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런던 — 러시아 정유사 루코일(Lukoil)의 해외 사업이 미국의 거래 중단 데드라인을 앞두고 차질이 커지는 가운데, 스위스 원자재 트레이더 건보르(Gunvor)에 대한 매각 기대가 무산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루코일이 미국 제재 대상임을 이유로 어떠한 매각도 승인해야 하는 위치이며, 전날 건보르를 크렘린의 “꼭두각시(puppet)”라고 지칭하며 해당 거래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25년 11월 7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달 루코일과 더 큰 경쟁사인 로스네프트(Rosneft)를 제재했으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사안을 둘러싼 협상 테이블로 러시아를 이끌려는 압박의 일환이다. 제재의 영향이 유럽 전역의 공급망으로 파급되는 가운데, 투자자와 거래 상대방들은 11월 21일로 설정된 미국 재무부의 거래 중단 시한을 앞두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맥클라티 어소시에이츠의 선임 전무이사이자 전 미 국무부 에너지자원 차관보였던 제프리 파이엇(Geoffrey Pyatt)은 “재무부의 이번 단호한 메시지는 러시아 에너지 교역이 신속히 정상화될 것에 베팅한 이들이 실망할 것임을 시장에 신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 당국의 감독·허가 의지가 강경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며, 제재 환경에서의 신속한 정상화 기대가 비현실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애널리스트들과 원유 업계 경영진은 루코일이 11월 21일 재무부 시한까지 협력사들과의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보유 자산을 큰 폭의 할인으로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잠재 인수자는 서방의 메이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러시아 정부 산하 재무대학의 교수 이고르 유슈코프(Igor Yushkov)는 “이제 이후의 모든 잠재 인수자는 건보르와의 거래가 암시했던 것보다 더 큰 할인을 요구할 것이며, 어쩌면 바로 그것이 미국 측이 의도한 바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몰도바: 예외 인정 요청과 공항 연료 인프라 쟁점
제재 여파는 몰도바에서 즉시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몰도바의 에너지장관 도린 준기에투(Dorin Junghietu)는 금요일, 루코일이 11월 21일부터 현지에서의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루코일이 주유소망을 보유하고, 국내 석유 시장에 공급하며, 키시나우 공항의 유일한 연료 저장·공급·항공기 급유 시설의 민간 소유주라고 설명했다.
준기에투 장관은 워싱턴에 일시적 예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까지 루코일이 한시적으로 운영을 지속하도록 허용해 몰도바의 연료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그는 또한 몰도바 정부가 루코일의 자산 분리(디베스트) 제안과 공항 인프라를 제3자에 매각하려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불가리아: 부르가스 정유공장 ‘특별관리인’ 선임 가속
불가리아 당국은 최근 며칠 사이 루코일의 부르가스 정유공장 운영권을 특별관리인에게 넘길 수 있도록 절차를 가속하고 있다. 집권당 정치인들은 해당 특별관리인이 임명될 경우 루코일의 동의 없이도 정유공장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이는 제재 준수 및 공급 안정을 위해 거버넌스 권한을 공공적으로 재배치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핀란드: 테보일(Teboil) 연료 고갈
핀란드에서는 루코일이 소유한 주유소 체인 테보일(Teboil)의 연료가 고갈되고 있다고 현지 일간지 헬싱인 사노맛(Helsingin Sanomat)이 보도했다. 토니 플뤽트(Toni Flyckt) 테보일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이사는 신문에 “우리는 연료 재고를 소진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 주유소에서는 특정 유종이 품절된 상태이고, 그러한 주유소의 숫자가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대(對)모기업 제재로 인해 거래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렘린: “루코일의 합법적 국제 이익은 존중돼야”
건보르의 인수 철회 이후, 크렘린은 루코일의 국제적 이익이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 크렘린 대변인은 이번 사안을 상업적 문제이자 모스크바를 겨냥한 미국의 “불법적 제재”와 관련된 사안으로 규정하면서도, 루코일의 이익 보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페스코프는 “국제 무역과 경제 관계의 관점에서, 러시아 기업을 포함한 루코일과 같은 대형 국제 기업의 모든 합법적 이익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과 용어 해설
• 미국 재무부 제재: 특정 개인·기업과의 금융·거래 행위를 금지하거나 허가제로 전환하는 조치다. 본 건에서는 루코일과 로스네프트가 대상이며, 거래 중단 시한인 11월 21일까지 미국 관할 기업·금융기관·제3국 기업의 준수가 요구된다.제재 위반 시 2차 제재 등 리스크가 커진다
• 특별관리인(Special Manager): 기업 지배구조 또는 특정 자산의 운영권을 임시로 맡아 제재 준수, 공공안전, 공급망 안정 등을 도모하는 제도적 장치다. 불가리아의 제안은 주인의 동의 없이 매각까지 허용할 수 있어, 법적·정치적 파장이 크다.
