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혁신’인가 ‘무규제 카지노’인가 — 1조8천억 달러 섀도 뱅킹의 구조적 리스크와 한국 자본시장에 미칠 장기 파장

이중석의 마켓 인사이트 · 2025년 9월 23일


Ⅰ. 문제 제기 ― 사모대출이 던진 거대한 질문

세계 금융권이 새로운 ‘달콤한 과실’로 떠받드는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이 2025년 2분기 말 기준 1조8천억 달러를 돌파했다. 2014년 5천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장이 10년 만에 세 배 이상 커진 셈이다. 독일 알리안츠의 올리버 베테 CEO는 이를 두고 “규제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카지노”라고 직격했다. 그의 발언이 과장된 수사인지, 아니면 2008년 금융위기를 연상케 하는 적색 경보인지는 한국 투자자에게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본 칼럼은 ① 사모대출이 무엇이며 왜 급성장했는지를 해부하고, ② 시스템적 위험 요인을 데이터로 검증하며, ③ 규제·시장·투자 측면에서 예상되는 장기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끝으로 ④ 한국 금융·연기금·개인 투자자가 취해야 할 전략적 대응 방안을 제언한다.

주목

Ⅱ. 사모대출, 어디서 출발했고 어떻게 진화했나

1) 정의와 구조

사모대출이란 은행이 아니라 사모펀드·자산운용사·보험사가 직접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고, 그 채권을 펀드 지분 형태로 기관투자가에게 매각하는 구조다. 차입 기업은 대개 EBITDA 1억 달러 이하의 중견·비상장사가 많고, 담보는 자산·현금흐름·지분이 혼합된다. 금리는 SOFR+650~900bp, 내부수익률(IRR)은 10~14%로 전통 은행대출 대비 200bp가량 높다.

2) 성장 동력

  • 은행 규제 강화 — 바젤Ⅲ, 스트레스 테스트 등으로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 비용이 상승하면서 중소기업 대출이 축소됐다.
  • 저금리와 사모펀드 드라이파우더 확대 — 2010년대 후반 ‘돈 잔치’ 기간 중 연기금·보험 자금이 수익률 갈증을 해소할 대안으로 사모대출을 선택했다.
  • 신속성과 구조화 유연성 — 은행 대비 심사 기간이 절반 이하, 코븐언트(약정) 협상 폭이 넓어 차입기업 유인이 높다.

그 결과 미국 은행권 레버리지론 비중은 2013년 50%에서 2025년 1분기 30%로 감소했고, 공백을 사모대출이 메웠다.


Ⅲ. 위험 신호를 알리는 여섯 가지 데이터

항목 2019 2022 2025 2Q 코멘트
시장 규모(달러) 6,000억 1.3조 1.8조 연 CAGR ≈ 21%
평균 차입배수(총부채/EBITDA) 4.8배 5.5배 6.3배 레버리지 레드라인 6배 돌파
부도율(12개월) 1.1% 1.6% 2.2% Moody’s 기준 역대 최고치
변동금리 비중 58% 71% 79% 금리 상승기 취약
은행 익스포저 5,600억 9,200억 1조2,000억 레버리지론 + 신용공여
투명성 지표(재무 공시 주기) 연 4회 연 2회 연 1회↓ 정보 비대칭 확대

자료: Moody’s, DBRS, LCD Comps, S&P Global Market Intelligence

특히 평균 차입배수 6.3배는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 직전 레버리지론 시장(6.0배)을 상회한다. 금리가 2022년 대비 500bp 급등한 상황에서 변동금리 노출 80%는 현금흐름의 즉각적 악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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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사모대출발(發) 위기 전파 메커니즘

  1. 기업 실적 둔화 → 이자 커버리지 하락
  2. 부도·리스트럭처링 증가 — 펀드 순자산가치(NAV) 하락
  3. 연기금·보험사 평가손 확대 — ALM(자산·부채) 비율 악화
  4. 퍼블릭 채권·주식 매도 — 시장 유동성 위축
  5. 은행 대손충당금 증가·자본비율 저하
  6. 신용경색 — 실물경제로 충격 파급

2008년과 다른 점은 은행 대차대조표 밖(off-balance)에서 위험이 축적된다는 사실이다. 규제는 은행 자본규제에 집중돼 있고, 사모대출 펀드는 레버리지·유동성·정보 공시 요건이 부실하다.


