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향수 업계가 5년째 이어진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증권은 스페인의 푸이그(Puig Brands SA)와 프랑스·미국 합작사 인터파퓸(Interparfums SA)에 대한 투자의견을 각각 ‘매수(Buy)’에서 ‘중립(Neutral)’로, ‘중립(Neutral)’에서 ‘언더퍼폼(Underperform)’으로 강등했다.
2025년 9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BoA는 향수 카테고리 성장률 둔화, 소매업체 재고 축소(디스토킹), 수출 감소, 출시 예정 신제품 감소 등을 근거로 들면서 두 기업의 목표주가도 각각 18유로에서 15유로, 35유로에서 25유로로 하향 조정했다.
① BoA의 구체적 진단
BoA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향수 슈퍼사이클은 통상 5~6년 지속되는데, 현재 사이클이 5년 차에 접어들며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향후 3개 분기 동안 푸이그의 매출 성장률이 둔화되고, 2025~2027년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도 컨센서스 대비 5~8% 하회할 것으로 봤다. 2026년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4배로, EPS 연평균성장률(CAGR) 6% 전망치에 비하면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인터파퓸의 경우 2027년 전까지 대형 신제품 출시가 거의 없어 2024~2027년 매출 CAGR이 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BoA는 마케팅·프로모션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률이 240bp(2.4%p) 떨어지고, EPS 추정치도 컨센서스보다 4~14% 낮을 것으로 예측했다.
② 글로벌 수요 흐름
푸이그 회장이자 CEO인 마르크 푸이그는 2025년 상반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상반기 향수 카테고리 전체 성장률은 중간 한 자릿수(midsingle-digit)로 추정되며, 최근 몇 달 동안 이마저 둔화됐다”면서 “하반기에는 저(低) 한 자릿수(low-single-digit)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향수 수출국인 프랑스의 3분기 누적 향수 수출은 전년 대비 3% 감소했으며, 2분기에도 2% 줄었다. 2019년 대비 성장률 역시 2분기 116%에서 3분기 35%로 급격히 둔화됐다.
유럽 소비 침체도 뚜렷하다. 에스티로더의 사장 겸 CEO 스테판 드 라 파베리는
“대륙 유럽, 특히 북유럽(프랑스·독일·영국)의 소비 둔화가 급격하다. 소비자 신뢰지수도 매우 낮은 수준”
이라고 밝혔다. 유럽 최대 화장품 리테일러 더글라스의 CEO 산더 판 데어란 역시 “프랑스 매장이 실적 하락을 주도했다”며 시장 부진을 인정했다.
③ 용어·지표 해설*
디스토킹(destocking)은 유통·소매업체가 과잉 재고를 정상 수준으로 줄이는 과정이다. 소비 둔화 국면에서는 주문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제조사의 단기 실적을 압박한다.
CAGR(Compound Annual Growth Rate)은 일정 기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을 뜻하며, 기업 실적의 추세를 파악할 때 쓰인다.
PER(Price-Earnings Ratio)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투자자는 이를 통해 주식의 상대적 고평·저평가 여부를 판단한다.
④ 기자 관점: 향수 ‘슈퍼사이클’의 기로
2020년 이후 팬데믹 회복 국면에서 뷰티·향수 카테고리는 미국·중국·중동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고성장을 누렸다. 그러나 글로벌 긴축과 실질 구매력 하락이 맞물리면서 고가 향수 소비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재고 조정→프로모션 강화→마진 축소라는 전형적 악순환이 이미 유럽 시장에서 포착되고 있다. BoA가 목표가를 낮춘 것도 이러한 ‘정상화’ 리스크를 정량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아시아·중동의 초프리미엄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점에서, 업계 전반이 급락보다는 성장률 둔화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투자자는 ①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 가격 경쟁력, ②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 ③ 디지털 채널 전환 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⑤ 전망과 과제
BoA는 “푸이그와 인터파퓸 모두 유럽 노출도가 높아 시장 정상화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향수 신제품 수가 3분기 현재 34% 감소해 리테일러들이 재고 축소에 나설 여지가 더 크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언급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2026년까지 ‘선별적 M&A’와 ‘니치 브랜드 편입’을 통해 성장 동력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결론적으로, 5년간 이어진 향수 호황은 ‘느린 성장의 시대’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정 기업보다는 글로벌 분산 포트폴리오와 일본·동남아 소비 회복 등 구조적 테마에 주목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