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핵폭탄 옵션’ 요구에도 공화당, 상원 필리버스터 유지 입장 고수

워싱턴 D.C.—미국 의회 공화당 지도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경한 ‘핵폭탄 옵션(Nuclear Option)’ 요구에도 불구하고 상원의 필리버스터 규칙을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25년 10월 3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지금이야말로 공화당이 ‘트럼프 카드’를 꺼내 필리버스터를 당장 없애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존 튠(John Thune) 의원과 대다수 공화당 의원은 수년간 필리버스터를 ‘성급한 다수결 폭주를 막는 안전장치’로 간주해 왔다. 튠 의원실 대변인은 트럼프의 요구 직후 “의원의 입장은 변함없다”는 짧은 성명을 내놓았다.

필리버스터’란 상원 100석 가운데 60표 이상의 찬성표(절대 다수)를 얻어야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도록 한 절차적 규칙을 뜻한다. 다수당이 51석을 확보하더라도 60석 지지선이 충족되지 않으면 법안 표결 자체가 불가능해, 양당 협상과 타협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미국 의회의 고유한 견제 장치로 평가된다.


“필리버스터 덕분에 우리는 상원에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권력은 바뀌어도 원칙은 바뀌어선 안 된다.” — 존 커티스(John Curtis) 상원의원, X 게시물 중

유타주 출신 공화당 존 커티스 의원은 31일 직접 SNS에 글을 올려 “필리버스터 폐지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트럼프 요구를 일축했다. 커티스 의원은 “권력이 교체되더라도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 100석 중 53석을 보유해 법안 처리를 위해 최소 7명의 민주당 또는 무소속 의원 지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0월 1일 연방 정부 일부 부처가 폐쇄(셧다운)된 이후 실시된 일련의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3명만이 정부 자금 지원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원 의장이자 공화당 지도부인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의원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필리버스터는 오랫동안 중요한 안전장치로 여겨져 왔다”며 “반대로 우리가 소수당이 될 때 해당 규칙이 없어진다면 그 결과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 의장은 트럼프 발언을 “셧다운 사태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해석하면서도 폐지에는 선을 그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왜 ‘핵폭탄 옵션’이라 불리는 규칙 폐지를 주장할까? ‘핵폭탄 옵션’이란 단순 과반(51표)만으로도 합법적으로 필리버스터 규칙을 변경해 버리는 절차를 말한다. 이 절차가 발동되면 소수당의 합법적 지연·저지 수단이 사라져, 집권당이 입법 과정을 신속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권 교체 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양당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셧다운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

민주당은 연방정부 재개 전 미국인들에게 민간 보험 구매를 지원하는 세액공제 연장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정부 문을 먼저 열고 나서 협상에 나서자”는 입장을 고수해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이다.

대치가 이어지면서 4,2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저소득층은 11월 1일부터 식품 지원 프로그램(SNAP, 일명 푸드스탬프) 혜택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또한 예산 만료 이후 75만 명의 연방 공무원이 무급휴직 상태에 놓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병력·국경수비 등 핵심 인력 급여 지급은 유지했지만, 상당수 공무원은 급여 없이 ‘필수 인력’으로 근무 중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번 셧다운이 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2% 끌어내리고, 70억~14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추산했다.


필리버스터 이해 돕기

한국 독자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는 우리 국회에서도 ‘무제한 토론’ 제도로 존재하지만, 미국 상원은 표결 절차 진입 자체를 차단해 법안 진행을 전면 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강력하다. 반면 한국 국회의 필리버스터는 최장 4일 제한이 있어 자동 종결되는 구조다. 따라서 미국에서 필리버스터 폐지는 입법 권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 사안으로 취급된다.

의회 전문가들은 “단순 과반으로 규칙을 바꾸면 여야 관계가 양극화돼 향후 소수당 권리 보호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실제로 민주당은 조 바이든 행정부 초기 하원과 상원을 모두 장악했던 2021~2022년에도 필리버스터 폐지를 추진했지만, 당내 조 맨친·커스틴 시네마 의원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번 사태 역시 공화당 내부 결속이 유지되는 한 필리버스터 폐지는 요원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일부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의회 운영 원칙을 흔드는 극약 처방까지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론적으로, 상원 지형과 여야 대치 구도, 그리고 중장기적 정치 리스크를 종합할 때 공화당이 트럼프 요구를 수용해 필리버스터를 철폐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평가가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