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부자 증세 위한 다양한 처방…순자산세만이 답일까

프랑크푸르트(Reuters) ─ 재정 여력이 부족한 유럽 각국 정부가 커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를 검토하고 있지만, 순자산세(wealth tax)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세제 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순자산세가 기대만큼의 세수를 창출하지 못했고, 초고액 자산가가 보유한 자산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자본이득(capital gains) 과세, 상속세(inheritance tax), 그리고 조세회피처로 이주하려는 경우 부과되는 Exit Fee 등 더 정교한 세제 도구가 순자산세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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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정부 가이드라인에서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반드시 순자산세 도입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본소득세(capital income tax)를 개선하는 편이 형평성과 효율성 모두에서 우수하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에서 순자산세를 시행 중인 국가는 스위스·스페인·노르웨이 세 곳뿐이며, 프랑스와 영국은 재정 적자 축소 방안으로 해당 세제를 놓고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38개 회원국의 최고소득세율은 1980년 평균 66%에서 현재 43%로 내려갔다. OECD는 38개 선진국이 가입해 경제·조세·무역 등 정책을 연구하는 국제기구다.

특히 상위 0.0001% 초고소득층은 자산을 지주회사(holding company)에 편입하거나 다른 우회 방식을 통해 실질적으로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 사례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에서 확인된다고 파리경제학교(Gabriel Zucman 교수) 연구 결과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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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cman 교수는 “

억만장자도 다른 사회 구성원과 최소한 같은 수준의 세금을 내야 한다

“며 2026년 프랑스 예산안에 상위 0.01% 부자에게 2% 순자산세를 부과하자는 제안을 주도했다.

그러나 자산 ‘총량’에 과세하는 방식은 세원을 숨기기 쉬워 세수 기여도가 낮은 편이다. 초고액 자산가는 재산을 사업체나 신탁, 예술품·골동품처럼 가치 평가가 어려운 자산으로 바꿔 과세망을 피해가기 쉽고, 해외 조세회피처로 옮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순자산세는 모든 유형의 자산에 동일 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은 자산을 보유한 납세자가 오히려 불리해지는 부작용도 있다.

반면 배당(dividends)·자본이득(capital gains)자본소득(capital income)에 부과되는 세금은 ‘실현된 수익’에 과세하므로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자연스럽게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구조다.

OECD는 올해 보고서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우대세율이 고액자산가의 실효세율을 낮추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프랑스·독일·이탈리아·한국·일본 등은 자본이득과 배당소득에 단일·저율 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낮은 자본소득세가 저축·투자·기업가정신을 촉진한다고 주장하지만, OECD 연구는 동일한 목표를 세제 감면 등 타깃형 정책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IMF와 OECD는 주택·부동산에 대한 자본이득 예외조항을 축소하고, 납세자가 해외(특히 조세회피처)로 이주할 때 차익에 과세(B항 Exit Tax)하거나, 상속 시점에 미실현 이익을 과세하는 등 다양한 개선책을 제시했다.

‘데스 택스’로 불리는 상속세는 순자산세보다 형평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속세는 노후 대비 저축을 위축시키지 않으며, 적절한 공제 제도가 있으면 자녀에게 기본 재산을 물려주려는 동기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비판론자들은 상속 자산이 이미 소득 단계에서 과세됐다고 주장한다. 또한 주요국에서 상위 1%가 이미 국고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부담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이 상속세를 두고 있음에도, 미실현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누락되거나 가업승계에 대한 공제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탈리아·폴란드·한국(일정 금액 이하)에서는 가업을 상속할 때 세부담이 없고, 아일랜드·스페인·독일은 매우 높은 공제 한도를 제공한다.

조세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세수 확대자본 유출 방지를 균형 있게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영국 NGO Tax Justice Network의 알렉스 콥험(Alex Cobham) 대표는 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 부의 격차 축소가 전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불평등은 경제 성장과 전반적인 기대수명을 약화시킨다. 이는 부유층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 Tax Justice Network CEO 알렉스 콥험

전문가 통찰 & 상업적 시사점

필자가 취재한 복수의 유럽계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은 순자산세 도입 논의가 확대될 경우 고액자산가의 포트폴리오 구조가 금융자산 중심에서 면세 대상 실물자산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만 자본이득·상속·Exit Tax 등 다층적 과세망이 갖춰지면 자산배분 전략에도 근본적 재조정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기업 측면에서는 법인세율과 별개로 대주주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경우, 본사 이전·합병(M&A) 전략을 통해 세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이 논의 중인 글로벌 최저 법인세 15% 규범과 함께, 자본 이동성에 기반한 ‘세테크(세금 + 재테크)’ 시장이 한층 복잡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결국 유럽 정부의 과제는 ‘부자 증세’와 ‘자본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이다. 어느 한 요소에 과도하게 기울 경우 정책 신뢰도와 경제 성장 동력이 동반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세제 설계와 투명한 집행이 무엇보다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