Ⅴ. 규제 환경 ― 공백과 시도

미국·유럽 규제당국은 최근 사모대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핵심은 데이터 리포팅 의무화다. EU는 2026년부터 AIFMD 개정안을 통해 레버리지 한도 및 포트폴리오·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보고를 요구할 예정이다. 미국 SEC도 2024년 11월 Rule 13F-2를 도입해 펀드 레버리지·단기 유동성 데이터를 분기별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비공개 데이터가 많아 시장 가격 형성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Ⅵ. 장기 시나리오와 충격 채널

시나리오 1 — 연착륙

글로벌 성장률 2%대, 정책금리 4%→3%로 완만히 하락. 부도율 3% 이내 억제, 은행 충당금으로 손실 흡수. 사모대출은 표준화·규범화 과정을 거쳐 제4의 자산군으로 자리잡는다.

시나리오 2 — 비선형 충격

중견 제조·헬스케어·리테일에서 연쇄 디폴트 발생 → NAV 30% 급락 → 연기금 ALM 갭 확대 → 장기채 매도·금리 급등 → 부동산·하이일드 동반 조정. 글로벌 실질 GDP -1.2%.

시나리오 3 — 규제 쇼크

각국이 일제히 레버리지 상한·파이어세일 방지 규정 도입 → 신규 딜 급감, 기존 딜 차환 실패 → 2027년까지 시장 규모 30% 축소. 실물 충격은 제한되나 사모펀드 IRR 폭락, 장기 자본비용 상승.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2.5(충격은 발생하나 규제·통화완화가 완충)를 확률 40%로 본다. 핵심 변수는 미국 경기실물담보 가치(특히 상업용 부동산)다.


Ⅶ. 한국 시장에 드리울 그림자

1) 연기금·보험 익스포저

국민연금은 2024년 말 기준 대체투자 15.1% 중 사모크레딧 56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운용목표 20%를 향해 증액 중이지만 자본비용·변동성 재평가 국면에선 J-Curve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2) 국내 은행·증권사

국내 증권사 7곳이 2023~2024년 사모대출 펀드 LP로 9조 원을 투자했다. 만기 구조는 4+1+1년, 차입형 펀드 구조(Leverage Ratio 1.5배)가 많아 PF 대출·ELS 하락과 동시 충격 가능성이 있다.

3) 원화·채권 시장

해외 대체투자 평가손은 국내 채권·주식 매도를 촉발한다. 장기금리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은행 통화정책 중립금리 추정치(2.0%) 상단 안착 여부가 중요하다.


Ⅷ. 투자자·정책당국을 위한 제언

① 데이터 투명성 확보 — “Measure or Die”

한국 연기금·보험사는 각 펀드의 SEC Form PF·유럽 AIFMD 보고서를 요구사항에 반영하고, 분기별 레버리지·스트레스 VaR를 자체 데이터룸에 축적해야 한다.

② 스트레스 시나리오 통합

금융위원회·한은·금감원 합동 Macroprudential Pilot Test를 사모대출+부동산+PF 통합스트레스 형식으로 실시, 시중은행 자본적정성 (CET1) 3, 5, 7% 충격 경로를 점검해야 한다.

③ 알파보다 유동성 볼펜

기관투자가는 사모대출 펀드 편입 시 재간접펀드·ETF세컨더리 유동성 수단을 병행해 ‘펀드 속 펀드’ 위험을 완충해야 한다.

④ 개인투자자 가이드라인

해외 사모대출 ETF(예: Oaktree OCSL, BCRED ETF)는 표면 배당수익률 8% 이상이지만, 옵션·파생 내재 레버리지 3배라는 경고를 의무 고지해야 한다.


Ⅸ. 맺음말 ― ‘그림자 은행’의 새 얼굴을 마주하라

2008년 금융위기는 은행 뱃속에 숨은 구조화 상품이 폭발하며 시작됐다. 2025년의 사모대출은 그 반대편, 은행 밖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규제공백과 돈의 탐욕이 만들어 낸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혁신’이라는 커튼 뒤에 드리워진 위험을 다시 마주한다.

시장과 정책이 이번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면 사모대출은 은행 대출을 보완하는 지속 가능 자산군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깜빡인 경고등을 무시한다면, 한국 투자자를 포함한 글로벌 자산가치에 또 하나의 블랙스완이 날아들 수 있다.

필자는 ‘빅숏(Big Short)’ 대신 ‘빅데이터(Big Data)’가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투명성, 공시, 그리고 스트레스 시나리오 관리가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할 최소조건이다. “해가 떠 있을 때 지붕을 수리하라”는 링컨의 조언처럼, 사모대출의 호황기야말로 시스템 안전판을 정비할 골든타임이다.


© 2025 이중석 칼럼니스트(한국경제·데이터 사이언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