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복지부(HHS)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가 직접 구성한 백신 자문위원회가 코로나19 백신 권고안을 완화하며 접종 여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2025년 9월 19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Advisory Committee on Immunization Practices)는 이날 회의에서 의료 제공자와의 상담을 전제로 생후 6개월 이상 모든 미국인이 백신 접종을 고려하도록 하는 안을 표결로 채택했다.
ACIP는 이를 Shared Clinical Decision-Making(공유 임상 의사결정)이라 명시하며,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기저질환자·면역저하자 등 중증 위험군에는 백신이 여전히 큰 이익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꾸려진 ACIP의 구성과 배경
이번 표결은 케네디 장관이 지난 6월 기존 위원을 전원 해임하고, mRNA 백신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다수 임명한 이후 처음 열린 공식 회의다. ACIP는 어떤 백신을 누구에게 접종할지 권고하고, 민간 보험사가 무상으로 보장해야 할 예방접종 범위를 사실상 결정하는 기구다.
이번 결정은 케네디 장관이 최근 단행한 코로나19 백신 정책 변화 흐름과 맞물린다. 앞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건강한 소아·임산부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권고를 철회했고, 식품의약국(FDA)은 새 백신의 접종 대상을 제한적으로 승인한 바 있다. 다만 이달 초 트럼프 행정부가 해임시킨 전 CDC 국장의 후임 인선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CDC가 실제로 이 권고안을 채택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접종 접근성 저하 우려
“권고가 약화되면 농촌 지역, 건강한 성인·소아에게 백신 접근과 보험 보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미 캘리포니아 등 4개 민주당 주(州)는 연방 권고와 달리 ‘보호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최신 백신 접종을 권고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관련 연구 결과도 잇따른다. 9월 18일 JAMA Network Open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전 국민 보편적 접종 권고를 유지할 경우 고위험군 위주 접종보다 수천 건의 입원 및 사망을 추가로 예방할 수 있다고 분석됐다.
또한 지난해 8월 JAMA에 실린 한 논문은 2020년부터 2024년 10월까지 코로나19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으며, 그 대다수가 고령층이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mRNA 기술의 안전성과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다수의 대규모 연구는 부작용이 극히 드물다고 결론냈지만, mRNA 회의론자들은 장기적 영향에 의문을 제기한다.
민간 보험사의 대응
미국 최대 건강보험 업계 단체인 America’s Health Insurance Plans(AHIP)는 이번 주 “ACIP가 이미 권고한 백신은 변경 없이 모두 보장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블루크로스·블루실드 12개 플랜, 센틴(Centene), CVS 산하 에트나(Aetna), 엘레번스 헬스, 휴마나, 카이저 퍼머넌트, 몰리나, 시그나 등 2억 명 이상을 가입자로 둔 보험사들이 최소한 당분간은 코로나19 백신을 무상으로 제공할 전망이다.
회의 내부 논쟁: “개별 처방이 필요 vs. 장벽 될 것”
회의에서 레체프 레비(Retsef Levi) 위원은 코로나19 백신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mRNA 플랫폼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수 작업반이 “처방전을 통한 개별 결정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환자의 감염 이력·동반 질환 등을 의사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작업반 일원으로 발표에 참여한 헨리 번스타인(Henry Bernstein) 의학박사는 “공유 임상 의사결정과 처방전 의무화는 접종 장벽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하고 안정적인 권고가 접종률을 끌어올리고, 코로나19 백신은 매우 안전하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산부, 2세 미만 영유아, 65세 이상, 면역저하자, 만성 질환자, 그리고 자신과 가족 보호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접종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용어 설명
mRNA 백신은 전령 RNA를 이용해 인체 세포가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을 스스로 생성하도록 유도,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플랫폼이다. 2020년 화이자·모더나가 최초로 상업화한 이후 빠른 개발 속도와 제조 유연성이 장점으로 평가받지만, 일부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라는 점을 들어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다.
Shared Clinical Decision-Making은 환자와 의료진이 최신 과학적 근거, 환자 선호, 위험요인을 종합해 최적의 치료·예방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ACIP는 인플루엔자·뇌수막염 일부 백신에서도 이 방식을 적용해 왔다.
전망과 평가
전문가들은 이번 권고가 백신 접종률 하락과 감염 확산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백신 회의론이 공론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가 논쟁을 단순히 억누르기보다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근거 기반 소통으로 신뢰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CDC가 ACIP 권고를 공식 채택하느냐가 향후 보험 보장 범위와 주(州)별 접종 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연방·주 정부, 민간 보험사, 의료계가 복잡하게 얽힌 미국 보건 시스템 특성상 ‘개별 결정’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원활하게 작동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