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석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
■ 들어가며 ― 왜 ‘프라이빗 크레딧’을 주목해야 하는가
2025년 9월 유럽 최대 보험그룹 알리안츠의 올리버 베테(Oliver Bäte) 최고경영자가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을 두고 “통제되지 않은 카지노”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같은 자리에서 프랑스 크레디 아그리콜, 영국 아비바, 네덜란드 ING 등 유럽계 대형 금융사 수장들도 한목소리로 “시스템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자발적으로 ‘붉은 깃발’을 흔든 셈이다.
미국 사모대출 잔고는 2015년 6,000억 달러에서 2025년 1조8,000억 달러, 연복합성장률(CAGR) 12.5%를 기록하며 전통 은행 대출 성장률(동기간 CAGR 3.2%)을 4배 이상 웃돌았다. 블룸버그와 프레퀸(Preqin)의 합산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연기금·보험·엔다우먼트의 사모대출 익스포저 비중은 2010년 3%에서 2024년 11%로 급등했다. “은행 대신 펀드에 손을 내미는 중견·중소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본 칼럼은 ▲사모대출 시장이 팽창하게 된 거시·제도적 배경 ▲자본·규제 구조가 은행권과 어떻게 다른지 ▲파생적 리스크가 주식·채권·부동산 등 실물·금융 전 영역에 어떻게 파급될지 ▲향후 1~3년 미국 투자자·기업·정책당국이 직면할 시나리오를 장기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사모대출이 2020년대 후반 미국 금융시장의 최대 복합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Ⅰ. 사모대출 시장의 기하급수적 성장 배경
1) 초저금리·규제 강화·은행 공급 공백의 삼중 효과
- 초저금리와 유동성 잔치(2010~2021) — 글로벌 금융위기(GFC) 이후 연준·ECB 등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Zero Lower Bound) 수준으로 유지, 수익률 곡선이 평탄화되자 기관투자가들은 더 높은 쿠폰을 찾아 사모대출 펀드로 눈을 돌림.
- 바젤 III·Dodd-Frank 규제 — 대형 은행은 자본비율 규정이 강화돼 레버리지론 발행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중견기업(EBITDA 3,000만달러 미만) 대출공백이 발생.
- 펀드 구조 혁신 — 블랙스톤(BX), 아레스(ARES), 아폴로(APO) 등 대체자산 운용사(Private Credit Manager)가 CLO 스킬·부동산 저당권(CMBS) 구조 경험을 사모대출에 이식하며 low documentation-high spread 상품을 대량 공급.
2) 회복 탄력적 수요 — SME·테크 유니콘의 ‘은행 회피’
IPO·SPAC 창구가 닫히자 스타트업·유니콘·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 법인은 “은행 서류 작업 6개월 vs. 사모대출 6주”를 비교, 평균 150~300bp 더 높은 이자를 감수하더라도 사모대출을 택했다. BCG 추정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사모대출 신규 실행액의 37%가 소프트웨어·IT·헬스케어 분야였다.
3) 기관투자가의 수익률 압박
자산군 | 10년 CAGR(%) | 2024~2028 예상 CAGR(%) |
---|---|---|
미 국채 10Y | 2.5 | 3.0 |
S&P 500 EPS | 7.1 | 6.8 |
미 하이일드채 | 4.4 | 4.9 |
사모대출(1st Lien) | 8.2 | 8.5 |
*BCG·Preqin 데이터 재가공. CAGR = 연복합수익률.
위 표가 보여주듯 수익률 격차는 기관투자가를 사모대출 팔로우 더 리더(follow the leader) 전략으로 몰아넣는다. 연기금 ALM 모델에서 할인율이 6%로 상향된 상황에서 8%대 고정수익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Ⅱ. 사모대출 vs. 은행 레버리지론 — 구조적 차이
1) 자본·유동성·공개 의무
- 은행: 자기자본 비율(BIS)·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규정 적용. — 위기 시 LCR 95% 이상 유지 위반 시 배당 중단.
- 사모대출펀드: SEC 레벨 전면 공시 의무 없음.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는 GP(운용사) 재량. LP(기관투자가)의 자발적 리미티드 파트너 리포트에 의존.
