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약세와 지정학적 긴장 완화 조짐이 포착되면서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다. 로이터가 실시한 최신 설문에 따르면, 시장 참가자들은 대부분의 아시아 신흥국 통화에 대한 매도(숏) 포지션을 축소했으며, 특히 필리핀 페소와 말레이시아 링깃에 대한 강세(롱) 베팅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25년 10월 3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페소에 대한 강세 포지션은 2024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동시에 말레이시아 링깃에 대한 낙관론도 4월 중순 이후 꾸준히 강화되고 있어 달러 약세 구간의 최대 수혜 통화로 꼽힌다.
링깃은 달러 약세와 더불어 완화적(비둘기파) 미국 통화정책 기대에 힘입어 탄력을 받고 있다. 원자재 및 공급망과 연계된 통화가 통상적으로 금리 인하기에 강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통화가 당분간 비교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중국 위안화·미중 정상 회담 기대감
중국 위안화에 대한 롱 포지션 역시 9월 중순 이후 최고치로 올라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부산에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대면 회담을 갖는다는 일정이 투자 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시장은 이 만남을
“무역 관계의 전환점이자 아시아 수출 전망을 가늠할 핵심 변수”
로 해석한다.
싱가포르은행(OCBC) 크리스토퍼 웡 외환 전략가는 “우리는 한국 원화, 말레이시아 링깃, 중국 위안화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대만 달러는 역내 통화 대비 부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최근 중국 당국이 유도하는 위안화 절상 흐름은 의도적이며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원화·자동차 관세 완화
한국 원화에 대한 숏 포지션은 소폭 감소했다. 대부분의 설문 응답은 미·한 간 새로운 무역 합의가 공식화되기 전에 제출됐으나, 이후 발표된 관세 인하(25%→15%) 및 대규모 투자 약속이 수출 안정성과 통화 지지에 대한 기대를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웡 전략가는 “미국산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가 10%p 인하되면서 한국 완성차 업체들이 일본·유럽 경쟁사와 동등한 출발선에 서게 됐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달러는 소폭의 강세 전환 조짐을 보였으나, 대만 달러에 대한 숏 포지션은 미미하게 늘었다. 애널리스트들은 회계 기준 변경 이슈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그 배경으로 지목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에 대한 공매도는 인도네시아은행(BI)이 기준금리 동결로 방어 태세를 공고히 하면서 소폭 줄었다. 최근 몇 주간 재정·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이 두드러졌으나, BI의 선제적 조처가 투자 심리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는 평가다.
인도 루피에 대한 숏 포지션은 10월 중순 이후 급격히 감소했지만 여전히 순매도 상태에 머물렀다. 태국 바트 역시 약세 베팅이 소폭 줄었으나, 4월 중순 이후 이어진 순매도 기조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미 연준의 0.25%p 인하 및 달러 지수 약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수요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이지만, 제롬 파월 의장은 미 연방정부 셧다운이 경제전망을 흐리게 한다며 “핵심 지표 확보가 어려울 경우 점진적으로 움직이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응답 대부분은 FOMC 결과 발표 전에 제출됐다. 그럼에도 달러 지수는 최근 10개월 중 단 2개월만 상승했으며, 올해 들어 9.6% 하락해 동남아 통화 전반의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설문 개요 및 수치
이번 아시아 통화 포지셔닝 설문은 중국 위안, 한국 원, 싱가포르 달러, 인도네시아 루피아, 대만 달러, 인도 루피, 필리핀 페소, 말레이시아 링깃, 태국 바트 등 9개 통화에 대한 순매수·순매도 심리를 평가했다. 로이터는 애널리스트와 자산운용사들의 현재 시장 포지션을 −3에서 +3 사이 점수로 계량화했으며, +3은 달러 강세(해당 통화 약세) 심리가 극대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해당 점수는 NDF(Non-Deliverable Forward·비인도 결제 선도환) 포지션까지 포함한다. NDF는 실물 결제 없이 차익만 정산하는 파생상품으로, 자본 규제가 엄격한 신흥국 통화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널리 활용된다.
설문 결과(2025년 10월 30일 기준)를 보면, USD/CNY −0.80, USD/KRW 1.52, USD/SGD −0.17, USD/IDR 1.11, USD/TWD 0.20, USD/INR 0.55, USD/MYR −0.35, USD/PHP 1.14, USD/THB −0.03 등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반적으로 달러 대비 아시아 통화에 대한 숏 포지션 축소 및 일부 통화의 롱 전환을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페소·링깃·위안화의 상대적 강세 전망과 함께, 대만 달러에 대한 신중론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변수
필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다수 애널리스트가 “미·중 무역 회담 결과와 미 연준의 추가 완화 기조가 연말 환율 방향성을 결정할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한 것을 확인했다. 만약 미·중 협상에서 관세 추가 인하나 공급망 안정화 조치가 도출된다면, 수출 지향형 통화가 추가 상승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험(특히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과 차이나 리스크가 여전히 잠재되어 있는 만큼, 통화 포지션 변동성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투자자들은 NDF·옵션 등 헤지 수단을 병행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총평하자면, 달러 약세 흐름과 정책 이벤트 완화로 인해 아시아 통화 전반은 당분간 탄력적일 전망이다. 다만, 연준의 추가 데이터 의존적 스탠스와 정치·무역 환경 변동성에 따라 국별 차별화 양상이 심화될 수 있어, 통화별 펀더멘털과 정책 대응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