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항공사의 재무 성과를 평가할 때 “운항 마진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번스타인(Bernstein)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통적인 지표만으로는 항공사의 실질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총 6가지 요소로 세분화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2025년 9월 2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들은 “항공업은 자본집약적(asset-heavy) 산업이므로, 단일 지표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운영 마진(Operating Margin)이나 투자자본수익률(ROIC·Return On Invested Capital)만으로 순위를 매기면 저비용항공사(LCC)가 과도하게 유리해지는 왜곡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무엇이 재무적으로 가장 뛰어난 항공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라이언에어(Ryanair)와 IAG(International Airlines Group)를 비교하면 2025년 예상 운항 마진은 각각 16%, 14%로 라이언에어가 근소하게 앞서지만 실제로 ASK① 기반 영업이익(EBIT/ASK)은 IAG가 1.3유로센트(€)로, 라이언에어의 0.8유로센트를 큰 폭으로 웃돈다.
“두 회사를 단순 운항 마진으로 비교하면 비즈니스 모델 차이를 무시하는 셈이다.” —번스타인 보고서
번스타인은 ROIC를 선호하는 편향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ROIC 역시 항공사마다 다른 기체 보유 구조·노선망·서비스 수준 등을 반영하지 못해 불완전하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와이드바디(Wide-body) 항공기는 협동체(Narrow-body)보다 가격이 훨씬 높고, 네트워크 항공사는 라운지·정비시설·예약시스템 등 추가 자산 투입이 필수다. ROIC에만 집착하면 장기 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꺼리게 되는 ‘저투자 인센티브’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경고했다.
■ 번스타인이 제안한 ‘6단 분해법’
기업가치는 결국 이익률과 자본 효율성의 함수라는 전제를 유지하되, 지표를 다음의 여섯 항목으로 세분했다.
① EBIT/ASK — 운항 거리 1석당 영업이익
② 실효 법인세율 — 순이익 차이를 확대·축소
③ 평균 운항 거리(km) — 노선 특성 반영
④ 기체 게이지(Gauge) — 좌석 수·화물 공간
⑤ 항공기 가치 — 월 임차료 또는 감가상각 규모
⑥ 기타 유·무형 자산 — 라운지·IT 시스템 등
이렇게 ROIC를 ‘분해’하면 항공사마다 어디서 경쟁우위를 확보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번스타인은 “라이언에어는 저렴한 기체 확보와 낮은 자산 부하가 핵심 강점이며, 반대로 IAG는 단연코 업계 최고의 단위 경제성을 자랑한다”고 평가했다.
■ 투자 포인트 및 업계 파급효과
번스타인은 최선호 종목(Top Pick)으로 IAG를 꼽고, 투자의견 ‘아웃퍼폼(Outperform)’과 목표주가 4.70파운드(£)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IAG가 구조적 여행 수요 증가와 고수익 프리미엄 노선 확대의 ‘레버리지 효과’를 누릴 것이며, “향후 5년간 시가총액의 50% 이상이 현금 환원 형태로 주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라이언에어는 저비용 모델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지만, 평면적 숫자 비교만으로 ‘최고’라고 결론짓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운항 마진만 높다고 해서 모든 주주가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번스타인
■ 전문가 해설: ROIC와 EBIT/ASK는 무엇인가?
ROIC는 투하된 총 자본 대비 세후 영업이익을 의미한다. 투자 규모가 큰 항공업 특성상 ROIC가 1%포인트만 개선돼도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편 EBIT/ASK는 ‘Available Seat Kilometer(공급석킬로미터)’당 영업이익을 나타내며, 노선 길이나 탑승률에 따른 왜곡을 최소화한다. 두 지표 모두 ‘단위당 수익성’을 측정하지만, ROIC는 자본 효율에, EBIT/ASK는 사업 운영 효율에 각각 초점을 맞춘다.
■ 유럽 항공 시장의 구조적 변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 항공업계는 수요 회복·기체 부족·운항 인프라 개선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 항공사는 프리미엄석·장거리 노선에 집중해 수익성을 회복하는 반면, 저비용항공사는 운임 인플레이션을 흡수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 중이다. 이 과정에서 “누가 더 높은 ROIC를 달성하는가”가 기업가치의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 향후 관전 포인트
① 연료 헤지 전략과 유가 변동성
② 신규 항공기 도입 지연 여부(특히 보잉·에어버스 인도 일정)
③ ESG 규제 강화로 인한 탄소배출권 비용 상승
④ 경기 둔화 시 비즈니스·관광 수요 탄력성
⑤ 유럽 공항 슬롯 정책 및 인프라 투자 계획
보고서는 이러한 변수를 반영하더라도 IAG의 현금흐름과 자산 효율이 라이언에어보다 견조하다고 결론지었다. 반대로, ROIC 개선 여력이 더 큰 저비용항공사들은 탄력적 실적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 기자 시각
번스타인의 분석은 전통적 지표의 맹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특히 ‘6단 분해법’은 자본집약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다층적 평가 모델로서 의미가 크다. 다만, 실제 투자 판단 시에는 각 항목에 대한 가중치와 회계 처리 방식 차이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 비용, 인력 확보 난항 등 질적 변수가 재무지표에 선행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숫자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리스크 요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누가 가장 높이 난다(Who flies highest)?”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 마진 비교가 아닌 다층적 분석에 달려 있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는 번스타인이 제시한 ‘분해법’을 통해 향후 유럽 항공사의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① ASK(Available Seat Kilometer): 항공사가 일정 기간 공급한 좌석 수에 운항 거리를 곱해 산출하는 공급 지표. ‘공급석킬로미터’로 번역하며, 항공사의 생산 규모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