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샹제리제 인근에 자리한 DVD 대여점 ‘JM 비디오’는 파리 시내에 단 두 곳만 남은 전통 비디오 대여점 가운데 하나다. 1982년 문을 연 이 상점은 브래드 피트 같은 할리우드 배우도 들를 만큼 영화 애호가들의 성지로 통하지만,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아마존 프라임비디오 등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 가게는 5만 편 이상의 방대한 장서를 자랑한다. 이는 평균 5,000편 남짓을 제공하는 넷플릭스의 실시간 라인업과,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 전체 카탈로그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그러나 파리 시내 고공 행진하는 임대료와 급감하는 고객 수가 매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영화 마니아인 비르지니 브레통 씨는 “파리에서 제대로 된 컬렉션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곳
이라며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희귀 타이틀을 여기서 빌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성 고객층만으로는 JM 비디오의 재무 악화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점포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가득 찬 DVD들이 동굴처럼 둘러싸고, 오래된 목제 선반에는 감독별·국가별·장르별로 촘촘히 분류된 라벨이 붙어 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큐레이션된 물리적 미디어를 찾는 젊은 층도 늘고 있지만, 아마존 프라임, HBO 맥스, 파라마운트+, 애플TV+ 등 신규 OTT가 잇따라 진입하면서 선택지는 넘쳐나고 있다.
파리 5,000곳 → 전국 10곳, 급감한 비디오 대여점
20세기 말 프랑스 전역에는 약 5,000개의 비디오 대여점이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2010년 무렵 넷플릭스가 DVD 배송 사업에서 스트리밍으로 전격 전환한 뒤 업계 지형은 급변했다. 지금 프랑스에 남은 DVD 대여점은 채 10곳이 되지 않으며, 그중 두 곳이 파리에 있다.
점장 테오 방실롱은 “임대료와 직원 3명의 급여를 충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매장은 최근 2년간 누적 손실 약 2만 유로(약 2만4,000달러)를 기록했다. 방실롱은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최소 3만5,000유로, 장기적으로는 6만5,000유로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크라우드펀딩, ‘어둠 속 등대’를 밝히다
JM 비디오는 이달 초 온라인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해 2주 만에 1,000여 명으로부터 2만6,000유로를 모았다.
※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은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후원자로부터 소액을 모아 특정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방실롱은 “고품질 포맷에 관심 많은 젊은 세대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소비 패턴과 달리, 사람이 직접 추천하는 영화 경험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고리즘(Algorithm)은 사용자의 시청 이력을 분석해 비슷한 콘텐츠를 자동 추천하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편리하지만, 이용자가 이미 소비한 장르와 취향을 강화해 ‘필터 버블’에 갇히게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실롱은 “우리는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처럼 다른 길을 제시한다
”고 말했다.
물리적 미디어의 가치와 전망
전문가들은 스트리밍 전성시대에도 초고화질 블루레이와 리마스터판 같은 수집형 매체가 꾸준히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국내외 영화제·학교·시네마테크에서는 원본 화질 유지, 자막 정교함, 감독 코멘터리 등을 이유로 물리적 디스크를 선호한다. JM 비디오의 사례는 지역 문화 공간으로서의 오프라인 매장의 의미를 재조명한다는 평가다.
방실롱은 “$1=0.8445유로 기준 환율을 감안해도 손실 폭이 작지 않다”면서도 “‘한정판’·‘소량 제작’ DVD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을 강화해 수익구조를 다각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문가 관전평
현업 유통 컨설턴트들은 JM 비디오와 같은 소규모 매장이 지역 사회 커뮤니티 허브로 자리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영화 추천 행사, 감독과의 대담, 테마별 상영회 등 체험형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스트리밍 세대와의 ‘접점’을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스트리밍이 제공하지 못하는 ‘물성(物性)과 대면 경험’이 차별화 포인트다.
다만, 상가 임대료와 인건비가 지속 상승하는 한, 단순 렌털 비즈니스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결국 O2O(Online to Offline) 결합 전략—온라인 예약·오프라인 체험—으로 수익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JM 비디오의 생존전략은 물리적 미디어가 디지털 위주 소비 생태계에서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스트리밍 공룡들의 물량 공세 속에서도, 이 작은 가게가 ‘어둠 속 등대’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영화 애호가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