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미국 비자 우회 활용…문건으로 드러나

[서울=로이터]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LG Energy Solution)이 미국 단기 비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이른 시기부터 우회 전략을 사용해 온 사실이 내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해 대규모 단속을 벌이기 훨씬 이전부터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적극 활용해 왔다.

이 회사가 작성한 2023년 8월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단기 전문인력 파견 시 ESTA를 우선 권고하며, 미국 입국심사에서 ‘업무(work)’라는 표현을 피하고 단정한 복장을 유지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는 LG뿐 아니라 여러 한국 기업이 미국 고급 기술 공장 운영을 위해 겪어 온 단기 비자 발급 난항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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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및 사건 경위

“업무(work)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의심을 사 입국 거부로 이어질 수 있다.” — LG 내부 가이드라인 중

이번 사안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2025년 9월 초.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Savannah) 인근 현대자동차와 LG가 공동 설립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대상으로 미국 국토안보부(DHS)가 실시한 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 기술자가 한꺼번에 구금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이 가운데 약 250명이 LG 소속 직원 및 협력업체 인력이었으며, 나머지는 현대차 협력사 인력으로 파악됐다.

단속 장면이 수갑이 채워진 채로 퍼져 전 세계에 영상으로 전파되자, ‘친미 동맹’을 자처해 온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국내 경제계는 “투자 확대를 장려하던 미국이 뒤에서는 인력 파견을 막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했고, 한국 정부는 즉각 외교 채널을 가동했다.


ESTA·B-1 비자란 무엇인가?

ESTA(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가입국 국민에게 최대 90일간 관광·출장 목적으로 간편 입국을 허용하는 제도다. 반면 B-1 비자는 180일 이내 상업·사업 활동을 허용하는 단기 사업 비자이지만, 최근 심사 강화로 한국 기업 신청 건 상당수가 거절되고 있다.

두 제도 모두 ‘임시 방문’이라는 원칙 아래 생산 라인 설치·교육 등 제한적 업무만 가능하며, 반복 사용 시 ‘체류 의도’가 의심돼 입국이 거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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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의 내부 지침과 미국 당국의 논리

로이터가 입수한 2023년 8월자 LG 내부 문서에는 “B-1 비자 거절이 잦아 ESTA 활용이 불가피”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또한 “ESTA로 2~3개월 체류 후 재입국을 반복할 경우 공항에서 거절될 수 있다”며 남용을 경고한다.

미국 이민국(ICE)은 “구금된 인력들이 비자 범위를 넘어선 활동을 하거나 체류 기간을 초과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미국 이민 전문 변호사는 “교육·설치 업무는 ESTA·B-1 허용 범위”라고 반박했다. 결국 구금된 직원 전원은 1주일 만에 귀국해 가족 품에 안겼다.


■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 시사

트럼프 진영은 대선 공약으로 ‘친한(親韓) 투자 유치’와 ‘강경 이민 단속’을 동시에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관세 회피와 생산거점 확대를 위해 미국 공장을 세우면서도 숙련 인력 파견엔 큰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LG는 로이터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단 한 달 이하 단기·일회성 파견엔 ESTA, 1~6개월 파견엔 ESTA·B-1·L-1 등 적절한 비자를 병행하도록 지난해 3월 지침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LG는 “ESTA·B-1 목적에 부합했음에도 비자와 ESTA가 동시에 거절되는 사례가 늘었다”새로운 비자 유형 신설이 필요하다”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 양국 정부의 대응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랜도우(Christopher Landau) 미 국무부 부차관보Deputy Secretary는 9월 15일 서울 외교부 고위 인사와 통화에서 “이번 단속으로 불편을 겪은 점에 유감을 표한다”며 신속한 실무협의를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현지 법규를 존중하되, 한국 기업의 ‘합법적 사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제단체 역시 양국 간 비자 제도 신규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 전망과 시사점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첨단 제조 시설이 급속도로 미국에 집중되면서 ‘인력 비자 병목’ 문제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혜택인력 규제를 병행할 가능성이 높아, 기업들은 현지 채용 확대·온라인 기술 전수·로봇 자동화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사태는 미국이 ‘투자유치’와 ‘이민단속’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미국 내 공급망 안정성한·미 경제동맹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