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휴 필, “인플레이션 상방 위험 완화돼 한층 안도”

[런던] 영란은행(Bank of England·BoE)의 수석이코노미스트 휴 필(Huw Pill)이 영국 물가에 대한 상방 위험이 지난해보다 완화됐다고 평가하며 통화당국 내부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 인사로서도 한층 여유를 보였다.

2025년 9월 23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필 수석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Pictet Research Institute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위험 균형은 항상 문제지만, 그동안 나는 인플레이션 쪽에 무게를 더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면서도 “최근 금융시장의 재가격 조정을 고려하면 지금은 6·9·12개월 전보다 훨씬 편안한(comfortable) 상황”이라고 밝혔다.

필 수석은 이어 “나는 늘 인플레이션 위험이 디스인플레이션(물가 하락) 위험보다 크다고 봐 왔으나, 시간의 경과와 시장의 반영을 통해 그 균형이 달라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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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위원회(MPC) 의결 내역에 따르면 그는 2025년 9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4%로 동결하는 데 다수 의견과 함께했으나, 8월 및 5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에 반대하며 ‘매파’ 이미지를 굳혔다.

영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연 3.8%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았다. BoE는 9월 CPI가 4%까지 정점을 찍은 뒤 장기간 둔화해 2027년 봄에야 목표치(2%)에 복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OECD의 수정 전망도 물가 부담을 재확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같은 날 보고서에서 2025년 영국 물가 전망치를 종전 3.1%에서 3.5%로, 2026년 전망치를 2.6%에서 2.7%로 상향했다.

필 수석은 영국 물가의 구조적 요인으로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 재편지연, 브렉시트, 이민정책 변화 등을 꼽았다. 그는 “최근에는 기업에 대한 세율 인상도 비용 전가(cost‐pass‐through)를 통해 가격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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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

통화정책의 과제는 다양한 위험을 인식하고 그 위험을 반영해 정책을 설정하는 것

”이라며 “한 가지 위험만 본다면 정책이 특정 방향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산축소(QT) 속도 논쟁에서도 필 수석은 보수적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주 국채 보유잔액 축소 속도를 늦추자는 제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BoE는 팬데믹 시절 양적완화(QE)로 쌓은 국채 포트폴리오를 양적긴축(QT)을 통해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그는 “QE 포트폴리오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시장 기능이 다른 위원들이 우려하는 만큼 취약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시장 변동성을 관리할 다른 정책 수단도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용어 해설*양적완화(QE)는 중앙은행이 국채 등 자산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비전통적 완화정책이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확대된다. 반대로 양적긴축(QT)은 만기가 돌아온 자산을 재매입하지 않거나 매각해 보유잔액을 줄이는 정책으로, 통화 긴축 효과를 낸다.

전문가 관전포인트 — 현재 BoE의 핵심 딜레마는 경착륙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물가 목표 회복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다. 필 수석의 미묘한 태도 변화는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근접했다는 판단과 맞물려 향후 ‘장기 고금리’ 유지 전략이 수정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노동공급 부족과 브렉시트 후유증 등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물가 경로의 상단을 지지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2026년까지 2%대 중후반의 만성적 물가 압력이 이어질 경우 BoE가 금리를 현 수준에서 오래 유지하거나, QT 속도를 가속화해 통화긴축의 총효과를 높이는 방안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대로 실물경기 둔화 징후가 확대되면 위원회 내 온건파가 금리 인하 쪽으로 무게를 옮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