2) 위험 전가 메커니즘
은행은 예금보험·대차대조표 상 트랜치 구조를 통해 손실을 흡수하지만, 사모대출 펀드는 페이-인-카인드(PIK) 이자, 커브아웃(carve-out) 조항을 삽입, 손실을 차등적으로 LP·SPV 투자자에게 전가한다. 위험의 시스템적 추적(traceability)이 훨씬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3) 거래 구조 비교 — 예시 다이어그램
Ⅲ. 장기 리스크 시나리오: 2025~2028
시나리오 1 — 연착륙 + 규제 완화
미 경제가 2024년 이후 2%대 성장·2%대 물가로 소프트랜딩 할 경우, 은행 RWA(위험가중자산) 요건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① 기관투자가의 사모대출 익스포저 확대 ② 차입기업의 금리 3M SOFR + 600bp 지속 —> 레버리지 부담 누적. 재투자 위험이 증가해, 2027년 리파이낸싱 산(Refi Wall)이 도래할 때 디폴트율이 4% 이상으로 뛸 가능성.
시나리오 2 — 경착륙 + 규제 공백
경기 침체로 EBITDA 마진이 300bp 하락, DSCR(부채상환커버리지비율) 하락 → 사모대출 차입사 중 20%가 대규모 채무 재조정 필요. 은행은 LP 출자·대출·리볼빙 크레딧라인을 통해 간접 익스포저를 안고 있어, 양적 크레딧 스프레드 120bp 급등 가능. 하이일드 ETF(예: HYG) NAV 24% 조정 —> 주식·부동산 자산 디레버리징 촉발.
시나리오 3 — 연준·FDIC·SEC 합동 규제 + 시장 신뢰 회복
2026년 상반기, 연준·FDIC·SEC가 사모대출 공시·유동성 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 펀드 레버리지 5배 상한·LP 공개 양식 Form PF 확대·분기별 스트레스 테스트 의무화. 단기적으로는 CLO AAA 트랜치 스프레드 20bp 상승, 장기적으로는 투명성 회복으로 프리미엄 축소. —> 사모대출 AUM 성장률 12% → 6%로 둔화.
Ⅳ. 실증 데이터: 부도·복구율, 유동성, 변동성
1) 사모대출 vs 하이일드 부도율
무디스 2025년 2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의 12개월 누적 부도율은 2.2%, 하이일드 채권은 3.1%. 표면상 더 낮지만, 사모대출은 ‘수정구조(restructuring)’ 단계에서 파생 SPV로 이동하며 공식 집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부도가 최대 90bp 추정.
2) 회수율(Recovery Rate) 디커플링
자산군 | 2010~2014 평균 | 2015~2019 평균 | 2020~2024 평균 |
---|---|---|---|
하이일드채 | 43% | 38% | 35% |
레버리지론 | 57% | 53% | 49% |
사모대출 | — | — | 42%* (추정) |
*피치레이팅스·Ellington Data 추정치, SPV 매각·담보 매각 회수 포함
3) 유동성 지표: 세컨더리 NAV 디스카운트
포지 글로벌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세컨더리 시장에서 거래된 사모대출 펀드 NAV 평균 할인율은 15%. 2020년 코로나 충격시는 32%까지 확대된 바 있다. 유동성 경색 구간이 재현될 경우 NAV 디스카운트 확대 → 보험·연기금 중간평가(Mark-to-Model) 손실 → 언리얼라이즈드 손실 확대.
Ⅴ. 미국 주식·경제에 미칠 장기 파급효과
1) 크레딧 스프레드→CAPEX→GDP 루트
사모대출 차입사의 평균 이자보상배율(ICR)은 2021년 4.8배에서 2024년 3.1배로 하락했다. 골드만삭스 모델은 ICR 1배 하락 시 총 CAPEX 증가율이 0.4%p 둔화한다고 가정한다. 이를 2025~2027년 전미경제 분석국(NBER) 산업별 행렬에 대입하면 실질 GDP 성장률 0.15~0.20%p 하방 압력이 추산된다.
2) 대형 은행·자산운용사 실적 중립? — 오해와 진실
Citi 리서치는 “사모대출 대출채권을 은행이 ‘오프밸런스’로 보유한 경우가 많아 부실 전이 위험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UBS 는 대형 은행 11곳의 사모대출 간접 익스포저(펀드 LP, 파이프라인 대출 등)를 총 4,900억 달러로 집계, 은행 RWA 2.3%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즉 은행 Tier-1 자본 1%포인트 손실을 유발할 임계점이 존재한다.
