UBS는 예상되는 턴어라운드의 핵심 동인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중국 소비자 수요의 안정화다. 보고서는 중국 소비자가 2025년 기준 섹터 매출의 약 26%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연중 내내 이어진 뚜렷한 부진 이후 최근 초기 회복 신호가 관측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업계 전반의 크리에이티브 리뉴얼(창의성 재정비)이다. 이는 제품 포트폴리오와 브랜드 방향성의 재정렬을 동반해 중기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업계는 엔트리(입문) 가격대를 재도입하고, 주요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디자이너 수장)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UBS에 따르면 2025년에는 15개 주요 브랜드가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을 교체해 2024년의 8개 대비 크게 늘었다. 이는 지난 3년간 유행한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미니멀리즘 정서에서 벗어나, 보다 대담하고 맥시멀리즘을 지향하는 흐름을 반영한다. 미니멀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던 Loro Piana와 Brunello Cucinelli가 전형적 사례로 언급된다.
핵심 포인트: 2025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 15건(2024년 8건) • 엔트리 가격대 복원 • 디자인 기조, 미니멀에서 맥시멀로 전환
수요와 가격의 조합도 바뀐다. UBS는 두 해 연속 감소했던 판매 물량(volume)이 2026년에 3% 증가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가격 인상 효과가 약 2% 추가될 전망이다. 이는 2022년 평균 8%, 2023년 평균 6%에 달했던 가격 인상률과 비교하면 상당한 디스인플레이션(상승폭 둔화)으로 해석된다. 즉, 2026년의 성장은 가격보다 물량 복원에서 상대적으로 더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역별 수요 지형도 세밀화되고 있다. 미국 소비자는 섹터 매출의 약 25%를 차지하며, 2025년 4% 성장에서 2026년에는 7% 성장이 예상된다. UBS는 미국이 섹터 전체 성장의 34%를 기여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 소비자는 매출 비중 17%, 성장률은 6%로, 전체 성장의 16%를 담당할 전망이다. 일본 소비자는 매출 비중이 약 10%이며, 4% 성장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일 관계 긴장에 따른 관광 소비 위축이 일본 내 소비 성장의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행의 국면 전환도 확인된다. UBS는 최근 패턴·프린트 중심의 브랜드들—예컨대 Missoni와 Pucci—에서 판매 가속이 관찰된다고 밝혔다. 명품 패션의 사이클은 통상 3~5년 지속되는 경향이 있어, 디자인 미학의 변화가 중기 수요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조정과 재고 전략, 마케팅 메시지 재정렬 등 운영 전반에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제품 카테고리 믹스에서는 주얼리의 점유율 확대가 이어질 전망이다. 집계 기준으로 주얼리 매출 비중은 2021년 15%에서 2024년 18%로 상승했다. 반면 가죽제품 비중은 46%에서 44%로 하락했다. UBS는 주얼리의 강세를 가격 규율에서 찾았다. 예컨대 까르띠에 러브 브레이슬릿의 가격은 2010년 이후 165% 상승한 반면, 샤넬 점보 플랩 백은 같은 기간 375% 급등했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인상 곡선이 소비자 신뢰와 재구매를 견인하며 점유율을 높였다는 해석이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에르메스를 제외한 유럽 명품 섹터는 MSCI 유럽 대비 83% 프리미엄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5년 평균 75%를 상회한다. 두 해 연속 이어진 실적 하향 조정 국면을 지나 이익 모멘텀 회복을 선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프리미엄은 시장 평균 대비 상대적 고평가 수준을 의미하지만, 성장·수익성·브랜드 파워 등 구조적 요인이 가격에 내재된 경우가 많다.
종목 선택과 관련해 UBS는 스위스 리치몬트(Richemont)와 프랑스 LVMH를 톱 픽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프라다(Prada)는 중립(Neutral)으로 하향 조정했고, 프랑스-이탈리아 합작의 아이웨어 그룹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는 매수(Buy)로 상향했다. 이는 지역별 수요 차별화, 제품 믹스 변화, 가격 전략 및 밸류에이션 수준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다만 UBS는 회복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명확히 경고했다. 런웨이에서 공개된 신제품이 실제 매장에 풀리기까지의 통상적 리드타임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이익 가속은 2026년 하반기 이후에야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는 디자인 전환, 공급망·리테일 배치, 소비자 반응 반영까지 선형적으로 시간이 소요된다는 업계의 구조적 특성을 반영한다.
용어 설명 및 맥락 정리
유기적 매출(Organic Sales)은 환율·인수합병(M&A)·사업구조 변화 등 외생 변수를 제외하고 기존 사업의 순수한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다. EPS(주당순이익)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식 1주당으로 환산해 수익성을 가늠한다. EBIT 마진은 이자와 세전 영업이익을 매출로 나눈 비율로, 영업 효율과 가격·비용 통제력을 나타낸다. 베이시스 포인트(bp)는 금리·마진 변동을 정밀 표기할 때 쓰는 단위로, 1bp=0.01%포인트※다. MSCI 유럽은 유럽 상장 대형·중형주를 포괄한 벤치마크 지수다.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는 과시적 로고를 배제한 미니멀리즘 미학을 지칭하며, 최근 3년간 Loro Piana, Brunello Cucinelli 등에서 두드러졌다. 반면 맥시멀리즘은 대담한 색·패턴·장식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향으로, Missoni·Pucci와 같은 패턴 기반 하우스가 수혜를 입고 있다. 엔트리 가격대는 브랜드 입문자가 접근 가능한 가격 구간으로, 수요 저변 확대와 고객 파이프라인 형성에 기여한다.
해석과 시사점
UBS의 시나리오는 가격 주도에서 물량 복원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2026년을 전제한다. 이는 2022~2023년 고강도 가격 인상 이후, 소비자 수용 한계와 매크로 환경을 반영해 가격 인상률을 낮추되 제품 신선도·라인 확장·엔트리 재도입으로 수요를 재점화하려는 업계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지역별로는 미국의 견조함과 중국의 안정화, 유럽의 점진적 회복이 조합되며, 일본은 지정학과 관광 변수에 더 민감하게 노출돼 있다.
카테고리 측면에서 주얼리의 점유율 확대는 가격 규율·재판매 가치·감정적 내구성 등 요인을 반영한다. 반대로 가죽제품은 가격 레벨의 역사적 상승 이후 수요 탄력성이 낮아질 수 있어, 제품 혁신과 가격 정교화가 병행될 가능성이 높다. 밸류에이션은 프리미엄이 역사 평균을 상회하는 구간이나, 실적 하향 사이클 종료와 2026년 하반기 이익 가속 기대가 감안된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UBS의 경고대로 리드타임 변수로 인해 실적 반영까지의 시간차가 불가피하며, 이는 종목별 성과 분화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종합하면, 유럽 명품 섹터는 디자인 사이클 전환과 중국·미국의 수요 축, 가격보다 물량 중심의 성장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2026년 회복의 토대를 쌓아가고 있다. UBS가 Richemont·LVMH를 톱픽으로 제시하고, Prada를 중립으로, EssilorLuxottica를 매수로 제시한 배경에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질, 지역 노출, 카테고리 믹스, 실행력에 대한 차별적 평가가 반영돼 있다. 향후 12~18개월은 크리에이티브 리뉴얼의 매장 반영 속도와 지역별 수요의 내구성, 가격·재고 운용의 정교함이 실적 가시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