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 리사 쿡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연방대법원에 요청했다. 1913년 연준 설립 이래 전례가 없는 조치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이날 대법원에 제출한 신청서에서 “대통령의 해임 권한에 대한 부당한 사법 개입이 또다시 발생했다”며,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임시 금지명령을 즉시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해당 금지명령은 9월 9일 지아 콥 판사가 내려 트럼프 대통령이 쿡 이사를 해임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콥 판사는 트럼프 측이 제시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기 의혹이 ‘정당한 사유(for cause)’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연준법은 대통령이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사유를 ‘for cause’로 규정하지만, 그 정의나 절차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연준 이사를 해임한 사례가 없으며, 해당 조항이 법정에서 검증된 적도 없다.
리사 쿡 이사는 연준 첫 흑인 여성 이사로, 9월 17~18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참석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는 결정에 찬성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들어 공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해 “멍청이(numbskull)”, “무능하다(incompetent)”, “고집불통 바보(stubborn moron)”라고 비난해 왔다.
“미 국민이 부담하는 이자율을, 자신이 받은 이자율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결정하도록 둘 수 없다.” ― 법무부 대법원 신청서 중
앞서 D.C. 연방항소법원은 2 대 1로 행정부의 가처분 집행정지 요청을 기각했다. 다수의견을 낸 브래들리 가르시아·제이 미셸 차일즈 판사는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지명자이고, 반대 의견을 낸 그레고리 카차스 판사는 트럼프 지명자다. 가르시아 판사는 “정부는 쿡 이사에게 실질적인 통지나 반박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쟁점 해설: ‘for cause’란?
‘for cause’는 공직자를 해임할 때 직무 태만, 중대한 비위, 직권 남용 등 정당성을 입증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연준법은 구체적 기준을 두지 않아, 이번 소송에서 최초로 법원이 그 범위를 해석하게 된다.
• 절차적 권리: ‘듀 프로세스(due process)’
미국 수정헌법 5조는 정부가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을 박탈할 때 정당한 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항소법원은 쿡 이사가 해임 사유에 대해 소명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을 중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5일 쿡 이사를 해임하겠다고 발표하며, 그녀가 2022년 상원 인준 이전에 세 건의 부동산 담보대출 서류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재임 중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윌리엄 풀트 연방주택금융청(FHFA) 국장은 쿡 이사가 부정확한 서류 기재로 낮은 금리와 세액 공제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형사 수사에도 착수해 조지아와 미시간 대배심에 소환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로이터가 확인한 애틀랜타 주택 대출 견적서에는 쿡 이사가 해당 주택을 ‘휴가용 주택(vacation home)’으로 기재한 정황이 담겨 있어, 혐의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로 꼽힌다.
글로벌 파장
연준이 정치적 압박 없이 금리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시장 신뢰를 위한 핵심 조건이다. 이번 소송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 경우, 다른 중앙은행도 정치권력의 직접적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대법원은 현재 보수 6명 대 진보 3명의 구도로, 하급심 결정을 번복해 트럼프 행정부 편에 선 사례가 다수다. 그러나 올해 5월, 독립적 지위를 갖는 다른 기관 해임 사건에서 대법원은 “연준은 독특한 구조를 가진 준사적(quasi-private) 기관”이라며 차별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본 단락은 기자의 분석
첫째, 이번 사안은 행정부 권한 확대와 입법부가 설계한 독립기관의 자율성 간 충돌이라는 헌법적 쟁점을 드러낸다. 둘째, 대통령이 ‘원 플러스 원’ 식으로 해임 사유를 제시하면 법원이 이를 어디까지 심사할 수 있는지가 시험대에 오른다. 셋째, 대법원이 연준에 한해 ‘특수 지위’를 인정할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최종 판결은 다른 독립위원회와 구별된 선례가 될 수 있다. 넷째, 시장은 통화정책의 연속성보다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가 우선시되는 상황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본다. 끝으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차기 FOMC 인사에도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달러 가치·장기금리·글로벌 유동성 전반에 불확실성이 증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