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가 다음 주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기업 활동, 소비, 공공 재정 전반에서 약화 신호를 보이고 있다다.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가 추가 세금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기업·가계 심리와 정부 재정 지표가 동시적으로 둔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분석이다. 기사 작성은 데이비드 밀리컨, 앤디 브루스, 윌리엄 쇼옴버그 기자가 담당했다. (런던=로이터)
2025년 11월 2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금요일 공개된 일련의 데이터는 예산안에 대한 우려가 세계 6위 규모인 영국 경제의 심리에 부담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리브스 재무장관이 성장이 이미 약한 국면에서 경기 둔화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국가 차입을 줄여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S&P 글로벌 구매관리자지수(PMI) 11월 예비치는 법인세·소득세 등 추가 증세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 속에서 기업들이 투자와 채용 등 계획을 ‘일시 정지’한 정황을 보여줬다.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은 2년 연속 세금 인상 여부가 분명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양상을 보였다.
리브스 재무장관은 다음 주 수요일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채시장 매도(셀오프)를 피하기 위해 수백억 파운드 규모의 추가 증세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는 이미 총리 키어 스타머 정부에 불만을 표하는 유권자 정서를 한층 자극할 위험을 동반한다.
경기 둔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PMI는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11월에 거의 성장하지 못했음을 보여줬으며, 이는 로이터 설문에 참여한 모든 경제학자들의 예상보다 부진한 결과였다. PMI는 2025년 마지막 세 달 동안 영국 경제 성장률이 0.1%에 그칠 것을 시사했다.
크리스 윌리엄슨 S&P 수석 경제학자는 ‘이번 일시 정지가 실질적인 경기 하강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상당 부분 예산안에서 추가적인 수요 억제성 조치가 도입될 것이라는 시장 내 추측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소비 지표도 약화됐다. 영국 통계청(ONS)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10월 소매판매 물량은 전월 대비 감소했는데, 이는 5월 이후 첫 하락이다. 같은 기간 4~10월 정부 순차입은 코로나19 팬데믹 정점기를 제외하면 30년 넘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재정정책 측면에서, 리브스 장관은 지난해 첫 연례 예산에서 1993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세를 단행했으며, 법인·고용주 부담 형태의 급여세 인상을 통해 기업 부문이 상당한 부담을 졌다.
이번 예산에서 추가로 200억~300억 파운드를 마련해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 배경으로는 정부 예산감시기구의 성장률 하향 조정 가능성, 높아진 차입비용, 그리고 복지 축소 법안의 의회 통과 난항이 거론된다.
또한 조사기간의 상당수 동안 리브스는 노동당의 총선 공약을 어기더라도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소득세 기본세율 인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해왔다. 다만 최근에는 여러 개의 소규모 증세 조치를 결합하는 접근을 선호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고용과 물가 신호도 눈에 띈다. 민간부문 고용은 4개월래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했으며, 기업의 판매가격 인상률은 2020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영란은행(BOE)이 다음 달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심리 역시 약화했다. 금요일 발표된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11월 소비자 신뢰는 전월 대비 더 악화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가계심리 조사인 GfK 소비자 신뢰지수는 -17에서 -19로 하락했다.
GfK의 닐 벨러미 소비자 인사이트 디렉터는 이를 ‘다음 주 예산을 앞두고 암울한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지수 수준 자체는 ‘지난 6개월 범위 안’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핵심 개념 해설
– PMI(구매관리자지수): S&P 글로벌이 집계하는 경기 선행지표로, 5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확장, 이하면 위축을 뜻한다. 본문에서 언급된 ‘예비치’는 확정치 발표 전 집계된 초기 추정치다.
– ONS(영국 통계청): 영국의 공식 통계 생산기관으로, 소매판매, 공공재정, 고용 등 거시지표를 발표한다.
– GfK 소비자 신뢰지수: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계 심리 지표로, 0보다 낮을수록 비관을 의미한다. -19는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정서를 시사한다.
– 정부 차입과 국채시장: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 금리가 오를 수 있고, 이는 차입비용 상승과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증세·지출 절감 등으로 재정 신뢰도를 관리하려 한다.
분석: 예산-물가-금리의 3중 고리
세금 인상은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제어해 물가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민간 소비·투자의 취약성을 심화할 위험이 있다. 이번 PMI가 시사하듯 기업이 채용과 투자 결정을 보류하면 생산성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 동시에 정부 차입이 큰 폭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국채시장 신뢰 유지는 정책의 최우선 과제다. 이에 따라 리브스가 대규모 단일 증세보다 여러 소규모 증세의 조합을 검토하는 흐름은 시장 충격을 분산하려는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기업 판매가격 인상률 둔화와 소비자 신뢰 하락은 향후 물가 하방 압력을 암시한다. 이는 영란은행(BOE)의 정책 당국이 금리 인하를 검토할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재정 정책의 긴축 강도와 실물경제의 민감도에 따라 경기 흐름이 좌우될 가능성이 크며, 성장·물가·재정 간 균형을 잡는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요컨대, 현재의 영국 경제는 예산안과 재정 신뢰, 성장 둔화, 그리고 통화정책 전환 기대가 맞물린 미묘한 기로에 서 있다. 세입 확대 없이는 채권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지만, 과도한 긴축은 경기 하강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이번 예산의 구성과 시그널은 연말로 갈수록 영국의 성장 경로와 BOE의 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