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붐이 미국 거대 기술기업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그 직접적 경제 파급효과는 시장에서 흔히 거론되는 것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25년 9월 26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분석 기관 BCA 리서치는 최신 보고서에서 “AI 설비투자(Capex)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기여도는 과장돼 있으며, 실제 규모는 기술 대기업들이 발표한 숫자보다 훨씬 낮다”고 평가했다.
BCA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Meta), 전자상거래 공룡 아마존(Amazon),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s)’의 설비투자 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기업은 AI 모델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며 신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의 연간 설비투자 규모는 2000년 닷컴버블 당시 미국 통신사(브로드밴드) 투자비율이 GDP 대비 1.1%에 달했던 수준에 근접해가고 있다. BCA는 “지금 추세가 유지될 경우 AI 관련 설비투자 비중이 20여 년 전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숫자로 본 AI 투자 흐름※출처: FactSet·McKinsey
시장조사기관 팩트셋(FactSet)은 메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뿐 아니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오라클(Oracle) 등 ‘빅5’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가 향후 12개월 동안 4,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분기 기록인 3,000억 달러보다 30% 넘게 증가한 수치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도 별도 보고서에서 2023~2030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분야에 5조 2,000억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맥킨지는 “AI 연산 수요 급증이 투자 대부분을 견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입 의존도’가 거시적 파급력을 제한
BCA 애널리스트들은 그러나 “미국 내 AI 설비투자가 언뜻 보기에는 거대하지만, 실제 GDP에 미치는 영향은 ‘수입 부품’ 비중 때문에 희석된다”고 지적했다. 즉, AI 서버·GPU(그래픽처리장치) 등 핵심 장비 다수가 해외에서 조달되면서 미국 국내 생산·고용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이후 이어진 ‘제조업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의 국내 회귀)’ 정책이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도 있지만, BCA는 “이 과정이 본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식시장의 과열?—33%를 차지한 AI 빅테크
BCA는 “거시 지표에 앞서 주식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S&P500 지수에서 AI 대표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3%다. BCA는 “2000년 닷컴버블 당시처럼 실물투자 정점 이전에 주가가 선반영돼 고점을 찍고 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BCA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FCF)이 최근 꺾이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보고서는 “FCF가 가파르게 악화될 경우 AI 설비투자 붐이 막을 내릴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용어 풀이: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
‘하이퍼스케일러’란 자체 데이터센터를 전 세계에 수백 개 이상 운영하며, 클라우드·AI·검색·소셜미디어 등 초대형 서비스를 확장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기업을 가리킨다. 대규모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자 해설 및 전망
AI가 촉발한 설비투자 증가는 기술혁신을 가속하는 동시에, 세계 반도체·서버 공급망의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아직 공고하지 않다는 BCA의 경고는 투자자들에게 ‘증시와 실물 간 괴리’ 위험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미국 내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상당수가 해외 부품·장비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제조업·고용으로 이어지는 낙수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게다가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 문제도 본격 논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AI 인프라 확장에 따른 환경·규제 리스크가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향후 AI 설비투자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다변화·친환경 인프라·인재 양성 등 구조적 과제가 병행돼야 한다. 투자자 역시 단기 주가 변동성보다 현금흐름·설비투자 효율·수익 모델 등 기초체력에 기반한 장기적 관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은 종종 경제보다 먼저 움직인다. AI 열풍이 길게 이어지려면 설비투자의 실질적 생산성 제고가 전제돼야 한다.” — BCA 리서치 보고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