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독일의 혁신 역량이 정체 국면에 머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독일은 혁신 순위 12위에 또다시 머물렀고, 같은 기간 미국·영국·프랑스 등 경쟁국은 유의미한 상승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25일 공개됐다. 이번 평가는 독일 산업협회인 BDI와 컨설팅사 롤란트 베르거(Roland Berger)가 공동 제시한 ‘혁신지표 2025(Innovation Indicator 2025)’에 기반한다.
2025년 11월 2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는 독일이 디지털화와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미래 기술 영역에서 특히 약세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평가에 따르면 독일의 혁신 용량은 상위권 소형·전문화 국가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처져 있으며, 주요 경쟁국이 관련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사이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핵심 원인으로는 자국 내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출 증가세 둔화가 지목됐다. 특히 디지털화 부문에서 독일의 지출과 실행력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로 인해 신기술 상용화 속도와 혁신 생태계의 확장 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고 했다.
순위 흐름과 글로벌 비교에서 이번 ‘혁신지표 2025’는 2005년부터 주요 경제권의 혁신 역량을 비교·분석해온 장기 시계열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당 순위는 소형이면서 고도로 전문화된 국가들이 상단을 주도하는 특징을 다시 확인했다. 스위스가 1위, 싱가포르가 2위, 덴마크가 3위를 차지했다. 반면 독일은 전체 순위 12위에 머무르며 변동이 없었다.
다만 독일이 모든 영역에서 약세를 보인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독일이 핵심 기술 전반에서 4위를 차지했으며, 7개 기술 분야 중 4개 분야에서 상위 5위권에 들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순환경제, 신소재, 신생산기술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확인했다. 이는 고부가가치 제조 강국으로서 독일이 여전히 갖는 기반 기술력과 산업 인프라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래 지향 핵심 분야에서는 약점이 드러났다. 독일은 디지털 하드웨어 분야에서 7위, 디지털 네트워킹에서 10위, 바이오테크놀로지에서는 15위에 그쳤다. 이 순위는 데이터 인프라·컴퓨팅 역량·연결성 플랫폼·생명과학 응용 등 차세대 성장축에서 독일이 선도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크게 생각할 용기를 가져야만 새로운 혁신의 역동성을 점화할 수 있다.”
BDI의 페터 라이빙거(Peter Leibinger) 회장은 “2040년까지 핵융합로의 첫 가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실현하거나, 산업용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선두 주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용어 정리와 맥락
디지털화는 기업 활동 전반을 데이터·소프트웨어·클라우드·자동화로 전환해 생산성, 품질, 민첩성을 높이는 과정을 뜻한다. 디지털 하드웨어는 반도체, 센서, 통신장비 등 물리적 기반 기술을, 디지털 네트워킹은 이러한 하드웨어를 엮는 연결성(네트워크, 프로토콜, 플랫폼, 사이버보안 포함)을 의미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유전·세포·단백질 공학 등 생명과학 기반 기술의 산업적 응용을 포괄한다. 또한 순환경제는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고 재사용·재활용을 극대화하는 경제 시스템이며, 신소재와 신생산기술은 경량화·내구성·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소재 혁신과 첨단 제조 공정을 지칭한다.
‘혁신지표 2025’는 BDI와 롤란트 베르거가 제시한 종합 지표로, 2005년부터 주요 경제권의 혁신 역량을 지속적으로 비교해온 장기 연구다. 이번 결과에서 드러난 독일의 강점(핵심 기술 기반)과 약점(미래 기술 리더십)은 서로 교차한다. 전통 제조 강점을 지렛대로 삼아 디지털·바이오 분야에서 도약해야 한다는 과제의 윤곽이 선명하다.
시사점
보고서는 자국 내 기업 R&D 지출의 역동성 부족을 핵심 과제로 지적한다. 이는 기초·응용·상용화 단계를 촘촘히 잇는 혁신 사슬의 속도와 스케일업의 민첩성에 직결되는 항목이다. 특히 디지털화 투자의 상대적 정체는 데이터 인프라 구축, AI 학습·추론 역량, 클라우드·엣지 아키텍처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 15위라는 수치는 임상·규제·제조 전주기에 걸친 실행력 강화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독일이 핵심 기술 전반 4위와 일부 분야 상위 5위권을 유지한 점은 산업 기반의 저력을 시사한다. 이를 토대로 디지털 하드웨어와 네트워킹에서의 7위·10위를 좁히고, 바이오테크놀로지 15위의 격차를 줄이는 전략적 투자와 실행 로드맵이 요구된다. 표준화 선점, 개방형 혁신 생태계, 인재·자본의 집중 배치 등은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실행 수단이며, 보고서의 핵심 신호는 이러한 방향 전환의 속도와 규모에 있다.
결론
이번 ‘혁신지표 2025’는 독일의 12위 정체라는 결과를 통해, 전통 제조 강점과 미래 기술 리더십 간 불균형을 부각시켰다. 스위스·싱가포르·덴마크가 상단을 이끄는 가운데, 독일은 디지털화·바이오 분야의 추격이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BDI 페터 라이빙거 회장이 강조했듯, “크게 생각하는” 목표 설정—예컨대 2040년 핵융합로 첫 가동 가능한 프로토타입 달성이나 산업용 AI 선도—은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상징적 이정표로 거론된다. 본 보고서는 장기간 축적된 비교 평가라는 점에서, 독일이 다음 단계의 혁신 투자와 정책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 가늠하게 하는 기초자료로 기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