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2026년 국방 예산 소폭 감축 계획… 필요 시 증액 가능성 열어둬

【런던·모스크바】 러시아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6~2028년 연방예산(안)에 따르면, 2026회계연도 국방 지출이 소폭 감소할 전망이다. 그러나 기밀 유지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어 실제 집행 규모는 상‧하반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25년 9월 29일, 로이터 통신(Reuters)은 복수의 정부 관계자와 예산 자료를 인용해 “러시아가 2026년에 13조 루블(약 1,570억 달러)을 국방비로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차에 접어드는 시점의 예산안이다.

이 수치는 지난주 로이터가 입수했던 재무부 예비 문서에 기재된 12조6,000억 루블보다는 높지만, 올해 포스트소비에트 최대치로 기록된 13조5,000억 루블에는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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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종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출 목표가 낮아진 것은 의문”이라는 시장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 ‘84% 기밀’… 실제 집행 내역은 불투명

예산서에서 국방 지출의 84%‘전액 비공개’로 분류돼 있어, 세부 항목별 집행 규모와 타깃을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 예산 편성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은 “전투가 격화될 경우 언제든 추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며 “의회의 추경 절차 역시 신속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실제 군사 지출이 목표액을 초과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타 항목으로 ‘위장 계정화’돼 숨겨질 수 있다”고 전했다. 예컨대 2025년 실질 국방비는 전액 기밀로 묶였지만, 공개 자료에는 군산복합체 전담은행으로 알려진 PSB(프롬스비야즈방크)에 300억 루블의 추가 자본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안보·치안 예산까지 합치면 16조8,000억 루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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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정보기관 운영비 등 ‘국가안보’ 범주를 합산할 경우 2026년 국방‧안보 관련 총지출은 16조8,000억 루블로, 올해 17조 루블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체 예산 대비 비중은 작년 41%에서 38%로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는 약 7%에 해당한다.


■ 재원 마련책: 부가가치세(VAT) 인상 추진

러시아 재무부는 국방 재원을 충당하고 재정적자를 억제하기 위해 2026년 부가가치세(VAT) 세율을 20%에서 22%로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VAT는 재화·서비스에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간접세로, 소비 단계에서 징수되기 때문에 세수 확보 효과가 크다. 의회(하원)는 10월 22일부터 예산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 참고 용어 해설
루블(Rouble) : 러시아 연방의 법정통화로, 기사 작성 시점 환율은 1달러 = 82.8705루블이다.
VAT(Value-Added Tax) : 생산·유통 각 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에 부과되는 세금.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유사하나 세율·공제 방식은 국가별로 다르다.


■ 시장 및 정책적 함의

전문가들은 “국방비가 사실상 ‘자동 조정 변수’로 작용하는 구조”라며 “전쟁 장기화에 따라 예산의 상한선이 언제든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2022년 이후 급격히 확장된 국방‧안보 지출이 러시아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주목된다. 특히 재정 건전성 지표인 재정적자·국가부채·통화가치의 변동 폭이 커질 경우, 외환시장과 글로벌 원자재 시장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러시아 의회가 VAT 인상을 승인하면 내수 물가에 상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소비세 부담 전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가계 구매력·기업 투자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세수 확충 효과가 국방 재정 안정화로 연결될 경우, 루블화 변동성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 결론

러시아 예산안은 국방비 감축이라는 형식적 수치를 제시했으나, 고도의 기밀 유지와 유연한 추경 메커니즘을 통해 사실상 ‘무제한 증액’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 서방의 제재 강도, 국제 유가 흐름 등이 앞으로도 러시아 국방‧재정 정책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