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슬레이펀 “EU 성장 재점화 위해 지출 방식 전면 재설계 필요…국가보조금 억제·공공재 투자 전환”

DUBLIN/로이터유럽연합(EU)은 침체된 성장세를 되살리기 위해 지출 구조를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네덜란드 중앙은행 수장 올라프 슬레이펀(Olaf Sleijpen)이 밝혔다. 그는 국가보조금(state aid)을 억제하고, 향후 성장의 핵심이 될 공공재(public goods)에 재원을 과감히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11월 25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슬레이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러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닝 카운슬Governing Council의 신임 위원 중 한 명으로서, EU의 예산 우선순위가 “과거의 경제”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년째 유럽의 성장률이 빈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인공지능(AI) 투자 등 차세대 성장 테마에서 글로벌 경쟁자들에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책 당국자들은 블록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을 논의하고 있으며, 지출의 방향 전환이 핵심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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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예산은 여전히 과거의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미래 경제에 필요한 공공재 제공에는 충분히 주력하지 못하고 있다.” — 올라프 슬레이펀, 더블린 발언

그는 이어 “농업 보조금과 결속기금(cohesion funds)이 EU 예산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연구·기후·국방·국경 간 인프라에 대한 지출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슬레이펀은 지출을 물리적·디지털 국경 간 인프라 구축으로 돌리면, 블록 내부의 성장을 저해하는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물류·데이터 흐름·전력망 등 핵심 인프라의 상호연결을 강화해 규모의 경제를 확대하는 접근으로, 회원국 간 단절을 줄여 생산성과 투자 유인을 높이는 효과를 겨냥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전환을 위해 공동채(joint debt) 발행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 전제 조건으로, 각국의 국내 지출을 축소하고 블록 전체의 부채 수준이 상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즉, 재정 여력을 새로 늘리기보다 기존 지출의 재배치와 엄격한 총량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EU는 취약 부문을 대상으로 한 국가보조금 제공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보조금 규정이 완화되면서 경쟁의 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경고하며, 규정의 엄격한 집행과 정당성이 명확히 입증된 경우에 한정한 표적 지원을 요구했다

규정은 보다 엄격하게 집행돼야 하며, 표적 지원은 정당화되는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 — 슬레이펀

그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추가 조치로, 단일시장(single market) 심화유럽 내 가계 저축의 국내 투자 확대를 제시했다. 회원국 간 규제·표준·유통의 상호인정을 더 촉진하고, 역내 자본시장을 통해 유럽 기업과 인프라에 더 많은 가계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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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용구 정리

1) “EU 예산은 과거의 경제에 맞춰져 있고, 미래 경제에 필요한 공공재 제공에 소홀하다.”

2) “농업 보조금·결속기금이 예산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며, 연구·기후·국방·국경 간 인프라 지출은 낮다.”

3) “공동채 발행은 가능하지만, 각국 지출 축소와 블록 전체 부채 억제가 전제돼야 한다.”

4) “완화된 보조금 규정이 경쟁의 장을 왜곡하고 있으므로, 엄격한 집행과 정당화된 표적 지원만 허용해야 한다.”


용어 설명 및 맥락

공공재(public goods)비배제성비경합성을 갖는 재화·서비스를 뜻한다. 도로·전력망·디지털 백본과 같은 국경 간 인프라, 기초 연구, 안보·방위, 기후 대응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슬레이펀의 요지는 민간 부문이 단독으로 제공하기 어려운 영역에 예산을 재배분해 장기 성장잠재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국가보조금(state aid)은 정부가 특정 기업·산업에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을 말한다. 위기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유연화될 수 있으나, 과도한 지원은 경쟁왜곡회원국 간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슬레이펀은 규정의 선별적·엄격한 적용을 촉구했다

결속기금(cohesion funds)역내 균형 발전을 지원하는 EU 재정수단으로,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지역의 인프라·고용·혁신을 돕는다. 그는 이런 전통적 항목의 비중이 과다하다고 보며, 연구·기후·국방·국경 간 인프라로의 우선순위 전환을 주문했다

공동채(joint debt)는 EU 차원의 공동 차입을 의미한다. 그는 공동채가 총부채를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그리고 국가별 지출 절감과 함께 이뤄질 때에만 타당하다고 못 박았다. 이는 재정 규율역내 연대의 균형을 동시에 의식한 조건부 제안이다

단일시장 심화규제 조화·상호인정 확대·서비스 시장 개방·자본시장 통합 등으로 거래비용을 낮추는 작업을 뜻한다. 아울러 유럽 가계의 저축이 역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유럽 내 생산적 자산에 더 많이 투자되도록 제도적 유인을 강화하는 것이 과제로 제시됐다


분석/시사점

슬레이펀의 제언은 예산의 구조적 재배치, 보조금 규율 복원, 인프라 통합, 자본의 역내 순환이라는 네 축으로 요약된다. 핵심은 총지출의 확대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전환에 있으며, 공공재 중심의 투자를 통해 생산성 제고장기 성장률 상향을 도모하자는 구조다. 이는 규정 완화에 기대 국가별 보조금 경쟁으로 흐를 경우 내부 시장의 파편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정책적으로는 정치경제적 난제가 존재한다. 전통적 지출 항목의 비중을 낮추고 미래지향적 공공재로 돌리는 과정에서 회원국 간 이해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채 활용은 재정규율을 중시하는 입장과 연대 강화를 중시하는 입장이 교차하는 영역으로, 총부채 억제국가별 지출 절감이라는 조건을 어떻게 제도화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경쟁력 차원에서는 국경 간 인프라의 물리·디지털 통합이 거래비용과 조각화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특히 데이터·AI·클라우드 생태계는 대역폭·보안·상호운용성이 핵심이므로, 역내 공공재 성격의 백본 강화는 민간투자 촉발의 마중물로 기능할 수 있다. 동시에 엄격한 보조금 규율경쟁중립성을 확보해, 역내 단일시장에서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도울 수 있다

요컨대, 슬레이펀의 메시지는 “덩치를 키우는 재정”이 아니라 “질서를 바로잡는 재정”에 가깝다. 예산의 목적과 수단을 미래 성장의 토대인 공공재로 재정렬하고, 보조금 규율과 단일시장 심화를 통해 유럽의 구조적 성장능력을 끌어올리자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는 AI 투자 열세지속된 저성장이라는 진단에서 출발해, 지출 재설계시장 통합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일관된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