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미국 지역은행 인수·합병(M&A) 시장을 다시 달구고 있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코메리카(Comerica)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피프스 서드 뱅코프(Fifth Third Bancorp)가 $109억 달러(약 14조6,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한 이번 거래는 남플로리다에 자리한 작은 헤지펀드 ‘홀드코 애셋 매니지먼트(HoldCo Asset Management)’가 촉발했다.
2025년 10월 2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규제가 까다로운 미국 은행업계는 전통적으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주요 무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홀드코가 올초 코메리카 경영진에 ‘매각을 검토하라’고 공개 압박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성공에 고무된 홀드코는 보스턴의 이스턴 뱅크셰어스(Eastern Bankshares)와 몬태나주의 퍼스트 인터스테이트(First Interstate)에도 동일한 요구를 던진 상태다.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는 기업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전략·배당·지배구조 개선 등을 강하게 요구해 주주가치 극대화를 노리는 투자자를 뜻한다. 국내에서는 ‘주주 행동주의’로 번역되며, 기업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도 한다.
1. M&A 친화적 환경과 은행들의 ‘몸집 키우기’ 욕구
업계 관계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자본 및 반독점 심사 요건이 완화되면서 은행권에 누적돼 있던 ‘인수합병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뱅크오브뉴욕멜론(BNY Mellon)이 올여름 $240억 달러 규모로 노던트러스트(Northern Trust) 인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사례, 이어서 헌팅턴 뱅크셰어스(Huntington Bancshares)가 7월에 스카이론 파이낸셜을, 10월 28일에는 캐던스 뱅크(Cadence Bank)를 $74억 달러에 연달아 사들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뮬레이션 딜(advisory) 분야 변호사 스벤 미키시(Sven Mickisch·심프슨 대처 & 바틀렛 파트너)는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행동주의 펀드가 회사 매각을 밀어붙일 ‘실행 가능한 옵션’도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2. 깨지기 쉬운 지방은행 ‘신뢰’… 신용리스크가 불붙이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 등이 돌연 파산하며 불거진 ‘2023 지역은행 위기’ 이후 투자자 신뢰는 여전히 취약하다. 최근에도 제퍼리스·자이온스 뱅코퍼·웨스턴 얼라이언스 등에서 수백억 원대 대손충당금이 발생하자 KBW 지역은행지수(Index) 는 10월 16일 하루에만 7% 급락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최고경영자(CEO)는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면 그 뒤에 더 숨어 있기 마련”이라며 잠재 손실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는 취약한 지방은행들이 대규모 손실을 흡수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이어진다. 자연히 행동주의 펀드가 지목한 은행들은 ‘매각 가능성’이라는 표적을 등에 달게 됐다.
3. 홀드코의 타깃 리스트와 각 은행의 대응
홀드코는 7월 53쪽 분량의 발표 자료에서 총 8곳의 은행을 공개 거론했다. 동북부의 이스턴 뱅크셰어스와 시티즌스 파이낸셜(Citizens Financial Group), 서부의 퍼스트 인터스테이트와 콜럼비아 뱅킹 시스템, 중서부의 키코프(KeyCorp)·캐피톨 페더럴 파이낸셜, 하와이의 센트럴 퍼시픽 파이낸셜 등을 포함한다.
이스턴 측은 “하버원 뱅크(HarborOne Bank) 인수 통합과 유기적 성장에 집중하고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추가 M&A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시티즌스·퍼스트 인터스테이트는 논평을 거절했고, 나머지 은행들은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앞서 1.8% 지분으로 코메리카를 흔든 홀드코 뿐 아니라 플로리다 소재 행동주의 펀드 PL캐피털도 10월 28일 중서부 지역 기반의 호라이즌 뱅코프(Horizon Bancorp)에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회사를 매각하라고 공개 요구했다.
4. ‘사령탑’의 자존심 vs. 주주가치…최종 열쇠는 CEO
거래 자문사 솔로몬 파트너스(Solomon Partners)의 타논 크럼펠먼(Tannon Krumpelman) 파트너는 “후계 구도, 경영진의 자존심, 성격이 초대형 은행 M&A의 핵심 변수“라며 “대부분 CEO는 ‘사자는 잡아먹는 동물’이지 ‘먹히는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관리 자산이 큰 지역은행 CEO들은 ‘공격적 인수’를 선호하며, 피인수될 경우 스스로 자리와 브랜드를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메리카 사례처럼, 숙련된 행동주의 펀드가 애널리스트·기관투자가를 결집시켜 ‘내부 저항’을 압도하면 경영진도 독자 노선을 고수하기 어렵다. 웰스파고의 유명 애널리스트 마이크 마요(Mike Mayo)가 코메리카의 실적 부진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대표적인 ‘외부 압박’ 사례다.
5. 기자 해설: 향후 파장은?
이번 딜은 지방은행 M&A의 ‘씬(thin)한 벽’을 사실상 허물어 버렸다. AUM 26억 달러 규모의 중형 행동주의 펀드가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자, 잠재적 타깃 은행들 역시 주가 하락 시 ‘매각 요구’가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안게 됐다. 과거에는 행동주의 펀드가 지역 소형은행에만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제 규제·시장 환경 변화로 몸집이 큰 은행도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됐다.
다만, 대손충당금 확대·상업용 부동산(CRE) 부실 등 복합 리스크가 계속 불거질 경우, 투자자 보호와 금융안정을 우려한 규제당국이 다시 ‘급브레이크’를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동주의 펀드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은행 체질 개선을 촉진할지, 아니면 추가 변동성을 불러올지는 시장 참여자들의 ‘향후 6개월 실적’이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행동주의 바람은 이미 시작됐다. 은행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M&A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 PL캐피털 프레젠테이션 중
결국, 주주가치 극대화와 지역경제·고객 서비스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사회와 CEO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은행 생태계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