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버리(Michael Burry)가 인공지능(AI) 붐의 최대 수혜 기업들,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를 향해 공격적 회계를 통해 이익을 과대계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화 ‘더 빅 쇼트(The Big Short)’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버리는 최근 기술주 공매도 포지션으로 시장을 흔든 바 있다. 뉴욕 자이그펠드 극장에서 열린 ‘더 빅 쇼트’ 뉴욕 프리미어(2015년 11월 23일)에 참석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상징적이다.
2025년 11월 11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버리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미국의 대형 클라우드·AI 인프라 제공업체(hyperscalers)가 반도체·서버 등 핵심 설비의 내용연수를 실제보다 길게 잡아 감가상각비를 과소계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버리는 게시글에서 “자산의 유용한 사용기간을 연장해 감가상각을 과소계상하는 것은 현대에 흔한 부정 중 하나로, 이는 실적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린다”고 썼다. 또 “엔비디아(Nvidia) 칩·서버 등으로 2~3년 제품 주기의 투자를 대규모로 늘리는 상황에서, 컴퓨팅 장비의 내용연수를 오히려 늘리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하이퍼스케일러 전반이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핵심 수치와 지목된 기업
버리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이 같은 회계 처리로 인해 감가상각비가 약 1,760억 달러 정도 과소계상되고, 그 결과 업계 전반의 보고 이익이 부풀려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는 특히 오라클(Oracle)과 메타 플랫폼스(Meta Platforms)를 콕 집어 지목하며, 2028년 기준으로 각각 약 27%, 약 21% 수준까지 이익이 과대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CNBC는 오라클과 메타, 그리고 엔비디아 측에 관련 논평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다만 기업들이 감가상각 기간을 추정할 때 일정한 재량권을 갖는 만큼, 버리의 주장은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닌다. CNBC는 해당 관행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감가상각과 GAAP: 무엇이 쟁점인가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GAAP)에 따르면, 기업이 반도체·서버 같은 대규모 자산을 선지급으로 취득하면, 그 자산이 가치 감소를 겪는 속도에 대한 기업의 추정을 바탕으로 연간 감가상각비를 비용으로 나눠 반영할 수 있다. 내용연수 추정이 길어지면 매년 기록되는 감가상각비가 줄어들고, 이는 곧 당기순이익 증가로 연결된다. AI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는 국면에서, 내용연수 추정은 실적의 민감한 변수가 된다.
버리의 지적은 제품 주기가 짧은 첨단 칩·서버에 대한 대규모 투자(capex)가 진행되는 와중에, 오히려 감가상각 기간을 늘리는 것이 회계적 보수성에 배치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특히 AI 연산 수요가 빠르게 고도화되는 환경에서, 하드웨어의 유효성·성능 격차가 단기간에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사용 주기와 회계상 내용연수의 괴리가 실적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 요지다.
버리의 투자 포지션과 시장 반응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에 베팅해 이름을 알린 버리는, 올해 들어 AI 열풍이 1990년대 말 기술주 거품을 연상시킨다고 경고해 왔다. 지난주 그는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 등 AI 수혜주에 대한 새로운 공매도 성격의 포지션을 드러냈다.
금융당국 공시에 따르면, 버리는 엔비디아에 대해 명목가치 약 $1억8,700만, 팔란티어에 대해 명목가치 약 $9억1,200만 규모의 풋옵션을 보유 중인 것으로 9월 30일 기준 보고됐다. 공시는 해당 옵션의 행사가·만기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이 공시는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버리의 베팅을
“super weird(매우 이상하다)” 및 “batsh– crazy(정신 나간 소리)”
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버리가 현재도 동일 포지션을 유지하는지, 혹은 단지 헤지 목적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주가 흐름도 요동쳤다. 엔비디아는 지난주 7% 하락 이후 월요일에 거의 6% 반등했으며, 팔란티어는 지난주 11% 급락 뒤 월요일에 약 9% 급등했다. 한편 화요일 장중 기준으로는 엔비디아가 다시 하락했다.
X 게시글의 추가 예고
버리는 자신의 X 게시글에서 11월 25일에 “더 많은 상세 내용”을 공개하겠다며 “stay tuned”라고 예고했다. 이는 그가 제기한 감가상각 기간 문제와 AI 하이퍼스케일러 실적의 연관성에 대해 추가 분석을 내놓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용어 설명 및 해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AI 인프라를 전 세계적으로 운영하며, 컴퓨팅·스토리지·네트워크를 급격히 확장(scale-out)할 수 있는 기업을 지칭한다. AI 붐과 함께 GPU·서버에 대한 자본적 지출이 폭증하면서, 이들의 감가상각 정책은 실적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감가상각(depreciation)은 장기간 사용되는 자산의 가치를 회계 기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비용화하는 절차다. 내용연수의 추정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수반하며, 제품 주기·기술 진부화 속도·사용 강도 등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따라서 추정 변경은 손익계산서에 즉각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GAAP은 미국의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으로, 감가상각 방법·내용연수 추정·회계 추정 변경의 공시 등을 규정한다. GAAP은 기업에 일정 수준의 재량과 판단을 허용하지만, 그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충분한 공시가 중요하다. 버리의 문제 제기는 바로 이 재량이 실적 왜곡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는지를 겨냥한다.
풋옵션(put option)은 특정 자산을 사전에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다. 일반적으로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가치가 상승하므로, 하락 베팅·헤지에 활용된다. 명목가치(notional value)는 기초자산 기준의 총 계약 규모를 말하며, 실제 위험 노출 또는 증거금과는 다를 수 있다.
전문가적 시사점
버리의 주장은 AI 투자 사이클의 한복판에서, 감가상각 추정이 보고이익의 민감도를 크게 키운다는 점을 부각한다. 특히 2~3년 제품 주기가 일반화된 고성능 칩·서버 환경에서, 내용연수 연장은 현금흐름 대비 회계이익 간 괴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감가상각 정책 변화, 주요 설비의 기술적 유효기간, 그리고 감가상각 관련 공시를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GAAP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합리적 추정 변경과 실적 부풀리기에 해당하는 과도한 재량 행사를 구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결국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감가상각 기간의 조정이 기술적 현실(제품 주기·성능 격차·진부화 속도)과 일치하는가. 둘째, 그러한 조정이 투자자에게 충분히 설명·공시되고 있는가. 버리의 추가 공개가 예고된 11월 25일 이후, 오라클·메타는 물론 엔비디아를 둘러싼 AI 하드웨어 사이클과 회계 추정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