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쉬인(Shein)의 패스트패션 확장이 정치권·유통 업계·규제 당국의 공세와 정면충돌하고 있다. 중국계 온라인 패션 플랫폼인 쉬인은 파리 중심가의 BHV 백화점에 첫 상설 매장을 열고, 이달 말에는 갤러리 라파예트의 지방 점포 5곳에도 컨세션(임대) 매장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은 프랑스 정치권과 유통 업계의 강한 반발을 촉발하며 전면전에 가까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2025년 11월 4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Véronique Louwagie 전 상공·중소기업 담당 장관은 쉬인의 매장 개설 소식을 접하자마자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는 갤러리 라파예트라이선스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한 백화점 측 입장을 확인했고, 쉬인 매장이 예정된 앙제, 디종, 그르노블, 리모주, 랭스의 시장들, 그리고 프랑스 공공은행인 Caisse des Dépôts의 수장에게도 연달아 연락했다고 밝혔다. Caisse des Dépôts는 BHV 부동산 거래 자금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가치 기준을 이유로 발을 뺐다.
프랑스 정치권·소매업계·규제당국의 공조는 쉬인의 시장 확대에 대한 견제와 동시에 오프라인 상권 보호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에서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규제 강화 법안을 둘러싼 긴장의 연장선이다. 해당 법안은 쉬인이 강력히 반대해온 사안으로, 시행 시 쉬인의 광고 금지 및 판매 품목당 벌칙 부과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상원은 이미 6월에 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EU 법규와 정합성을 맞추기 위한 수정 작업이 진행 중이며, 내년 초 시행 가능성이 거론된다.
논란의 핵심: "쉬인은 지역 상권을 파괴한다"
프랑스 의원들은 쉬인의 초저가 전략이 저가 전자상거래 물품에 대한 관세 면제라는 불공정한 제도적 우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프랑스 패스트패션 체인 제니퍼(Jennyfer)와 나프나프(Naf Naf)는 잇따라 파산을 신청했다. Louwagie 전 장관은 로이터에 "쉬인은 우리 지역의 활력을 훼손하고, 일자리를 파괴하며, 상점을 문 닫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쉬인은 자사의 온디맨드(on-demand) 생산 모델을 내세운다. 공장이 소량 선제 생산으로 수요를 테스트하고, 반응이 좋을 때만 생산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 효율적이며, 쉬인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가 프랑스 브랜드·소매업체의 고객 접점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SGM의 베팅: "논란을 기회로"
쉬인의 프랑스 내 오프라인 전개는 Société des Grands Magasins(SGM)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SGM은 BHV와 지방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실적 반등을 모색하고 있으며, 쉬인 입점을 통해 더 젊은 고객층을 끌어들이길 기대하고 있다. 카를-스테판 코텡댕 SGM 총괄이사는 프랑스 BFM TV 인터뷰에서 "우리는 쉬인의 프로젝트를 믿는다.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프랑스 내 2,400만~2,500만 명의 소비자를 지닌 브랜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SGM과 쉬인은 논란 자체를 마케팅으로 전환하려는 듯한 행보도 보였다. 파리 마레 지구 BHV 외벽에 공개된 빌보드는 프레데릭 멀랭 SGM 회장과 쉬인 도널드 탕 회장(집행의장), 그리고 그의 반려견 사치의 사진과 함께 "우리가 만들지 말았어야 할 빌보드!"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코텡댕은 "버즈를 만드는 것은 오늘날의 비즈니스 방식이며, 보다 현대적인 사업의 한 형태"라고 덧붙였다.
신뢰전: 고위 인사 영입과 현장 행보에도 비판 여론 여전
쉬인은 프랑스 내 신뢰 구축을 위해 전직 내무장관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등 프랑스 인사를 자문역으로 영입하고, 현지 유통사와의 제휴를 모색해왔다. 도널드 탕 회장은 전국을 순회하며 비판자들을 만나고 프랑스 엘리트 모임에도 참석했지만, 여론을 근본적으로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프랑스의 강경 대응은 다른 국가들과 대비된다. 2012년 중국에서 설립된 쉬인은 뉴욕·런던 상장 실패 이후 현재 홍콩 상장을 모색 중이다. 그 사이 프랑스 소비자 watchdog이 아동과 유사한 성인용 인형이 쉬인에서 판매된 사실을 적발하자, 롤랑 레스퀴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 같은 인형이 다시 단 한 번이라도 판매된다면 프랑스 시장 접근 차단을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쉬인은 관련 판매자를 제재하고 해당 인형 판매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규제당국은 쉬인에 대해 허위·오인 소지의 할인 및 동의 없는 소비자 데이터 수집과 관련해 총 1억9천만 유로(미화 2억2,158만 달러환율: $1 = €0.8575)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큰 규모다.
패스트패션 규제 법안: 하루 1,000개 이상 신상품 플랫폼 정조준
프랑스 상원이 6월 통과시킨 패스트패션 억제 법안은 하루 1,000개 이상의 신상품을 올리는 플랫폼, 즉 쉬인과 경쟁사 테무(Temu)와 같은 사업자를 직접 겨냥한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쉬인은 광고 금지 및 품목당 패널티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쉬인은 이로 인해 소비자 가격이 상승해 소비자 후생이 훼손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쉬인은 입법 저지 로비를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가 확인한 10월 27일자 서한에 따르면, 도널드 탕 회장은 법안을 주도한 의원 안느-세실 비올랑(Anne-Cécile Violland)에게 처음으로 면담을 요청했다.
