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V)와 마스터카드(MA)가 자사 신용카드 결제망 이용 대가인 ‘스와이프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주장해 온 가맹점들과의 수정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법원이 3천억 달러($30 billion) 규모의 이전 합의를 불충분하다고 보고 기각한 이후 마련된 새 합의안이다.
2025년 11월 10일, CNBC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비자·마스터카드 및 다수 은행을 상대로 가맹점들이 제기한 미국 반독점법 위반 소송의 20년 분쟁을 사실상 종결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핵심 쟁점은 결제 처리 과정에서 카드망이 부과하는 이른바 ‘스와이프 수수료’(interchange fees)에 대한 담합 및 과다 징수 여부였다.
이번 합의안은 법원 승인을 전제로 하며,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현재 통상 2%~2.5% 수준인 스와이프 수수료를 향후 5년간 0.1%포인트 인하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결제 한 건당 부과되는 카드 네트워크 수수료의 소폭이지만 명시적·기간 한정 인하를 의미한다.
또한 가맹점은 미국에서 발급된 카드에 한해 카드 세부 카테고리별로 수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해당 카테고리는 상업용 카드, 프리미엄 소비자 카드(다수의 리워드 카드 포함), 일반 소비자 카드로 구분된다. 이는 모든 카테고리를 동일하게 수납해야 했던 기존 관행에서 한 발 나아간 선택권 부여로 해석된다.
특히 일반 소비자 카드의 스와이프 수수료는 합의 만료 시점까지 1.25%로 상한이 설정된다. 아울러 가맹점은 신용카드 결제 시 부과 가능한 추가 할증(surcharge)에 대해 보다 다양한 옵션을 갖게 된다.
미국 최대 소매업 단체인 국가소매연맹(National Retail Federation)에 따르면, 미국의 스와이프 수수료 총액은 2024년 기준 1,112억 달러로, 2023년 1,008억 달러에서 증가했으며, 2009년 대비 약 4배에 달한다. 이 수치는 카드 결제가 소매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비용 압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자는 이번 합의가 “모든 규모의 가맹점에 의미 있는 구제와 더 큰 유연성, 그리고 고객 결제 수납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마스터카드는 특히 “소규모 가맹점이 더 큰 유연성, 낮은 비용 및 간소화된 규정의 혜택을 볼 것”이라며, 이번 조치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더 나은 결제 경험”이 제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회사는 이번 합의에 동의하면서도 위법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원 승인 관문과 추가 반대 가능성
이번 합의는 뉴욕 브루클린의 미 연방지방법원 마고 브로디(Margo Brodie) 판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브로디 판사는 2024년 6월에 3천억 달러 규모의 이전 합의를 “불충분”하다고 보고 기각한 바 있다.
당시 합의는 향후 5년간 스와이프 수수료를 약 0.07%포인트 인하하고, 가맹점의 할증 부과 재량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 조치로도 수수료 수준이 여전히 높게 유지될 것이며, 가맹점이 얻게 될 연간 60억 달러 규모의 절감액은 비자·마스터카드가 계속 부과할 수 있는 금액에 비해 “미미(paltry)”하다고 지적했다.
브로디 판사는 또한 가맹점이 “모든 카드 수납(Honor All Cards)” 규정에 묶여 비자·마스터카드의 모든 카드를 수납하거나, 아예 받지 않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구조가 문제라고 봤다.
한편 가맹점 측은 오래전부터 비자·마스터카드가 “안티-스티어링(anti-steering)” 규정을 통해 보다 저렴한 결제 수단으로 고객을 유도하는 행위를 제한해 왔다고 비판해 왔다. 이 규정은 가맹점의 비용 관리·가격 책정 전략에 있어 중요한 제약으로 거론돼 왔다.
이번 수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일부 가맹점 및 업계 단체의 반대가 예상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토요일에 해당 합의 윤곽을 보도한 직후부터 일부 반대 의견이 공개 표출됐다.
