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주가가 수요일 장중 14% 이상 급락하며 아시아 전역의 AI(인공지능) 연계 종목 하락세를 주도했다. 이는 전날 미국 기술주 약세와 보조를 맞춘 움직임으로, 가장 붐비는 거래(crowded trade)1로 꼽히는 AI 섹터의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부담에 대한 경계심이 급격히 커진 결과다. 소프트뱅크는 인프라·반도체·애플리케이션에 걸친 광범위한 AI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가운데, 이날 시가총액 약 320억달러가 증발했다.
2025년 11월 5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낙폭이 종가까지 유지될 경우 소프트뱅크 주가는 지난해 8월 18% 넘게 급락했던 이후 최악의 하루를 기록하게 된다. LSEG 집계에 따르면, 이틀 누적으로는 약 500억달러 가까운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이는 AI 랠리의 피로감과 고평가 논란이 실제 가격 조정으로 번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프트뱅크의 AI 노출은 다층적이다. 영국의 Arm Holdings에 대한 지배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Arm의 칩 설계는 모바일과 AI 프로세서를 구동한다. 소프트뱅크는 또 올해 Ampere Computing을 인수해 AI 데이터센터 역량을 강화했다. 나스닥 상장 Arm 주가는 전날 밤 4.71% 하락했다.
또한 소프트뱅크는 OpenAI와 같은 선도적 AI 모델 개발사와, 생성형 AI 기반 동영상 편집 플랫폼 OpusClip, 정밀의료에 머신러닝을 적용하는 Tempus AI 등 애플리케이션 레벨 스타트업에도 투자해왔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의 성과 기대가 그간 주가를 지지했지만, 밸류에이션 부담이 부각되면서 단기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 전역으로 번진 약세: 반도체·플랫폼 동반 하락
일본 기술주 전반도 약세였다.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 어드반테스트(Advantest)가 8% 이상 하락했고,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5.48%, 반도체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Tokyo Electron)은 5%대 이상 떨어졌다. 한국에서는 메모리 대형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거의 6% 하락했다. 올해 들어 두 종목의 급등은 코스피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린 동력이었으나, 이날은 역풍을 피하지 못했다.
대만 TSMC는 2% 하락했다. 홍콩에서는 알리바바가 3%대 약세, 텐센트가 2%대 하락을 기록했다. AI 연관 하드웨어·클라우드·플랫폼 전반으로 매도가 확산된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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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신호: 밸류에이션 피로와 위험회피
전날 미국 증시에서는 팔란티어(Palantir)가 약 8% 급락했다.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를 상회했음에도, AI 전반의 고평가 논란이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S&P 500의 포워드 P/E2는 23배를 넘어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는 밸류에이션 리레이팅 여지가 제한적임을 시사하며, 성장 기대가 미세하게라도 둔화될 때 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 베테랑 루이스 나벨리에(Louis Navellier)는 “AI 조정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만약 그것이 현실화하면, 선도주의 비중이 워낙 커서 시장 전반을 휩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현재 AI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주가가 신뢰할 만한 이익 전망을 한참 앞서가고 있다는 취지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낸 재러드 번스타인(Jared Bernstein)은
“경제에서 AI 투자의 비중이 인터넷 버블 당시보다 거의 3분의 1 더 높다. 이익 잠재력과 지출 간의 격차는 ‘확실히 거품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마이클 버리(2008년 금융위기 예측으로 유명)도 논쟁을 키웠다. 최근 공시에 따르면 그의 사이언 애셋 매니지먼트는 팔란티어와 엔비디아에 대한 공매도(숏) 포지션을 크게 구축했다. 두 기업은 각각 AI 소프트웨어·칩 기술의 최전선에 있다.
팔란티어 외에도 미국 빅테크가 동반 약세를 보였다. 오라클은 4% 하락했고, AMD는 거의 4% 내렸다. 엔비디아와 아마존 역시 하락 마감했다. 리스크 자산 전반에서 위험회피(Risk-off) 성향이 강화된 흐름이다.
웨드부시의 매니징 디렉터이자 시니어 주식 애널리스트 댄 아이브스(Dan Ives)는 “내 견해로는 이번 매도세는 단기적이다. 구조적 하락의 시작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투자자들의 신경 과민과 백색 손마디(white knuckles)가 만든 조정일 뿐이다. 최근 암호화폐 등과 함께 나타난 매도세는 대규모 위험축소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크라우디드 트레이드(crowded trade)1: 다수의 투자자가 동일한 포지션에 몰려 있는 상태를 뜻한다. 포지션 청산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기 쉽다.