"아주 소규모의 시험": 오프라인 매장의 계산
쉬인 대변인은 로이터에 "이번 매장은 아주 소규모의 시험"이라며 대규모 오프라인 전환과는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집객 효과와 지역 경제 파급을 노리는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쉬인은 이번 매장들이 총 2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6월 디종에서 운영한 팝업스토어에는 2만7,000명이 방문했고,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이들이 도심 방문을 이 행사 때문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BHV 개점 발표 직후 20개가 넘는 브랜드가 BHV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고, 디즈니랜드 파리는 예정돼 있던 성탄절 쇼윈도 전시를 취소했다. 백화점 노동자들도 항의 집회를 진행했다. 앞서 Caisse des Dépôts는 SGM 주도의 BHV 건물 인수에서 철회했고, "우리의 투자는 지역성과 책임 있는 비즈니스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고 밝혔다.
쉬인과 협력한 프랑스 유통사에도 역풍이 거셌다. 9월 쉬인은 프랑스 패스트패션 기업 핌키(Pimkie)와 Shein Xcelerator 프로그램 제휴를 발표하며 자사 마켓플레이스 입점을 알렸다. 불과 이틀 뒤, Fédération des Enseignes de l’Habillement(프랑스 의류 유통 연합)은 핌키의 제명을 발표했다. 이 연합에는 키아비(Kiabi), 셀리오(Celio), 그리고 글로벌 패스트패션 대기업 자라(Zara), H&M 등이 포함돼 있다.
EU 관세 면제·중국산 덤핑 논란: 프랑스의 선제적 압박
프랑스 정부는 150유로 이하 전자상거래 물품에 적용되는 관세 면제의 EU 차원 조기 폐지를 강하게 촉구해왔다. 값싼 중국산 제품의 시장 덤핑이 가속화되고, 세관이 EU 법규 준수 여부를 충분히 점검하지 못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권 교체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쉬인에 대한 엄격한 감시는 일관되게 유지돼 왔다.
세르주 파팽 현 상공·중소기업 담당 장관은 지난달 의회에서 "거리 상권을 지키는 것이 우리 부처의 최우선 과제"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이들 플랫폼은 덤핑을 일삼고, 우리의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우리의 생태적 목표를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힘을 모아 스스로를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와 맥락 설명
– 컨세션 매장(Concession outlet): 백화점·대형마트 등 타 유통사 매장 내에 브랜드가 일정 면적을 임차해 직접 운영하는 입점 형태를 뜻한다. 판매·재고 관리 주체가 브랜드라는 점이 위탁 판매와 다르다.
– 온디맨드 생산(On-demand): 수요 기반 소량생산 후 반응에 따라 증산하는 방식이다. 재고 리스크를 줄이고 트렌드 대응 속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쉬인의 주장에는 노동·환경 비용 은폐 논란이 맞물려 있다.
– 150유로 관세 면제: EU 역외에서 들어오는 저가 국제우편·특송 화물에 대해 관세·부가세를 면제하거나 간소화해 주는 제도다. 전자상거래 급증으로 인해 세원 잠식·통관 리스크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 덤핑(Dumping): 통상 국내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해외에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경쟁을 해치고 내수 산업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덤핑 관세 등 무역 구제의 대상이 된다.
– Caisse des Dépôts: 프랑스의 대표적 공공 금융기관으로, 연기금·공공투자 운용을 통해 공익적 사업을 지원한다. 투자 결정 시 지역성·책임경영 등 비재무적 가치도 고려한다.
기자 분석: 규제·평판·오프라인 전략의 삼각전
첫째, 규제 리스크는 쉬인의 가격 경쟁력과 직결된다. EU 차원의 관세 면제 축소·폐지가 이뤄질 경우, 쉬인의 핵심 가치인 "초저가·초신속"이라는 공식은 비용 상승으로 구조적 시험대에 오른다. 프랑스가 EU 공동 보조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관성을 감안하면 역류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둘째, 평판 리스크가 정책 리스크를 증폭한다. 아동 유사 인형 판매 사례, 개인정보 처리 위반, 허위 할인 등은 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해 규제의 속도를 높인다. 브랜드 이탈(20개+), 행사 취소, 노동자 시위는 민간 영역에서도 사회적 비용을 만들고 있다.
셋째, 오프라인 상설 매장은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라 로비의 레버리지로 읽힌다. 쉬인은 고용(200명)과 집객(디종 2.7만명)을 내세워 "지역경제 기여" 서사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나 브랜드 이탈과 파트너 제명이 동시에 일어나면, 긍정 효과를 상쇄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넷째, 프랑스 내 여야 초당적 합의 수준의 감시 공감대는 쉬인에 불리하다. 세르주 파팽 장관의 발언처럼, 거리 상권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분위기에서 규제 완화는 정치적으로 설 자리가 좁다. 향후 광고 금지 및 판매 당 벌칙이 현실화될 경우, 쉬인의 마케팅·재고 회전 모델은 대폭 재설계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쉬인의 프랑스 상설 매장 출점은 시장 테스트이자 정치 테스트다. 단기적으로는 집객과 화제성으로 상권 활성화를 입증하려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도 환경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법제화의 속도와 EU 차원의 관세·통관 재설계가 향후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들 플랫폼은 덤핑을 일삼고,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며, 우리의 생태적 야망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힘을 모아 스스로를 지킬 것이다." — 세르주 파팽 프랑스 상공·중소기업 담당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