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달러화 강세와 공급 과잉 전망 속에 일제히 하락했다. 10월물 WTI 선물(CLV25)은 -0.48달러(-0.75%) 내렸고, 10월물 RBOB 휘발유(RBV25)는 -0.0173달러(-0.85%) 떨어졌다.
2025년 9월 18일, 나스닥닷컴과 바차트(Barchart)의 공동 보도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서는 달러화 강세가 원유 등 달러 표시 자산에 하방 압력을 가한 것이 주요 배경으로 지목됐다.
WTI(West Texas Intermediate)는 미국 텍사스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기준유로, 전 세계 원유 거래의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 RBOB(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는 북미 지역에서 거래되는 무연 휘발유 선물 계약으로, 여름철 환경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산소를 첨가하기 전 상태의 휘발유를 의미한다*1. 달러가 강세일 경우 비(非)미국 투자자에게 원유 구매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만큼, 통상적으로 국제 유가는 약세를 보인다.
국제유가는 또한 세계적인 공급 과잉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압박받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2026년 전 세계 원유 초과 공급량 전망치를 하루 333만 배럴로 상향 조정했는데, 이는 8월 전망치 대비 36만 배럴 늘어난 규모다. IEA는 특히 OPEC+가 생산량을 점진적으로 되살릴 계획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미국 경기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오며 낙폭은 제한됐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 대비 -3만3,000건 감소한 23만1,000건으로 집계돼, 시장 전망치 24만 건을 밑돌았다. 또한 9월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제조업지수는 전월 대비 23.5포인트 급등한 23.2를 기록, 8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같은 날 S&P 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에너지 수요 전망에 힘을 보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공급라인 ‘뇌관’
우크라이나가 최근 러시아 정유시설을 향한 드론·미사일 공격을 확대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됐다. 18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살라바트(Salavat) 및 볼고그라드(Volgograd) 정유공장을 타격해 하루 30만 배럴 규모의 정제 능력을 일시 중단시켰다. 앞서 16일에는 러시아 국영 파이프라인 운영사 트랜스네프트(Transneft)가 자국 생산 원유의 80% 이상을 처리하는 시설의 저장 능력을 제한했고, 14일에는 연 2,000만 톤 규모의 키리시(Kirishi) 정유공장이 공격 여파로 가동을 멈췄다.
우크라이나의 연쇄 공격으로 러시아 발틱 해안의 원유 수출 허브까지 피해가 확산되면서 9월 첫 사흘간 러시아 원유 정제량은 일일 498만 배럴로 3년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공격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 실질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2일 “푸틴 대통령의 전쟁 지속에 인내심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주요 7개국(G7)에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인도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데이터업체 보텍사(Vortexa)는 9월 12일로 끝난 주간 기준, 7일 이상 항행하지 않은 채 정박 중인 탱커에 저장된 원유가 전주 대비 7.2% 감소한 6,796만 배럴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부유식 재고(해상 재고)가 줄어든 것은 단기적으로 유가에 지지력을 제공하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또한 OPEC+는 10월부터 하루 13만7,000배럴 증산하기로 9월 7일 합의했다. 이는 8·9월에 결정한 하루 54만7,000배럴 증산보다 규모가 작으며, 글로벌 수급 상황을 보며 나머지 166만 배럴 감산분을 언제 복원할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OPEC+는 2026년 9월까지 2년간 이어온 감산을 단계적으로 철회해 총 220만 배럴을 복원할 계획이다. 8월 OPEC 생산량은 일일 2,855만 배럴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편 17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발표한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9월 12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는 계절성 5년 평균치보다 4.7% 낮았다. 휘발유 재고는 1.6% 부족, 난방유 등 중간유 재고는 7.4% 부족해 재고 수준이 전반적으로 타이트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미 원유 생산량은 주당 0.1% 감소한 1,348만2,000배럴로, 작년 12월 6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1,363만1,000배럴)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했다.
에너지 서비스사 베이커휴스(Baker Hughes)는 9월 12일로 끝난 주간 미국 내 가동 원유 시추공(리그) 수가 2개 늘어난 416기라고 밝혔다. 이는 8월 1일 기록한 410기의 4년 내 최저치에서 소폭 회복된 수치다. 2022년 12월 고점(627기) 대비로는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이다.
시추공 수는 향후 6~9개월 원유 생산량을 가늠하는 선행지표다. 따라서 리그 수가 저조하다는 것은 미국 셰일업체들의 투자심리가 아직 보수적임을 시사하며, 중장기적 공급 부족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EIA(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에서 에너지 관련 통계를 집계·발표하는 기관으로, 원유 재고·생산량 보고서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OECD 산하 국제기구로, 회원국들의 에너지 정책을 조율하며 중기 수급 전망을 제시한다. 두 기관의 전망치는 국제유가 변동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기자 해설
현 시점에서 원유 시장은 “달러화·지정학·기술적 요인”이라는 세 축이 상쇄 작용을 벌이고 있다. 달러 강세와 장기 공급 과잉 전망이 하방 압력을 주는 반면, 러시아산 공급 차질과 미국 내 재고 감소가 지지력을 제공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빈도가 높아지면서 유가 방향성은 단기 이벤트성 뉴스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정유사와 철강·화학 업종 투자자라면, 국제유가 70~75달러 박스권 이탈 여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에 언급된 금융상품에 대해 기자는 직접적인 투자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본 기사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