3) 대체자산 운용사의 IPO·재상장 불확실성
블랙스톤·아레스·KKR 등은 PE · 부동산·사모대출을 ‘원-스톱 패키지’로 제공해 수수료 기반 수익을 극대화해 왔다. 사모대출 리스크가 가시화되면 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항공기 ABS 등 인접 자산에도 부정적 프리미엄이 반영, 주가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평균 EV/EBITDA 1~2배 축소될 수 있다.
Ⅵ. 정책·규제 로드맵: 미국·유럽 비교
미국
- SEC Form PF 개정안(2025.6) — 사모펀드 15억 달러 이상 운용사는 60일 이내 파이낸싱·레버리지·NAV 변동 공시.
- FSOC (금융안정감독위원회) 2026년 보고서 — 사모대출 펀드 레버리지 한도 권고안, 은행 위험가중치(new SCC bucket) 초안.
- FDIC/LCR 시뮬레이션 — 은행이 사모대출펀드 LP 출자를 High Quality Liquid Assets(HQLA) 0%로 분류하도록 검토.
유럽
- ECB ‘칼리브레이션 리뷰’ — 사모대출을 포함한 ‘논은행 금융기관’ 스트레스 시나리오 최초 적용(2026 시행 예정).
- EIOPA(유럽보험감독청) — 보험사 Solvency II 규정에 사모대출 리스크 가중계수 상향 검토.
Ⅶ. 투자 전략: 포트폴리오 주요 체크리스트
- 사모대출 익스포저 레이어링 — 연기금·보험·멀티매니저 펀드라면 직접 LP + 펀드오브펀드(FoF) + 리볼빙 대출 세 겹 구조를 파악하라.
- 리파이낸싱 타임라인 맵핑 — 차입 기업별 DSCR, 금리 CAP 만료 시점, 콜옵션 프리미엄을 엑셀 Gantt 차트로 시각화.
- 세컨더리 매입 절차 — 비상매도율(distressed sale discount)이 20%를 넘어서면 매입 매력↑, 다만 NAV 마크다운 후속 리스크를 감안해 투자 시퀀스를 3회 분할.
- 은행·보험 소형주 필터링 — Tier-1 자본비율 11% 미만, 사모대출 익스포저 5% 이상인 지역 은행은 은행주 ETF (예: KRE)내 비중 축소.
- E&P · 소프트웨어 중견주 — 사모대출 차입 의존도가 40% 이상인 기업은 금리 민감도 베타를 재조정해 밸류에이션 접근.
Ⅷ. 결론 — “규제 사각의 그림자 은행, 타이머가 작동한다”
사모대출 시장은 15년 동안 은행 규제 강화와 저금리 환경의 틈새를 파고들어 급팽창해 왔다. 오늘날 그 규모는 미국 하이일드 채권 시장(1조3천억 달러)을 넘어서는 ‘제2의 신용 시스템’으로까지 평가된다. 그러나 자본·유동성·공시 규제가 은행권 대비 현저히 느슨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위험이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교훈을 상기시킨다.
SEC·FSOC 등 감독 당국이 뒤늦게 규제 프레임을 설계 중이지만, 전면 시행은 빨라야 2026년이다. 그 사이 연 4,100억 달러에 달하는 REFI WALL이 도래한다. 미국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한다 해도, 레버리지·유동성·투명성 갭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르는 시점을 피하기 어렵다.
투자자·정책당국·차입 기업 모두 “시간이 많지 않다”. 연착륙 시나리오 아래에서도 디폴트율 4% 돌파가 예상되고, 경착륙・규제 공백이 겹치면 6~7%까지 치솟을 수 있다. 사모대출 생태계는 파편화된 소유 구조 탓에 위험의 최종 보유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다. 이 지점이 바로 다음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본 칼럼은 ▲투명성 강화(분기 보고 의무화) ▲레버리지 한도(펀드 5배, 차입기업 EBITDA 7배 이하) ▲은행 LP 출자 RWA 적용 등 ‘세이프티 밸브’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한다. 동시에 투자자는 펀더멘털·듀레이션 미스매치·유동성 리스크를 다층적으로 점검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는 “섀도우 뱅킹 스트레스 테스트”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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