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부 산하 백신 자문위원회가 4세 미만 아동에게 투여해 오던 홍역·볼거리·풍진·수두 혼합백신(MMR-V) 사용 권고를 공식 철회했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자문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해당 권고안을 8대 3의 표차로 부결하고, 기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예방접종 지침에서 MMR-V 조항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위원들은 ‘홍역·볼거리·풍진(MMR) 단독백신’을 먼저 접종한 뒤, 별도의 ‘수두(Varicella) 백신’을 추가 접종하는 2단계 방식을 새로운 표준으로 권고했다. 이번 표결 결과, 4세 미만 아동은 더 이상 한 번에 네 가지 질병을 예방하는 주사를 맞지 않게 됐다.
MMR-V란 무엇인가*
MMR-V는 1990년대 후반 네 가지 바이러스(홍역·볼거리·풍진·수두)를 한 번에 예방하도록 고안된 혼합백신이다. 장점은 접종 횟수를 줄여 부모와 의료기관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지만, 접종 후 고열이나 경련 등 이상반응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36개월 미만 영유아의 경우, 혼합 제형보다 단독 제형을 단계적으로 투여할 때 부작용이 통계적으로 감소한다는 다수의 학술 보고※가 이번 논의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안전성’ 이슈가 결국 권고 철회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표결 과정과 결과
위원장 자넬 피어슨 박사는 “백신 접근성 못지않게 접종 안전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8명의 위원은 혼합백신 철회를 지지하며 “개별 투여가 투약 편의성은 떨어져도, 장기적 리스크 관리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대 측 3명은 “접종 횟수 증가로 아동·보호자 순응도가 저하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으나, 다수 의견을 뒤집지는 못했다.
이 결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CDC가 매년 발간하는 ‘미국 표준 예방접종 일정’에 직접 반영돼 전국 소아과·보건소에 즉시 영향을 미친다. CDC 관계자는 “내부 검토를 거쳐 연말까지 수정 지침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부모와 의료계의 현실적 과제
혼합백신 철회로 미국 내 4세 미만 아동은 최소 두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한다. 주사 횟수 증가는 의료기관 예약·보험 청구·냉장유통(콜드체인) 등 실무적 부담을 키우지만, 이상반응 감소라는 보건적 이익이 크다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다.
실제 미국 소아과학회(AAP)는 이미 2년 전부터 “혼합백신을 투여하기 전, 개별 백신의 이상반응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 따라서 이번 판정은 학계·의료계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경제·사회적 파장
제약업계에서는 혼합백신 수요 감소로 매출 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개별 백신 생산 라인은 주문 급증이 예상돼 단기적 생산 확대가 요구된다. 보험업계 역시 주사 횟수 증가에 따른 코페이(본인부담금) 조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한편 미국 내 백신 회의론 커뮤니티는 이번 결정을 ‘안전성 강화를 위한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며 지지를 표했다. 다만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구실로 악용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시각
공중보건학자인 알렉스 리 교수는 “접종 간소화와 안전성 확보라는 두 목표 간 균형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이번 결정은 안전성에 무게를 실은 사례”라며 “향후 장기 데이터를 통해 정책 효과를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백신 공급망 전문가들은 “개별 백신 수요 급증이 일시적 품절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선주문 확대·재고 관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향후 일정
CDC는 빠르면 10월부터 수정된 예방접종 일정을 의료 현장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보건부는 부모 대상으로 접종 방법 변경을 안내하는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백신 일정의 변화는 곧 공중보건 전략의 변화다.”
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단순 권고 변경을 넘어, 안전성 우선 원칙을 재확인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결국 판단의 핵심은 ‘한 번의 편리함’과 ‘높아진 안전성’ 중 어느 쪽에 가치를 두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자문위 표결은 후자에 무게를 실었으며, 이는 향후 글로벌 백신 정책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