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수·합병(M&A) 업계가 2025년 3분기 극명한 ‘양극화’를 경험했다. 총액 기준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높은 $1.26조(약 1,690조 원)를 기록했지만, 체결된 건수는 8,912건에 그치며 2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이는 Dealogic 데이터가 집계한 결과다.
2025년 9월 3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초대형 ‘메가딜’이 시장을 견인했으나, 소형·중형 거래가 급감하면서 건수 기반 통계는 크게 위축됐다.
3분기 평균 거래 규모는 $141.4 백만 달러로 전년 동기(85.5 백만 달러) 대비 65% 급증했다. 그러나 거래 건수는 전년 대비 16% 감소해 ‘역대 두 번째로 가치가 높으면서도, 가장 한산한 분기’라는 기묘한 기록을 남겼다.
“2분기까지만 해도 시장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지만, ‘리버레이션 데이(Liberation Day)’ 직후 급격히 달라졌다” – 네이빈 나타라지, 에버코어 미국 IB 공동대표
‘리버레이션 데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6월 초 돌연 단행한 고율 관세 부과 발표를 의미한다. 이 조치와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 규제 강화가 겹치며 2분기 증시는 변동성이 확대됐고, 많은 기업이 M&A·상장 계획을 미뤘다.
하지만 관세 환경이 점차 ‘예측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자 잠재 수요가 3분기부터 급속히 분출됐다. 주가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도 대형 딜 재개에 힘을 보태며, M&A 평균 사이즈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네이빈 나타라지 공동대표는 “시장 참가자들이 관세 지형이 결국 관리 가능한 수준에 안착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딜 실행 버튼을 다시 눌렀다”고 말했다.
IPO 시장도 살아났다. 4월에 철회됐던 스텁허브(StubHub) 8억 달러 및 클라르나(Klarna) 13억7,000만 달러 상장이 9월 초 재시동을 걸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럼에도 올해 전 세계 IPO는 987건, 총 115억 달러로 전년 대비 각각 24%·9% 감소한 상태다.
유럽에서도 대형·우량 기업 중심으로 공모가 재개되는 조짐이 뚜렷하다. 마틴 쏜이크로프트 모건스탠리 글로벌 ECM 공동대표는 “작년 9월 이후 시장이 잠잠했던 이유는, 대형 우량주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제 고품질 딜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에선 홍콩증권거래소(이하 HKEX)의 열기가 두드러진다. 9월 29일 중국 쯔진골드 인터내셔널의 32억 달러 IPO가 올해 세계 최대 규모로 등극했다. 올해 들어 홍콩에서만 230억 달러가 조달돼 전년 동기 대비 3배를 넘어섰다. 공화당이 미국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상장 폐지(디리스팅)하겠다고 압박한 점이 ‘자금 이동’을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리스크에 대한 인식 변화와 글로벌 자금의 ‘미국 탈중심화’ 흐름이 홍콩 상장을 선호하는 원인” – 제임스 왕, 골드만삭스 아시아(일본 제외) ECM 총괄
다만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가능성은 변수다. 의회 예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이르면 10월 1일부터 증권거래위원회(SEC) 직원이 휴직(furlough)에 들어갈 수 있다. 신규 상장 심사가 지연되면 IPO 일정이 줄줄이 늦춰질 수 있다.
J.P.모건 데이비드 바우어 미주 ECM 공동대표는 “IPO 백로그(대기 물량)는 견조하다”면서도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적정 가격 산정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AI, 3분기 ‘뜨거운 감자’
9월에는 규제 완화 수혜를 입은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 공모 시장의 ‘큰손’으로 나섰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피겨(Figure)는 9월 10일 상장에서 7억8,750만 달러를 조달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M&A 영역에서는 인공지능(AI) 키워드가 전방위 ‘핫템’이었다. 엔비디아(Nvidia)가 1,000억 달러 규모로 OpenAI에 투자한 초대형 사모 딜은 집계에서 제외됐지만, 사이버아크 소프트웨어가 7월 팔로알토 네트웍스를 245억 달러에 인수한 거래가 대표적이다. AI 기반 보안·인프라 기업이 ‘프리미엄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은 셈이다.
“산업을 막론하고 모든 고객사가 AI 전략을 M&A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 카밀라 파나마, 메이어브라운 파트너
그는 “4분기에도 금융·보험·일본 인바운드 및 아웃바운드 딜이 활발할 것”이라며 견조한 파이프라인을 예상했다.
‘스케일 업’ 추구, cross-border·메가딜 급증
국경간 거래는 전년 대비 44% 증가한 $9,310억 달러를 기록하며 2021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판단 아래, 5억 달러 미만 소형 딜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올해 들어 $100억 이상 대형 딜은 4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75% 늘어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7월 발표된 유니언 퍼시픽의 8.818억 달러 규모 노포크 서던 인수가 최대치였으며, 9월 말엔 전자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의 550억 달러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이 성사됐다.
기자 해설 – 전망과 리스크
시장 심리는 ‘위험 선호 회복’과 ‘정책 불확실성’이 교차한다. 초대형 거래 흐름이 지속될 경우 연간 M&A 총액이 2021년 사상 최고치(약 5조 달러)를 다시 위협할 잠재력이 있으나, 연준의 금리 경로와 무역정책이 최대 변수다. 투자은행(IB) 수수료 수익은 ‘질적 성장’에 힘입어 개선될 전망이지만, 거래 절차가 복잡해진 탓에 실사·규제 심사 리스크는 커졌다.
또한 AI·디지털 인프라·친환경(ESG) 분야 딜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이나, 밸류에이션 버블 논란도 병존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거래 구조·가격·규제 리스크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요약하면, 금액 기준 ‘호황’, 건수 기준 ‘침체’라는 3분기 실적은 2025년 글로벌 M&A 시장이 ‘감속과 가속’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잔여 4분기에는 IPO·크로스보더 딜·AI·금융·보험 섹터를 축으로 ‘빅딜 레이스’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치·규제 이슈가 언제든 급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