포워드 P/E(Forward Price-to-Earnings)2: 향후 12개월 등 예상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미래 성장 기대가 가격에 선반영되었음을 의미하나, 동시에 실망 위험도 커진다.
숏 포지션(Short position):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전략으로,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팔고 가격이 떨어진 후 되사서 상환하는 방식이다.
맥락과 파급경로: 왜 아시아가 크게 흔들렸나
이번 조정은 AI 가치사슬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지역·섹터 경계를 넘어 나타났다. 일본의 검사장비·장비 업체, 한국의 메모리, 대만의 파운드리, 중국·홍콩의 플랫폼 기업들은 AI 수요 기대라는 공통분모로 동반 재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 밸류에이션 피로가 표면화되자, 글로벌 투자자들은 가장 유동성이 높은 종목들부터 차익실현에 나섰다. 그 결과, 소프트뱅크처럼 AI에 대한 지배적 노출을 가진 기업이 벤치마크 역할을 하며 하락을 주도했다.
특히 Arm과 Ampere로 대표되는 데이터센터/엣지 생태계, 그리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대는 글로벌 AI 투자 논리의 핵심 축이었다. 기대가 과도해질수록 실적 가시성이 관건이 되며, 실제 수요가 컨센서스를 추종하지 못할 경우 단기 조정 폭은 커진다. 이날 하락은 그 민감도를 재확인시켰다.
분석과 시사점
첫째, 밸류에이션 레벨이 높아질수록 단기 이벤트(실적, 가이던스, 정책 코멘트)에 대한 가격 탄력성이 커진다. S&P 500 포워드 P/E 23배 상회라는 지표는 AI 관련주가 서프라이즈의 지속을 전제로 한 가격임을 시사한다. 서프라이즈 강도 둔화만으로도 멀티플 콤프레션(평가배수 축소)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포지션 집중이 리스크를 키운다. 크라우디드 트레이드에서의 동시 청산은 변동성을 증폭시킨다. AI 테마는 상호 연동된 가치사슬을 통해 아시아까지 폭넓게 확산되어 있으며, 따라서 특정 허브(엔비디아, Arm, 주요 메모리·파운드리)의 흔들림이 주요 위성 종목 전반으로 전이되기 쉽다.
셋째,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핵심이다. 번스타인이 지적했듯, 투자 비중이 과거 인터넷 버블보다 높음에도 이익 실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조정 가능성은 상존한다. 다만,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가 강조한 대로 이번 하락이 구조적 약세장의 시작인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리스크오프의 성격이 강한 단기 변동성 확대로도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넷째, 투자자 관점의 실무적 포인트로는 다음이 중요하다. (a) 실적 가시성과 수주·백로그의 추적, (b) 밸류에이션 대비 성장률(GARP 접근)의 재점검, (c) 동일 테마 내 상대가치와 공급망 병목에 따른 수혜·피해의 재배치, (d) 포지션 분산과 헤지를 통한 변동성 관리다. 이는 테마 자체의 장기 트렌드와 단기 가격조정을 분리해 바라보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
다섯째, 감시 변수로는 미국 빅테크의 가이던스 톤, AI 인프라 투자 계획의 속도 조절 여부,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캡엑스 사이클 변화, 그리고 규제·정책 시그널이 있다. 이들 변수는 멀티플과 이익 추정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며, 아시아의 반도체·장비·플랫폼에까지 연쇄 파급을 낳을 수 있다.
결론
소프트뱅크의 14%대 급락과 이틀간 약 500억달러의 시가총액 증발은, AI 슈퍼사이클을 둘러싼 기대와 밸류에이션의 미묘한 균형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일본·한국·대만·홍콩으로 확산된 하락은 AI 가치사슬의 결속과 글로벌 포지션의 동조화가 만든 결과다. 미국에서 촉발된 밸류에이션 점검은 당분간 변동성을 높일 수 있으나, 그 성격이 체계적 약세인지 단기 리스크오프인지는 향후 실적과 수요 지표가 결정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피로한 멀티플과 실적 가시성 사이의 균형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