머천트 페이먼츠 코얼리션(Merchants Payments Coalition)은 이번 수수료 인하폭이 “극히 미미(minuscule)”하다며, 한시적 인하가 종료되면 비자·마스터카드는 제한 없이 다시 수수료를 인상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가맹점은 리워드 카드를 “수납하지 않을 선택지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는데, 리워드 카드는 전체 발급 카드의 85%를 차지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은행이 카드를 다른 카테고리로 재분류함으로써, 결국 모든 카드를 수납하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핵심 용어 해설: ‘스와이프 수수료’와 규제 쟁점
스와이프 수수료(interchange fee)는 카드로 결제가 이루어질 때 가맹점이 카드 발급사·네트워크에 지불하는 비용으로, 결제 금액의 일정 비율로 산정되는 경우가 많다. 비자·마스터카드 같은 네트워크는 결제 승인·정산 등 인프라를 제공하고, 이 수수료는 카드 리워드, 사기 방지, 운영 비용 등을 충당하는 재원으로 활용된다. 반면 가맹점 입장에서는 영업이익을 직접 잠식하는 비용이어서, 수수료 인하·선택적 수납·할증 부과 등 비용 통제 수단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카드 수납(Honor All Cards)” 규정은 동일 네트워크 내 카드라면 조건을 불문하고 모두 받아야 하는 원칙을 뜻한다. 가맹점은 이 규정 때문에 수수료가 높은 프리미엄 카드까지 의무적으로 수납해야 해 비용 통제가 어려웠다고 주장해 왔다. “안티-스티어링” 규정은 가맹점이 수수료가 낮은 결제수단으로 고객을 유도하는 것을 금지·제한하는 조항으로, 이는 가격 신호를 통한 효율적 선택을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수정 합의의 실질적 의미와 향후 관전 포인트
이번 수정 합의의 0.1%포인트 인하는 이전안의 0.07%포인트보다 폭이 커졌고, 일반 소비자 카드 1.25% 상한과 카테고리별 선택 수납 허용, 할증 부과 재량 확대 등 가맹점 선택권을 넓히는 요소가 구체화됐다. 다만 기간이 5년으로 한정돼 있고, 만료 이후의 수수료 궤적에 대한 구속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남을 수 있다.
가맹점의 관점에서 이번 합의는 즉각적 비용 경감과 결제 포트폴리오의 유연성을 일부 회복해 준다. 특히 리워드·프리미엄 카드의 수수료 부담이 높은 업종이나 소규모 소매업에게는 선택적 수납과 할증 전략이 마진 방어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 반면 리워드 혜택에 익숙한 소비자는 가맹점의 정책 변화(예: 할증 부과, 특정 카드 비수납)에 직면할 수 있으며, 이는 결제 행태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규제·사법 측면에서는 브로디 판사의 엄격한 심사가 이미 확인된 만큼, 법원은 실질적 경쟁 촉진과 수수료 구조의 지속가능한 개선이 담보됐는지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지적된 “모든 카드 수납” 관행이 실무에서 어느 정도 완화되는지, 그리고 안티-스티어링 관련 제한이 사실상 완화되어 가격 신호의 기능이 회복되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한편, 국가소매연맹이 제시한 수치(2024년 1,112억 달러)가 보여주듯, 스와이프 수수료는 거시적으로 큰 비용 항목으로 성장해 왔다. 이에 따라 결제 생태계 전반에서의 비용 균형—가맹점의 비용 절감, 카드사의 인프라·보안 투자 지속, 소비자의 리워드·편의성 유지—을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정교한 거버넌스가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이번 수정 합의는 가맹점 선택권 확대와 단기 비용 경감 측면에서 한걸음 전진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만료 이후의 수수료 경로와 실무상 규정 준수·감독이 관건이다. 법원 승인 절차와 가맹점 단체의 대응이 향후 카드 수수료 구조 개편의 진폭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