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AN, China (Reuters) — 중국 남부 공업지대의 잡초로 뒤덮인 공터 옆에 자리한 한 공장이 자동차용 반도체의 글로벌 병목으로 부상하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급망 교란에 다시는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자동차 산업을 또다시 뒤흔들고 있다.
2025년 11월 2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넥스페리아(Nexperia) 칩 수출 차질 사태는 저가·범용 부품조차 지정학적 레버리지로 변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서구와 중국 간 기술·공급망 경쟁이 첨단 반도체와 희토류를 넘어 일상적인 핵심 부품 영역까지 확장됐음을 보여줬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2020년 코로나19로 반도체 생산이 꼬이고 1년 뒤 일본 공장 화재가 공급난을 악화시킨 뒤 공급망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으나,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의 중국 공장을 둘러싼 이번 위기는 업계의 맹점을 노출했다. 업계는 저기술(로우엔드) 칩이 중국이 서방을 상대로 활용할 지렛대가 되리라고는 상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지정학적 교란에 대비하지 않았고, 지금도 준비돼 있지 않다.” — 세라프 컨설팅(Seraph Consulting)의 앰브로스 콘로이(Ambrose Conroy) 대표
네덜란드 정부는 9월 말, 중국 윈테크(Wingtech)가 보유한 기술에 대한 유출 우려를 이유로 네덜란드 소재 본사(니메헌)의 넥스페리아 경영권을 일시적으로 통제했다. 그러자 베이징은 주강 삼각주(펄리버델타) 지역 공장에서 패키징을 마친 넥스페리아 완제품 칩의 수출을 중단하며 맞대응했다. 이달 들어 네덜란드 정부는 통제 조치를 철회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동관(둥관) 공장에서 출하되는 넥스페리아의 반도체는 자동차 브레이크부터 전동 창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인다. 개당 1페니의 몇 분의 1에 불과한 초저가 부품이지만, 공급 차질은 닛산과 혼다의 생산 감축을 불러왔고, 독일 부품사 보쉬(Bosch)는 공장 근무시간을 단축했다.
로이터는 자동차 업계 임원·부품사·반도체 유통업체 등 12명을 인터뷰해, 적기생산(Just-in-Time, JIT) 관행과 제한된 공급망 다변화가 지정학적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키웠다고 전했다.
이번 취재는 중국의 영향력이 첨단 기술·희토류를 넘어, 평범하지만 필수적인 부품으로 확대돼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보쉬의 노출 규모와 위안화 결제 요구에 따른 기업들의 애로 등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세부도 확인됐다.
네덜란드 정부가 니메헌 본사를 통제했지만, 중국 내 사업 운영은 여전히 중국 모회사의 지배하에 있었다.
“네덜란드는 넥스페리아를 장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사무실 건물 하나만 넘겨받은 셈이다.” — 리싱(Li Xing), 광둥성 국제전략연구원 국제관계학 교수
“이는 중·저가 부문에서도 서구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중국이 쥐고자 하면 여전히 쥘 수 있다. 빠져나갈 길이 없다.” — 리싱 교수
윈테크 대변인은 성명에서, 인수 이후 넥스페리아가 업계 선도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밝히며 “국제 기업을 분열시키면 공급망을 해치고 핵심 산업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넥스페리아 측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복잡성 탓에 지정학의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사례 연구: 정치 리스크
넥스페리아 칩은 너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한 유럽 완성차 업체는 대체 조달 방안을 평소 준비하지 않았다고 업체 관계자는 말했다. 이 칩은 “가격이 낮은 매우 평범한 전자부품”이라는 설명이다.
안쿠라 컨설팅(Ankura Consulting) 베이징 사무소의 알프레도 몬투파르-헬루(Alfredo Montufar-Helu) 전무는, 이번 사태가 제조사의 전략적 취약성이 첨단 부품 너머까지 뻗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쉬는 연간 2억 유로(미화 2억3,100만 달러) 규모의 넥스페리아 제품을 발주했음에도 초기에 충분한 대체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사정을 아는 인사가 전했다. 보쉬는 논평을 거부했다.
