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2025년 예산안 통과…사상 최대 투자·국방비 증액으로 재정 패러다임 전환

BERLIN—독일 연방하원(분데스탁)은 19일(현지시간) 2025회계연도 연방예산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번 예산안은 올해 초 단행된 재정 규제 완화 개혁 이후 처음 편성된 본예산으로, 경기 부양을 위한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목표 충족을 위한 국방비 증액을 동시에 담았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총투자 규모는 1,160억 유로(약 1369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5,000억 유로 규모의 ‘인프라 기금’과 3월 의회 통과 과정에서 국방목적에 한해 ‘채무 브레이크(부채 상한)’ 적용을 예외적으로 면제받은 결과다. 라르스 클링바일(Lars Klingbeil) 재무장관은 본회의 발언에서 “이번 예산은 독일 재정정책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침체 국면을 타개하고, 우크라이나 지원 및 동맹 의무 이행을 위한 방위력도 동시에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 부양·군비 증강 雙(쌍) 목표

독일 경제는 유로존 최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조업 부진과 에너지 가격 급등 여파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이에 새 연정(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체제)은 수십 년간 고수해 온 균형재정 기조를 과감히 탈피해, 공공지출 확대를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동시에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대폭 확대해 NATO 국방비 기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달성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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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오랜 기간 균형재정 정신을 표방하는 ‘슐드엔브렘제(Schuldenbremse·채무 브레이크)’ 헌법 조항을 운영해 왔다. 이는 연방정부의 구조적 신규 차입을 GDP의 0.35% 이내로 제한하는 장치다. 하지만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환경이 급변하자, 당시 올라프 숄츠 총리는 1,000억 유로 ‘특별 국방기금’ 창설을 천명했고, 올해 3월 의회는 해당 기금에 이어 국방지출을 추가로 채무 브레이크 예외 대상으로 지정했다.


■ 예산 세부 지출 구조

“핵심 예산(Core Budget) 총지출: 5,025억 유로”
“특별 인프라 기금: 3,720억 유로 차입”
“특별 국방 기금: 2,410억 유로 차입”

재무부 대변인에 따르면, 2025년 핵심 예산에 따른 신규 차입은 818억 유로로 책정됐다. 여기에 인프라 기금(372억 유로 차입)과 국방 기금(241억 유로 차입)을 합산하면, 총차입 규모는 1,432억 유로로 확대된다.

이번 예산안은 지난해 11월 기존 연립정부 붕괴로 2025년 지출계획이 미정인 채 잠정 예산 체제로 운영돼 온 상황을 정상화했다. 2025년 본예산(코어 5,025억 유로)에 두 개의 특별기금(인프라·국방)까지 더하면 정부 재정 운용 총량은 5,910억 유로에 달한다.

■ 2026~2027년: 더 큰 난제가 기다린다

클링바일 장관은 “내년 예산을 확보했지만, 2027년 재정계획에는 약 300억 유로 규모의 재정 공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메르츠 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은 복지 지출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반면,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은 사회안전망 축소에 반대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채무 브레이크 완전 폐지 vs. 지출 삭감으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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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는 다음 주부터 2026년 예산 초안을 심의하며, 11월 최종 승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재무부는 채무 브레이크의 틀을 유지하되, ‘기후전환 기금’과 같은 특별기금 신설·확대로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설 · 전망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을 두고 “팬데믹·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라진 안보·산업 패러다임을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급격한 차입 확대가 독일 국채(Bund) 금리를 자극해 유로존 전체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또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친환경·디지털 전환 분야에 집중될 경우, 유럽 그린딜 및 인공지능(AI) 산업 육성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 관측도 나온다. 반대로 복지 축소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연정 결속력이 흔들리며 2026~2027년 예산 협상이 난항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채무 브레이크는 ‘헌법상 채무한도 조항’이라는 점에서 여타 EU 회원국 대비 엄격한 편에 속한다. 이에 따라 특별기금 확대가 사실상 ‘그림자 예산(off-budget)’으로 기능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별기금의 회계 처리와 의회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재차 부상한다.

기자 노트: 1유로=1.18달러(보도 시점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2025년 독일 연방정부의 총재정 운용 규모는 약 6,964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한국 2024년 본예산(약 609조 원)과 유사하거나 다소 상회하는 수준으로, 독일 정부가 집약적 재정 확장을 택했음을 방증한다.