• 디베스트(자산분리)와 딥 디스카운트(대폭 할인): 제재 하에서는 잠재 인수자의 컴플라이언스·자금조달 리스크가 커지므로, 인수 가격에 리스크 프리미엄이 반영돼 할인 폭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안에서 건보르 거래가 좌초되며, 후속 인수자들은 더 큰 할인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분석: 제재 시한, 유럽 공급망, 가격 형성의 삼중 압력
이번 사태의 핵심 축은 미국 재무부의 11월 21일 시한, 유럽 내 공급망 안정성, 그리고 자산 가격 형성의 상호작용이다. 시한이 촉박할수록 매도자는 협상력이 약화돼 가격 할인을 수용할 여지가 커지고, 금융기관과 보험사는 제재 준수 요건을 이유로 거래 지원을 보수적으로 재조정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은 몰도바의 공항 급유 인프라나 핀란드 테보일 주유망처럼 현장 기반의 연료 사슬에 즉각적인 병목을 유발할 수 있다.
잠재 인수 시나리오에서, 서방 메이저가 인수 주체가 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제재 환경에서 컴플라이언스 체계와 자금조달 능력을 갖춘 주체가 리스크 흡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다만, 이는 당국 승인과 정치적 수용성이라는 추가 변수에 좌우된다. 결과적으로 가격의 추가 할인 압력이 커질 수 있으며, 거래 종결까지의 불확실성 프리미엄도 확대된다.
공급 측면에서 핀란드 테보일의 재고 고갈은 제재가 현장 유통에 미치는 실증적 신호다. 일부 유종 품절이 확대되는 양상은, 거래 차단으로 인해 대체 조달과 재고 관리가 어려워졌음을 암시한다. 유럽 각국 규제 당국은 특별관리인이나 법률 개정 같은 도구로 공급 안정화를 꾀할 수 있으나, 이는 사유재산권·계약자유와의 긴장 관계를 수반하므로 정책 결정의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정치·외교 맥락에서, 재무부의 건보르 ‘꼭두각시’ 규정은 정책적 신호의 강도를 높여 시장에 규제 리스크 재평가를 촉발한다. “빠른 정상화” 베팅의 좌초를 지적한 파이엇 발언과, “더 큰 할인 요구”를 예상한 유슈코프의 평가는, 현재의 협상 지형에서 판매자 열위와 정책 불확실성이 결합했음을 보여준다. 크렘린의 ‘합법적 이익 존중’ 요구는 대외 메시지이자 향후 협상에서의 정치적 지렛대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전망: 11월 21일 이후의 경로
미국 재무부 시한까지 거래 중단이 현실화되면, 루코일의 해외 자산 매각은 시간 압박과 가격 할인이라는 이중 제약 아래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 내 정유·유통 부문에서의 특별관리인 체계 도입이나 법적 권한 강화 시도는, 공급 안정이라는 공익 목적과 사적 재산권 보호 간 균형을 시험할 것이다. 각국 정부의 한시적 예외 요청은 현장 공급망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리 놓기 전략으로서,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규제 준수와 공급 보전 간 최적화를 재설계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핵심 인용구
“재무부의 단호한 메시지는 러시아 에너지 교역의 신속한 정상화를 기대한 이들이 실망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다.” — 제프리 파이엇
“이제 이후의 모든 인수자는 더 큰 할인을 요구할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미국이 바란 바일 수도 있다.” — 이고르 유슈코프
“우리는 연료 재고를 소진하는 중이며, 일부 주유소는 이미 특정 유종이 동나고 있고 그런 주유소가 매일 늘고 있다.” — 토니 플뤽트(테보일)
“루코일과 같은 대형 국제 기업의 모든 합법적 이익은 존중돼야 한다.” — 드미트리 페스코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