넥스페리아는 10월 말 일부 중국 내 유통사를 통한 판매를 재개했으나, 기존의 외화 결제 대신 위안화 결제를 요구했다. 이는 중국 사업이 네덜란드 본사 영향권에서 더 독립적으로 움직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위안 결제 처리 역량이 부족해 동관 공장에는 출하 대기 칩이 쌓였다고 사정을 아는 두 사람은 전했다. 이후 상황은 점차 완화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윈테크 대변인은 칩 적체나 위안 결제 시스템 이슈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서울 회동 이후인 이달, 일부 넥스페리아 수출을 재개하도록 허용했다. 이는 보쉬와 아우모비오(Aumovio), ZF 그룹, 헬라(Hella) 등 일부 생산 중단까지 며칠 남지 않았던 기업들에 ‘마지막 순간의 구원’이 됐다고 정통한 인사는 말했다. 보쉬·아우모비오·ZF는 논평을 거부했고, 헬라 대변인은 공급망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가 최근 주중에 동관 공장을 찾았을 때, 일부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었고 도크 구역에는 트럭이 들고났다. 공장 밖에는 스쿠터 수십 대가 세워져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멜렉스(Melecs)와 애플 협력사인 자빌(JABIL)은 넥스페리아 칩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기업은 중국 법인을 활용해 위안화 결제를 처리했다는 것이 정통한 이들의 설명이다. 멜렉스는 논평을 거부했으며, 자빌은 복수의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의 미흡한 학습 효과
펠럼 스미더스 어소시에이츠의 런던 소재 자동차 애널리스트 줄리 부트(Julie Boote)는, 이번 칩 부족 사태가 자동차 업체들이 직전의 충격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칩의 경우 수개월치 재고를 확보해 두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지난 위기 이후 그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 줄리 부트 애널리스트
닛산의 기욤 카르티에(Guillaume Cartier) 최고성과책임자(CPO)는, 취약한 공급망을 대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과거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말할 것을 안다. 맞다. 하지만 3년 만에 전체 공급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 기욤 카르티에 닛산 CPO
넥스페리아 공급난은 닛산의 주력 SUV인 로그(Rogue) 생산 감축을 초래했으며, 올해에도 지속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컨설턴트 콘로이는 고객들에게 핵심 부품의 추가 재고를 수요 지역 내에 보유할 것을 조언하지만, 이는 비용 최소화를 위해 JIT에 의존해온 업계에는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모든 완성차 업체가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도요타는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도입한 사업 연속성 계획(BCP)에 따라, 수개월치 칩 비축을 협력사에 지시해 왔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도요타 대변인은 차량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고 있으며,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원력의 대가
공급망 복원력의 또 다른 걸림돌은 칩이 차량 내부에 통합되는 방식이다. 넥스페리아 반도체는 전력 모듈(전력 관리를 담당) 같은 부품에 널리 쓰이며, 종종 부품 기판에 직접 납땜된다. 대체 칩으로 ‘바로 갈아끼우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화이트 오크 캐피털 파트너스의 투자이사 노리 치우(Nori Chiou)는 설명했다.
새로운 차량 부품은 테스트·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대체 부품을 확보하는 데 수개월이 추가될 수 있다. 넥스페리아 대변인도, 겉보기에는 동일해 보이는 부품이라도 차량 내 성능이 다를 수 있어 ‘하룻밤 새’ 대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일의 헬라는 넥스페리아 칩의 대체 공급업체를 검토 중이지만, 테스트·승인에 최대 1년이 걸려 초기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자동차 공급망 업계의 한 인사는 전했다. 헬라 대변인은 가능한 곳에서는 이미 자격을 갖춘 세컨드 소스로 전환해 안정적 공급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쿠라 컨설팅의 몬투파르-헬루는 칩 병목에 대비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값비싸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시 복원력 구축과 다변화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곧 그것이 얼마나 비싼지 깨닫게 될 것이다.” — 알프레도 몬투파르-헬루
환율: 미화 1달러 = 0.8672유로
용어 설명과 맥락
적기생산(JIT)은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낮추는 생산·물류 방식으로, 평시에는 효율적이나 공급 충격 시 완충재(재고)가 부족해 생산 차질이 커질 수 있다. 전력 모듈은 차량 내에서 전력을 분배·관리하는 부품으로, 차량 안전·신뢰성과 직결되기에 대체품 승인 절차가 엄격하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을 보호 케이스에 담고 입출력 단자를 연결하는 공정으로, 최종 품질과 신뢰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패키징 거점의 통제만으로도 완제품 출하를 막을 수 있다.
분석과 시사점
이번 넥스페리아 사태는 저가·범용 칩의 중요성이 전략적 자산 수준으로 격상됐음을 확인시켰다. 과거의 초점이 고성능 연산칩과 메모리에 맞춰졌다면, 이제는 몇 센트 이하의 소자도 완성차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 평가에서 부품 단가·기술 수준이 아니라, 대체 가능성·자격승인 리드타임·결제·통관 등 비기술적 요인이 결정적 변수가 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본사-현지법인 분리와 결제통화 전환이 지정학적 분절화 속에서 기업들이 동원할 수 있는 운영상 대응 카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안화 결제 전환은 내부 시스템 정합성과 금융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하 지연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완성차 업계에는 JIT·원가 혁신과 재고·복원력 사이의 균형 재설계가 요구된다. 지역 내 안전재고 확보, 세컨드 소스 선(先)자격, 설계 단계의 칩 호환성, 결제·통관 다중화 등은 명백한 비용 증가를 수반하지만, 라인다운 리스크를 감안하면 보험료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특히 부품 기판 일체형 구조에서는 리디자인과 검증에 시간이 걸리므로, 사전적 이중화가 핵심이다.
끝으로, 정부의 수출·투자 심사가 글로벌 공급 흐름을 좌우하는 국면에서, 정책 전환의 시그널(예: 통제 철회 논의, 정상회담 이후 부분 허용)이 실물 조달 타임라인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기업·투자자는 가격·리드타임뿐 아니라 정책 이벤트 캘린더를 함께 모니터링해야 하며, 저가 칩이라도 전략 물자로 분류되는 순간 전체 생산계획이 바뀔 수 있음을 전제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