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 이자벨 슈나벨(Isabel Schnabel)은 목요일 발언에서, 은행시스템에 유동성을 투입하기 위한 채권 매입 재개는 아직 요원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0여 년에 걸친 완화적 통화정책 기간에 ECB가 대거 사들였던 채권을 더 많이 소진(상각·만기 도래에 따른 축소)하는 작업이 먼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11월 6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ECB는 2015년부터 2022년 사이 여러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시스템에 투입했던 수조 유로 규모의 유동성을 점진적으로 흡수해 왔다. 당시 ECB는 지나치게 낮았던 인플레이션을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자산매입을 시행했다.
ECB의 시장운영을 총괄하는 슈나벨 이사는 현재 진행 중인 이른바 “양적 정상화(quantitative normalisation)”를 지속해,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충분한 규모의 채권이 자연소멸(만기상환)될 때까지 해당 과정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ECB 정책결정기구인 이사회(Governing Council)가 판단하는 목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는 의미다.
“새 포트폴리오에 따른 매입은, 과거 통화정책 하에서 보유해 온 채권 포트폴리오가 주입한 유동성과 순금융자산 포지션이, 이사회가 증권 보유를 통해 제공하기로 한 준비금 몫을 충당하기에 부족해지는 시점이 되어야만 시작될 것이다.”
“수동적 대차대조표 축소(passive balance sheet run-off)는 그 시점이 아직 멀었음을 시사한다.”
그는 또한 금리가 상승할 경우 ECB의 추가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매입은 단기채권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민감도(듀레이션) 관리를 염두에 둔 보수적 접근으로 해석된다.
슈나벨은 채권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 ECB가 시중은행에 대한 장기 유동성 대출을 재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은행 시스템 전반의 유동성 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필요 시 시장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전통적 수단의 복원을 뜻한다.
그는 이러한 대출은 고정 금액을 변동금리로 입찰하는 정기 경매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만기는 추후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액은 사전에 정하되, 낙찰 금리는 입찰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구조다.
“과거 ECB는 은행에 제공하는 대출의 만기를 다양하게 운용해 왔다.”
“예외적 상황, 예컨대 국가부채 위기나 팬데믹에 대응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조치의 만기가 1년을 초과한 적은 드물다.”
핵심 포인트 요약
– ECB의 새 채권매입은 당분간 시작되지 않는다: 기존 포트폴리오의 자연 축소가 더 진전돼, 증권 보유를 통해 제공하기로 한 준비금 몫을 스스로 충당하지 못하는 시점이 도래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 수동적 대차대조표 축소가 관건: 적극적 매각이 아니라 만기 도래에 따른 자연 감축을 통해 대차대조표를 줄여가는 전략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 단기채 중심으로 손실 리스크 억제: 금리 상승 시 평가손실을 줄이기 위해 듀레이션이 짧은 자산을 우선 고려한다.
– 장기 유동성 대출의 선행 재개: 채권매입에 앞서 은행 대상 장기자금 공급을 경매 방식으로 재개할 수 있으며, 만기는 상황에 따라 결정한다.
용어 해설과 맥락
양적 정상화(quantitative normalisation)는 과거 완화 국면에서 비전통적 수단으로 확대된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과정이다. 통상적으로 만기 도래 자산을 재투자하지 않거나 일부만 재투자해 보유자산이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동적 축소는,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대규모 매도가 아닌 자연 소멸을 통해 유동성 흡수를 완만하게 진행한다는 의미다.
순금융자산 포지션(net financial asset position)은 중앙은행의 보유자산과 부채의 순대응 관계로, 시스템에 공급된 순유동성의 크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ECB 이사회가 증권 보유를 통해 제공할 준비금의 목표 몫을 정해 놓았을 때, 기존 포트폴리오만으로 그 몫을 충당하지 못하면 추가 매입의 필요성이 생긴다. 슈나벨의 발언은 그 임계점이 아직 멀었다는 평가로 요약된다.
변동금리 경매(variable rate auction)는 중앙은행이 공급할 자금의 총량은 고정하되, 금리는 입찰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은행들은 필요한 자금 규모와 수용 가능한 금리를 제시하며, 중앙은행은 제출된 금리를 기준으로 자금을 배분한다. 이와 달리 고정금리 전액공급은 중앙은행이 제시한 금리로 원하는 만큼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하는 구조인데, 슈나벨은 현재 고정금액·변동금리 방식을 시사했다.
단기채권 중심의 매입 설계는 금리 경로의 불확실성 속에서 평가손실의 파급을 최소화하기 위한 위험관리다. 듀레이션이 짧을수록 금리 상승 시 가격 하락 폭이 제한되며, 재투자 시점도 잦아 정책 유연성이 높아진다. 슈나벨이 “단기채에 집중”을 재확인한 대목은, 정책 정상화 국면에서도 손실 흡수능력을 두텁게 유지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정책적 함의와 시사점
첫째, ECB는 대차대조표 축소의 일관성을 우선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과거의 초저물가 상태와 다르게 전개된다는 환경 변화 속에서도, 유동성 관리의 질서 있는 전환을 지향한다는 신호다. 새 매입 조건을 엄격하게 설정함으로써, 시장에 과도한 완화 기대가 선행되는 것을 차단한다.
둘째, 장기 유동성 대출의 선행 재개는 채권매입보다 미세조정이 쉬운 수단을 우선 배치하겠다는 선택이다. 경매 구조를 통해 수요·금리를 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어, 유동성 공급의 효율성과 정책 신뢰도를 함께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단기물 선호는 향후 금리 경로가 다시 상방 리스크를 보일 경우에도 중앙은행 재무건전성을 보호한다. 또한 만기구조가 짧으면 필요 시 매입·재투자 정책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어, 정책 유연성이 증대된다.
넷째, “아직 멀었다”는 표현은 시장에 시간표에 대한 조급함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새로운 매입 재개가 임박했다는 기대가 생기면 장기금리와 스프레드가 앞서 반응할 수 있는데, 슈나벨의 발언은 그러한 기대를 사전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인용구 주요 대목원문 요지
“새 포트폴리오 매입은, 구(舊) 통화정책 포트폴리오가 주입한 유동성과 순금융자산 포지션으로는 이사회가 증권 보유를 통해 제공하기로 한 준비금의 몫을 충당하지 못할 때에만 시작될 것이다.”
“수동적 대차대조표 축소는 그 시점이 아직 멀었음을 의미한다.”
“과거 ECB는 은행 대출 만기를 다양화해 왔으며, 국가부채 위기나 팬데믹 같은 예외적 상황에서만 만기가 1년을 넘었다.”
정리
결론적으로, ECB는 단기간에 새로운 채권매입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우선순위는 양적 정상화의 꾸준한 진행과, 필요 시 장기 유동성 경매를 통한 정교한 유동성 관리다. 매입을 재개하더라도 단기채 위주로 리스크를 통제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는 정책 신뢰와 재무건전성을 동시에 지키면서, 금융여건 변화에 대응할 정책 여지를 확보하려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